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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음악작곡가 이윤경의 설치음악 '피아노 리액션'
ⓒ 김기
음악을 전시한다? 작곡가의 작곡노트나 애장품 등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지난 6월 8일부터 7월 25일까지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주제기획전 <재활용주식회사>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한 전시는 미술가의 작품이 아니라 현대음악작곡가 이윤경씨의 음악설치였다.

전시실을 들어서면 어둡고 넓은 공간에 뚜껑이 열린 두 대의 피아노가 기이한 모습으로 놓여져 있다. 건반 쪽으로는 색색의 전기줄들이 복잡하게 늘어뜨려져 있고, 피아노 몸체로부터 천장까지 하얀줄들이 쭉쭉 뻗어있다.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독특한 광경에 조심스레 다가서는 순간 띠리리~ 하고 소리가 난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면 또 다른 소리가 이어진다.

건반을 두드려서 연주하는 피아노가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에 의해서 센서가 반응하여 그것이 진동장치를 통해 피아노줄을 울리는 것이다. 두 대의 피아노에 준비된 음악은 ‘새야 새야’ ‘아리랑’ ‘나비야’ 등 익숙한 동요거나 민요이다. 물론 현대음악 작곡가가 그것을 그대로 녹음된 듯이 연주되게 한 것은 아니다.

납득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각각의 노래들의 음가만을 살렸다는 것이다. 즉 녹음된 노래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노래에 사용된 음들이 관찰자의 관심도에 따라 발현된다. 관심을 갖고 피아노 주변을 꼼꼼히 돌게 되면 거의 모든 음들이 반응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 바로 돌아선다면 불과 몇 개의 음만을 연주 혹은 듣게 된다.

▲ 어둡고 너른 공간에 뚜껑이 열린 피아노 두 대가 놓여 있다. 그 피아노 몸통에서는 천정까지 무수한 백색끈이 뻗어 있고 누군가 다가서면 띠리리 소리를 낸다.
ⓒ 김기
작가가 의도한 것은 연주라는 혹은 음악의 의도에 대한 해체적 접근으로 보인다. 피아노에 대한 관심으로 다가서는 행위로 인해 의도없이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 가치로서의 음악은 물론 아니겠으며, 그것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 역시 보통 익숙한 피아노 소리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두 가지 목적 혹은 의도를 표현한다. 작가가 전시도록에 밝힌 글을 통해 그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작곡사로서의 내게 공간의 의미는 소리의 발생으로부터 출발하여 공간에서의 울림을 거쳐 귀로 전달되는 과정의 물리적인 소리현상이 존재하는 실존의 장소이며 또한 그로인해 청중과 만나게 되는 교감의 장소이기도 하다.”

즉, 무대와 객석이라는 형식 공간의 구분 혹은 연주자와 청중이라는 관념의 공간을 허무는 특정한 공간 속에서 기존의 개념을 해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연주자이자 청중인 관찰자들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 현대음악작곡가 원로 이만방 씨와 함께 벌인 퍼포먼스.
ⓒ 김기
물론 작곡가 이윤경의 음악설치에 대해서 모든 관찰자들이 그렇듯 깊고 골치 아픈 사색까지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음악설치에 대해서, 그것이 무슨 음악이냐고 볼멘소리 머리에 담겨지는 관찰자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디오 아티스트라고만 생각하는 백남준이 훌륭한 현대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고 현대예술이라는 무한경계의 실험성을 감안한다면 이윤경의 그런 음악설치는 많은 사람을 즐겁게 속인 훌륭한 예술사기가 될 것이다. 백남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 케이지나 첼로 대신 티비를 연주했던 샤롯 무어만 등은 모두 현대 음악가들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현대 음악가들이 존재하지만 이윤경은 90년대부터 꾸준히 음악설치를 시도해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프로필에는 무슨 음악당에서의 연주보다 갤러리 등의 장소가 많이 보인다.

전시 마지막 날인 25일. 현대음악작곡계의 원로 이만방씨와 이윤경이 공개적이지 않은 마지막 퍼포먼스를 한다기에 현장을 찾았다. 두 작곡가는 서로의 작업에 대해 자주 토론을 나누는 사이다. 단지 센서만 찾아서 반응만 시키면 될 일을 왜 퍼포먼스라는 개념까지 쓸까 의아했지만 우선은 그들 둘의 하는 행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기록하기로 하고 사진기 앵글을 잡아갔다. 조금 하고 말 줄 알았던 두 작곡가의 퍼포먼스는 점입가경 식으로 더욱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변해갔다. 누가 봐도 노학자가 분명한 이만방 씨가 셔츠를 벗더니만 급기야는 상의 속옷까지 벗어젖히고 소리사냥에 나섰다.

전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의아한 표정으로 지났고, 엄마 손에 붙들린 꼬마들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두 사람의 기이한 퍼포먼스 주변에서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시실에는 참 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게 됐다. 물론 아무리 그래봐야 거기서 아리랑을 직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꽤 어렵고 까다로운 이윤경의 설치음악 <피아노 리액션>은 깊은 의미 따위 아랑곳 않는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놀이터였다.
ⓒ 김기
그렇지만 두 작곡가의 소리 사냥은 단지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또 그들 나름의 음악적 설정이자 연주였다. 처음에는 그들의 모습에 천착하다가 이내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공간에서 길고 짧게 진동하는 두 대의 피아노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들의 퍼포먼스가 끝나자 구경나온 어린 아이들이 더욱 신났다. 그것이 시청광장의 분수 정도의 흥미일지는 모르겠으나 자신들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반응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운 것이다.

기실 이론적으로는 하도 어려워서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을 것 같은 현대음악이지만 그것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대상은 성인이 아니라 아직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은 어린아이들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 날 어린이들이 이윤경의 음악설치에 재미있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셋은 차 한 잔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품에 대해서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모두 동원해서 묻고, 토론하였다. 마침내 짧지 않은 시간을 털고 일어설 때 그동안 오갔던 무수한 단어들을 정리하는 것은 현대예술이라는 다분히 서양적 발상에서 궁극적으로는 우리음악, 우리예술로의 번안을 어떻게 시도하고 성공하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 몫은 당연히 작가이다.

태그:#설치음악, #이윤경, #현대 음악, #이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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