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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은 사실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일반에게도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공위성의 카메라를 통하여 지구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감각을 갖추게 된 것이 불과 반 세기도 안 되는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지구본에서는 그다지 느낄 수 없는 바다의 존재감을 인공위성 사진에 담긴 선명한 푸른 색만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주로까지 확장된 과학기술이 이루어낸 이 놀라운 개가에도 불구하고 그 푸른색 바다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바다가 품고 있는 미지를 기지로 바꿔놓으려는 인류의 노력은 오랜 옛날부터 계속 있어 왔지만, 그 대부분이 과학의 이름보다는 문학이나 예술의 힘에 더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미지를 더욱 심화시킨 적도 많았으니, 본격적으로 바다를 다루는 과학인 해양학(oceanography)은 사실 지금부터 시작인 미래학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바다를 생각할 때면 마치 후광처럼 떠올리게 되는 문학과 예술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서 온전히 과학으로만 설명되는 바다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순수한 천문학으로만 설명되는 별을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과학의 대척점에 망설임 없이 시(詩)를 세워놓는다. 그리고 그 둘은 너무 달라서 마치 영원히 상종할 수 없는 것들인 양 따로따로 취급 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닐 것이다. 자석의 양극을 이루고 있는 것이 N극과 S극이지만, 자석은 그 둘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지 않은가! 또한 자석의 양극은 자신과 같은 극성은 밀어나고 다른 극성만 죽자고 끌어안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다른 것들은 배척과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연대와 협력의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책의 경우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관념적인 철학을 논하되 구체적인 일상의 삶과 맞닿아 있는 철학책이 더 흥미롭게 읽히고, 지나간 역사를 얘기하되 지금 이 시대의 현실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역사 인식을 보여주는 역사서가 더 각광받는 법이다. 과학서적도 마찬가지여서, 과학적 사실을 기술하되 학술적인 건조함과 딱딱함보다는 상상력 넘치는 묘사와 서정적인 문체로 쓰여진 과학서적이 우리의 구미를 더 당긴다.

 

1952년에 처음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해양과학서적 <우리를 둘러싼 바다>도 바로 그러한 책들 중 하나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다른 극성을 갖는 과학과 문학이 어떻게 서로를 끌어 안은 채 눈부신 한 몸으로 태어날 수 있는가를 이 책만큼 잘 보여주는 책은 지금도 매우 드물다.

 

2.

 

우리는 흔히 레이첼 카슨의 대표작으로 <침묵의 봄>을 손꼽는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바다>만큼 그녀의 저서 전반을 아우르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책은 없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는 투철한 과학적 태도와 상상력으로 그 사실들을 해석해 낼 줄 아는 문학적 감수성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 참으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예컨대, 달이 빠져나가고 남은 상처가 바로 태평양이라는 가설(이것은 당시만 해도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던 달의 기원설이었다)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아주 생생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상상력으로 한 편의 장엄한 우주적 드라마를 연출해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당시까지도 제대로 탐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수천 미터 수면 아래 심해의 모습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의 삶을 기술하고 있는 부분은 마치 공들여 촬영한 해양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이러한 바다의 미스터리와 기이한 심해 생태계 등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섬의 탄생을 다루고 있는 장에서 말하고 있듯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이라는 종이 저지르고 있는 우매하고 야만적인 생태계 파괴 행위에 대한 깊은 우려가 사실은 그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은 섬의 파괴자로서 가장 어두운 역사 중 하나를 기록했다. 사람의 발이 닿는 섬은 어디나 재앙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은 삼림을 베어 내고 불태움으로써 환경을 파괴했다. 또, 사람을 따라다니는 흉악한 동반자인 쥐를 섬에 들여 놓았다. 그 외에도 식물뿐만 아니라 염소, 돼지, 소, 개, 고양이를 비롯해 외래 종을 잔뜩 섬에다 풀어 놓았다. 섬에 살고 있던 종들에게는 차례로 멸종이라는 먹구름이 닥쳤다. - 145쪽, 섬의 탄생

 

이렇게 섬에서 멸종된 종들의 대표적인 것이 조류(鳥類)인데,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서 결국은 멸종되고 만 모리셔스 섬의 도도나 뉴질랜드의 모아 등의 예를 들면서 그녀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아름다운 것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정화되지 않은 산업폐수와 생활하수 등에 오염된 강물이 흘러 들고 방사능 핵폐기물을 버리는 쓰레기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또한 한 해에도 몇 번씩이나 해상 사고로 좌초된 선박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의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나 푸르고 맑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광대한 바다도 임계점을 넘어서면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아직도 지구(地球)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이 사실은 수구(水球)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해양 오염이 결국은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목숨을 겨누는 칼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생명이 처음 태어난 바다가 그러한 생명 중 한 종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기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는 비록 나쁜 방향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계속 존재하겠지만, 정작 위험에 빠지는 쪽은 생명 자체이다. (19쪽, 서문)

 

3.

 

이렇듯 지구의 자연환경과 생태계 파괴에 대한 인간의 책임감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그 이후에 출간된 <침묵의 봄>을 그 안에 품고 있는 모태이기도 하다. <침묵의 봄>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사실에 비하면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일으킨 파도는 어쩌면 미미하고 사소한 잔 파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바닷가의 지형을 형성하고 바꾸어 놓는 것이 어쩌다 밀어닥치는 해일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닷가에 밀려와 부딪치는 잔 파도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은 단 며칠 동안의 혁명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개혁이듯이 말이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침묵의 봄>보다 훨씬 더 진지하면서도 격렬한 책으로 평가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깊이 설득하고 있다. 또한 파괴된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고발하기보다는 아직도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계의 신비를 찬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레이첼 카슨의 외모와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집필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둘러싼 바다>을 읽어 나갈 때, 우리는 물 빠진 바닷가 갯바위와 달밤에 모래사장을 헤매는 일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한 해양과학자이자 시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 사람은 레이첼 카슨이겠지만,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스스로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바다 앞에서 한때 우리는 모두 호기심 어린 과학자이자 매혹 당한 시인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깊은 내면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자신만의 바다를 하나씩 지니고 있기에.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그렇게 깊이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바다를 불러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를 둘러싼 바다 (The Sea Around Us)>

ㅇ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지음
ㅇ 이충호 옮김
ㅇ 도서출판 양철북 펴냄
ㅇ 2005년 11월 10일 1판 4쇄
ㅇ 값 13,800원


우리를 둘러싼 바다

레이첼 카슨 지음, 이충호 옮김, 양철북(2003)


태그:#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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