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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넌 '똥복'만 타고 났구나. 쯧쯧."

 

26년 전 배수화씨가 결혼하자마자 얼마 있지 않아 중풍으로 쓰러지신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3년 간 모셨고, 얼마 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12년 동안 여성의 몸으로 직접 개를 키우며 개의 대소변을 치웠으며, 급기야 지난해에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까지 3여년 세월을 병수발을 하며 대소변을 받아내던 딸을 보며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그녀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그녀의 '똥복' 내력은 시어머니 3년, 개 12년, 친정어머니 3년

 

결혼해서 한참 즐거워야 할 신혼생활이었건만,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지속적인 병수발을 위해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같은 방에서 자야 한 것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였다. 오죽하면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 초상집 상을 차려놓고 그녀의 남편이 그랬단다.

 

"여보, 우리 이제 신혼 같다. 그치?"

 

돌아가신 시어머니 영전에서 울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남편의 말에 웃음이 나와 혼났다는 그녀의 말에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진한 인생사가 배어 나온다. 

 

그런 후 여러 집안의 악재를 극복하려고 시작한 사업이 '개 키우기'였다. 처음 두 세 마리로 시작한 개를 40마리까지 불려나가며 종자견을 키웠다고. 그것도 보통 개가 아닌 도사견들을 말이다. 여성의 몸으로 개밥을 거두러 다니기도 하고 직접 화물차에 개를 실어 교배시키러 다니기도 하니 웬만한 남성들이 혀를 내두르기가 일쑤였단다.

 

그도 그럴 것이 덩치 큰 도사견은 남자들도 꺼려할 정도로 교배시키기 힘들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한동안 안성 개시장에서는 그가 키워낸 개들을 사려고 서로 난리를 피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후 4년 전 병세가 위중한 친정 어머니를 지금의 안성집에 모시고 오게 된 것까지 친정어머니가 말한 복을 다 누린(?) 셈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생했다고, 어떻게 그런 어려운 일을 해냈느냐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저희 친정어머니까지 모신 것이 제 복이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친정어머니 병수발을 해야 하는 덕분에 파산으로 치닫던 다단계사업(한 때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욕심이 지나치다보니 판단착오로 뛰어 들어서 벌인 사업)에서 손을 뗄 수 있었고, 집이 어려울 때 친정어머니로 인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죠. 오히려 제가 제대로 못 모신 것이 지금도 한이 됩니다."

 

어려운 사연을 주절주절 말할 때조차 호탕한 웃음을 잃지 않던 그녀였지만 이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가슴에 걸리는 일이었나 보다.

 

유별난 여장부

 

여기까지 듣고 그가 눈물 많은 약한 여성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의 성격은 화통하고 화끈하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하고, 잘못된 일을 보면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이다.

 

마을 입구 도로에 좌회전 차선이 없어서 불편을 겪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대책위원장을 자처하여 1년을 넘게 관공서 3곳(시청, 경찰서, 수원국도 관리기관)을 상대로 줄기차게 실랑이를 벌여 기어코 좌회전 차선을 만든 것은 마을의 무용담이 되었다.

 

그러니 한 때의 실수였다고 그녀가 고백하는 다단계사업에도 남들이 3년 할 성과를 단 한 달 만에 해치우는 성과(?)를 보여 단숨에 꼭대기 자리까지 갔다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 다단계사업이 좋지 못한 사업임을 자각하고는 해당 사업 반대 활동을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어 1만2천명 '안티'들의 수장이 되기도 했다니 그가 가진 에너지의 바닥은 도대체 어디일까 싶을 정도다.  

 

시어머니보다 친정어머니 모시는 게 더 힘들었던 이유

 

이제 시어머니 모시는 것보다 친정 어머니 모시는 게 더욱 힘들었던 이유를 말할 때가 된 거 같다. 시어머니 병수발을 할 때는 남편과 시집 식구들에게 떳떳했지만, 친정어머니 병수발을 할 때는 왠지 남편과 아이들과 시집 식구들에게 부담 주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는 것.

 

그리고 시어머니와는 예의도 지켰기에 서로 심하게 눈살 찌푸리는 일은 없었지만, 친정어머니와는 서로 만만하다보니 눈살 찌푸리는 것을 넘어 불평을 있는 대로 다털어 놓기도 하고 서운한 행동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자신의 그런 행동들이 생각이 나 그런 이야기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인 게다.         
 
그래도 육순인 남편이 하루에 10번씩이나 "나 사랑해?"라고 물을 정도로 다정하고, 이날 인터뷰하러 기자가 온다는 말에 미리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다 해줄 정도로 자상해 그녀는 고맙기만 하다.

 

"내게 시집 와 줘서 고맙다"며 사랑해주는 남편의 진심으로 인해 그녀가 어디에서든 여장부 기질을 발휘하는 게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5일 배수화씨(안성 보개면) 자택에서 했다. 


태그:#배수화, #안성,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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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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