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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23일 민주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노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민주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서는 섭섭함을 표명해왔다. 분당과 특검은 동교동계 인사들도 사석에서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DJ가 직접 공개적으로 '사과'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DJ측의 한 핵심 인사는 "사실상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DJ는 이날 정세균 전 의장 등 열린우리당 마지막 지도부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작심한 듯 "오늘은 쓴소리를 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DJ는 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의 합당 과정에서 사과하고 청산했어야 하는 것으로 ▲민주당 분당 ▲대북송금 특검 ▲국정원장 두 명(임동원·신건) 구속 문제를 들었다.

DJ측 핵심 인사 "사실상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요구한 것"

DJ는 특히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민족적인 일을 정략적으로 상처를 입힌 데 대해 사과했어야 했다"면서 "애초 문제가 됐던 북한과의 문제는 (특검 과정에서) 문제도 되지 않고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150억원(뇌물 수수 혐의)도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무죄가 됐다"고 말했다.

DJ는 또 "안기부 X파일은 문민정부가 나를 도청한 게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임동원·신건 두 국정원장을 아무런 증거 없이 부하 직원 몇 명의 말만 듣고 구속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배석했던 윤호중 의원은 "과거 정부가 DJ를 도청했고 그것이 X파일로 남아있는데 오히려 도청을 중단시킨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건 문제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DJ는 분당에 대해서는 "국민은 민주당에 정권을 줘서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켜 줬는데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갈라섰다"며 "국민의 마음이 열린우리당을 떠난 것은 분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DJ의 이날 발언의 핵심은 "분당과 특검은 열린우리당에서 책임져야 했다"며 "그랬으면 국민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을 것"이라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DJ의 발언은 형식상 열린우리당 전직 지도부에 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즉, 형식상으로는 '열린우리당 책임에 대한 국민 마음의 응어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 대통령의 책임에 대한 DJ 자신의 응어리'를 표출한 것이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은 "제대로 '청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그러나 DJ측의 한 핵심 인사는 "사실상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요구한 것"이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결자해지'하라는 메시지가 아니겠냐"고 밝혔다.

DJ, 노 대통령 사과가 '결자해지'이자 정상회담 성공 위한 '첫 걸음'으로 인식

사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한 번도 유감을 표명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특검 수용의 '불가피성'을 들어 정당화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파격적으로 DJ 동교동 사저를 방문한 적이 있다. DJ측은 그때 내심으로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사과를 하지 않았고 사저 방문 한 달여 뒤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연설에서도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원칙에 따른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그 뒤에 DJ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궁금해서 청와대측에 "왜 사과를 하지 않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일부 측근은 "어차피 맞을 매라면 같은 편에게 먼저 맞는 게 낫지 않냐"며 일종의 '예방주사론'을 폈다고 한다. 현 정부에서 사법처리해 사면복권함으로써 정리하고 넘어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특검 해서 들추고 사법처리하면 더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DJ는 대북송금 특검으로 옥고를 치른 상징적인 존재인 박지원 전 장관에 대해 4년반이 지나 이 정권이 끝나가는 데도 아직 '복권'이 안 된 것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들은 다른 사람은 다 사면복권이 되었지만 정작 DJ의 분신인 박 전 장관만 '복권'되지 않은 현실에 대해 특검 수용이 '원칙에 따른 선택'이라는 노 대통령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노 대통령이 '수많은 법조인 중에서 하필이면' 송두환 전 대북송금 특별검사를 헌법재판관에 내정한 것도 DJ측을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민주당은 당시 "대북송금 특검을 지낸 송씨를 헌법재판관에 내정한 것은 이 사건 관계자들을 다시 한번 모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열린우리당에서도 '범여권의 대통합을 추진하는 마당에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자 특검이 '원칙에 따른 선택'임을 강조했던 청와대는 동교동에 사람을 보내 '송두환 헌법재판관 내정자가 인준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한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DJ측의 핵심 인사는 "그때 우리의 '협조와 지원'이 없었다면 노 대통령은 좀더 일찍 임기말 '레임덕'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핵심 인사는 "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만큼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도 좋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북한측이 그동안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노무현 정부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온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결국 DJ는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특검으로 손상된 자신과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결자해지'이자 제2차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첫 걸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태그:#대북송금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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