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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빛 개량한복을 입고 나타난 황대권씨는 생각보다 풍채가 좋았다. 희끗한 수염이 턱밑까지 내려온 그는 악수를 청하며 “점심식사는 하셨나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려 충북 음성을 몇 바퀴 돌다 찾은 곳은 수타 자장면 집.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퍽퍽’ 주방장이 면을 뽑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자장면과 짬뽕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대화는 시작됐다. 텔레비전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는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생태공동체 마을 조성위해 동분서주

 "선생님 좀 웃어주세요." "아, 웃겨야 웃지." 이 말을 하고는 황대권씨는 곧 환하게 웃어주었다.
▲ 황대권씨 "선생님 좀 웃어주세요." "아, 웃겨야 웃지." 이 말을 하고는 황대권씨는 곧 환하게 웃어주었다.
ⓒ 송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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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말 그대로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100회가 넘는 ‘생태운동’ 강연을 했고 3월에는 우리말 속에 일본어 잔재를 찾는 책 <빠꾸와 오라이>를 펴냈다. 요즘은 생태공동체 마을을 조성하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생태공동체 마을을 설명하면 필요성은 다들 공감을 해요. 그래도 땅을 구해야 하는데 선뜻 내주는 곳이 없어요.”

생태운동가로 활동하며 벼름벼름 준비해온 생태공동체 마을이다. 신기술과 우리 전통적 생활방식을 접목시켜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공동체를 말한다. 예컨대 전통 한옥에 태양열 발전기를 달아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식이다.

- 전통적 삶으로 돌아가는데 한계가 있지 않나?
"인정한다. 그렇다고 전부를 과거로 돌리자는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현대문명이지만 또 생태계를 살릴 수도 있다. 전통적인 삶에 현대문명을 접목시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미 필요성을 깨닫고 시행하는 국가가 많다. 내가 번역한 책 <가비오따스>를 보면 외국에서는 벌써 1970년 이전부터 생태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왔다. 우리는 아직 초기단계다."

- 현재 생태공동체 마을은 어느 정도 진행 중인가?
"구체적인 구상은 모두 끝났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전남 영광에서 농사 지으면서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타진했다. 부지가 없어 문제다."

인생을 바꿔놓은 간첩단 사건

그가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옥고를 치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교도소에서 황씨는 고문과 교도소 생활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돌보고자 동양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잡초라고 뽑아버렸던 풀들이 동양의학에서는 약초로 쓰이더라고요. 꼭 비싼 약초만이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교도소 담벼락과 운동장을 돌며 야생초를 모아 기르기 시작했다. 동료 재소자들은 잡초를 키운다며 타박하기도 했지만 야생초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스승이자 영원한 벗이다.

"야생초가 자라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자연은 스스로 생명을 꽃피우는구나. 나무도 동물도 사람도 모두 자연이 키우는 것일 진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스레 그는 생태운동가가 되었다. 98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후 그는 생태운동가로 거듭났다. 2001년 결성된 생태운동단체 ‘생명평화결사’의 부운영위원장을 맡으며 그 활동능력을 넓혀갔다. 야생초를 키우며 기록한 옥중서간을 모아 2002년에 출간한 <야생초 편지>가 화제가 되며 베스트셀러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저기가 원래는 다 산이었어. 근데 지금은 도로가 나고 건물이 들어섰네." 도로와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곳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저기가 원래는 다 산이었어. 근데 지금은 도로가 나고 건물이 들어섰네." 도로와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곳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 송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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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살고파라

-  여기저기서 찾는 곳이 많을 것 같다.
"(손사래를 치며) 나 같은 사람을 뭘…. 올 초에 낸 <빠꾸와 오라이>덕분에 한글날을 맞아 인터뷰를 하긴 했다."
- 세간의 관심이 대부분 ‘간첩과 고문’에 쏠리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은가.
"이력이 났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사회에 편승해 그저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황씨는 말 그대로 수재였다.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차에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간첩단’사건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건 덕에 내가 이렇게 좋은 일 하고 사니 오히려 잘된 것 아니냐‘며 껄껄 웃는다.

가족문제로 최근에 충북 음성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마을로 잡은 것이란다. 덕분에 요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다.

“빨리 생태공동체 마을을 조성해서 흙냄새 맡으며 살아야죠. 도시 근처만 가도 요즘은 좀이 쑤셔요.”

황씨는 천생 흙에 살 팔자인가 보다. 


태그:#황대권, #생태운동, #생태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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