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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죠?"

"카리스마가 있는 마스크요."

"맞아요. 그런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얼굴은 아니더군요. 아마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한 사람이겠다 싶었죠. 저도 학창시절에 기타 좀 쳤는데 그 사람 기타 멘 거 보고는 누굴까 궁금해지데요. 그래서 맘에 두고 있다가 며칠 후에 학원 원장을 본 김에 물어봤죠. 누구냐고."

"누구래요?"

 

이영국이 맞장구를 치듯 물었다.

 

"모른대요. 그런 사람은 학원에 오지도 않았대요.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그런데 그 사람하고 국회의원 죽은 거 하고 무슨 상관있어요? 여긴 앞 건물에 가려서 검찰청은 뵈지도 않는데?"

"옥상은 아무나 올라갈 수 있나요?"

 

의아해하는 경비원의 반문을 못들은 척하며 이영국이 질문했다.

 

"못 올라가죠. 항상 잠겨있어요."

"한 번 올라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경비원이 사무실에서 열쇠를 가져와 이영국을 안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육중한 철문을 열자 시원스레 펼쳐진 옥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위로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옥상펜스는 성인남자의 키 높이였다. 까치발을 들어야 펜스 너머가 제대로 보였다.

 

"화장실은 이쪽 라인에 있습니까?"

 

이영국이 옥상 오른쪽 가장자리에 서서 손짓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뇨. 화장실은 저기 뒤쪽으로 있어요."

 

경비원이 팔을 쭉 뻗어 빌딩 뒤편을 가리켰다.

 

"그럼 혹시 이쪽 라인으로 빈 사무실이 있나요?"

"예, 지은 지 좀 되다보니까 다른 빌딩보다는 다소 후지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몇 개 비어있어요."

"이쪽 라인에도 있습니까?"

 

이영국이 재차 질문하자 경비원이 휴대폰을 꺼내어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빈 사무실이 모두 7개인데 이쪽 라인엔 21층에 하나 있다고 하는군요."

"그리로 한 번 가보죠."

 

이영국이 반색을 하며 앞장서서 내려갔다. 2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기타케이스를 멘 학원생들이 몰려있었다. 두 사람은 복도를 따라 오른쪽 끝으로 걸어갔다.

 

"어, 문이 안 잠겼네?"

 

손잡이를 돌려본 경비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밀었다.

 

"평상시 잠가놓지 않습니까?"

"이상하네요."

 

경비원이 짧게 대답하고 성큼성큼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이야, 여기서는 검찰청이 보이네? 이 빌딩에 5년 동안이나 있었는데도 전혀 몰랐네?"

 

이영국이 왜 이쪽 라인에 집착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경비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영국은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실내를 서성거렸다.

 

경비원의 제보로 최소한 범인의 몽타주만이라도 제대로 작성할 수 있게 된 것에 잔뜩 고무된 이영국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광역수사대에 복귀했다. 그런데 팀장은 그보다 더 기쁜 얼굴로 이영국을 마중하는 것이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탐문수사 결과를 속에 감추고 이영국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좋지, 좋고말고. 이제 좀 살 것 같네. 너무 홀가분해."

 

팀장이 두 손을 치켜들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다가 이영국의 눈치를 힐끔 살피고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불현듯 그의 표정까지 가라앉아 있었다.

 

"자네에겐 안 좋은 일일 수도 있겠네."

"뭐가요?"

"내일부터 경찰청으로 출근하게."

"발령났어요?"

"흠, 발령이라 할 수도 있겠군."

 

팀장이 헛기침을 두어 번 킁킁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되었네. 요원으로 자네가 차출되었어."

 

야당과 언론의 공세에 결국 내무장관과 경찰청장이 두 손을 든 것이었다. 특별수사본부는 경찰청장 직속으로 별관에 사무실을 두고, 본부장은 경찰청 심의관인 윤명오 경무관이 내정되었다. 본부요원으로는 T경찰서의 박만규, J경찰서의 서인혁, 서울시경의 이영국, 그리고 경찰청의 수사통 김성호가 차출되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기자회견은 사실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차원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 기자. 연쇄살인사건의 범행 동기가 뭐라고 자네는 생각하는가?"

 

편집장이 대뜸 물었다. 정성원은 기자회견장에서 복귀하자마자 기사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글쎄요, 편집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성호와의 술 약속 때문에 마음이 바쁜 정성원은 고개도 들지 않고 오히려 반문했다.

 

"어때, 회견장 분위기는? 뭔가 새로운 게 나올 것 같애?"

"별로예요.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고는 해도 당분간은 기대할 게 없겠더라고요."

"그럼 어쩐다?"

 

편집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성원은 기사 초고를 다듬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수사본부에서 나올 게 없다고 우리가 손을 놓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잖아? 사안이 사안인 만큼 기사를 안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말인데, 정 기자, 기획기사를 싣는 건 어떨까?"

 

편집장이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쉬엄쉬엄 말했다.

 

"총기에 의한 저격은 테러리스트들이 종종 사용하는 수법이고 하니까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테러사건을 다루어봤으면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어차피 당분간은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기사가 없을 테니 그 동안 독자들을 잡아둘 수 있는 아이템인 것 같군요."

"옴진리교 사건, 케네디 저격사건, 이슬람 무장 세력의 테러사건, K.K.K단, 마피아, 삼합회, 적군파, 또 뭐 있지? 여하튼 테러야말로 인류가 생존하는 한은 끊이지 않을 테마지."

 

편집장의 말에 동의를 표하느라 정성원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원고에 가 있었다. 


태그:#연쇄살인사건, #특별수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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