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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했다. 후진들이 선배들보다 뛰어나거나 나아질 가망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자(孔子)의 말이다.

“젊은 후배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어떻게 내자(來者)가 오늘의 우리보다 못하겠느냐. 나보다 연소한 사람들의 뻗어나가는 힘은 무서운 바가 있다. 그러나 사십, 오십이 되어도 이름이 나지 않으면 역시 두려울 것이 없느니라.”


후배나 후학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는 비단 이 뿐 아니다. 우리 속담에도 “먼저 난 머리보다 나중 난 뿔이 무섭다”고 했다. 당연히 후배가 선배보다 뛰어나고 우수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이야기다.

인체구조상 나이를 먹어 가면 당연히 모든 면에서 기량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학문적 접근방법이나 지식습득 속도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족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복잡한 인관관계 또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놓게 되면 그 네트워크는 더욱 복잡해진다. 시간을 많이 빼앗기게 마련이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게 된다,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일정한 나이, 적어도 자녀들이 결혼하여 완전 독립할 때까지는 밑 빠진 독 마냥 숱한 명목과 이유로 돈이 들어간다.

30,40대 가장의 풀죽은 모습이 여기서 시작된다. 직장에서는 일로 쫓기고, 집안에서는 돈과 사람 관계로 시달리게 된다. 짜증만 가득해진다. 이런 모습으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자연히 후배들에게 밀리게 되고, 상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업적이나 실적달성은커녕 업무기피현상마저 느끼게 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렇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그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대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하면서 실력을 놓지 않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술이나 밥을 사준다고 해서 존경을 받을 수는 없다. 설사 있다 해도 그것은 몇 차례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 역시 바쁜 나머지 차차 그런 상사나 선배를 피하기 마련이다. 술과 밥을 얻어먹을 때는 좋지만, 그 외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날에는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지면 “일없는 사람들, 다 나가지!” 하고 외치는 상사나 선배가 가장 존경받았다. 한턱 쏜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고, 그 자리에 가면 뭔가 얻어들을 정보와 사내소식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술자리에서의 시간낭비가 너무 아깝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회사정보는 이미 대부분 투명하게 공개돼 있고, 몸 관리를 위해 식사량을 줄이는 판에 이 같은 회식동참 요구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기자생활은 예나재나 도제(徒弟) 스타일의 교육방식을 띠게 된다. 그러다보니 저녁마다 뭉쳐서 쏘다니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많은 직장에서 아직도 그런 풍토가 남아 있는 듯하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일이 있다. 후배에게 술과 밥을 샀을 경우, 아니 자신이 어떤 선배로부터 그러한 대접을 받았을 경우 과연 그 자리를 기억하고, 고맙게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냥 형식적이고 건성으로 “아, 오늘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불러주시면…”하는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도 선배들은 왜 후배들을 매일같이 불러내 그러한 행위를 계속하고 있을까? 물론 전부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술자리나 회식문화와 관련하여 자주 회자되는 말이 있다. 1차에서 돈을 내는 사람은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고마워한다. 2차는 누가 돈을 냈는지를 모른다. 3차는 자신이 갔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돈을 냈다는 사실 조차도 까마득하게 모른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서 얼굴을 대했을 때 불콰해진 얼굴로 서로 민망함만 느낄 뿐이다. 아니, 그 후배는 그 선배를 오히려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술자리에서 후배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는 것도 위험하다. 그 후배는 매일 같이 자기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일은 다른 선배나 동료와 만나게 마련이다.

그 자리에서의 말은 그대로 전달된다. 말이 말을 만든다. 오히려 포장되거나, 과장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회사 내 트러블의 상당 부분이 이러한 일로 비롯된다. 돈은 돈대로 쓰고, 뺨맞는 격이다.

후배나 부하 직원을 잘 다루는 방법은 술이나 밥을 사주는 것보다는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하고 활용하며, 나아가 정보 안테나로서 가까이하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을 청취함으로써 자연스레 그들의 생각과 소신을 접하는 게 최선이다.

후배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선배치고 제대로 평가받는 사람 드물다. 가르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그리고 그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타일러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앙금은 오랜 세월 동안 남게 마련이며, 나중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 부메랑(Boomerang)이 될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보니 직장 내에서 후배나 부하직원을 혼내거나, 나무라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각자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하고, 학연과 혈연, 지연을 따져 끼리끼리 모여 노는 일들이 오히려 더 많아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이너서클(Inner Circle)의 폐해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아니, 이것이 하나의 중독현상으로 나타나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비난하는 등의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중에는 그 칼이 자신을 향하게 된다. 옛날 조선시대의 파벌이나 사색당파(四色黨派)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특히 회사 인사가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끼리끼리의 모임이 많아지고, 뒷말들이 무성하게 된다. 진흙탕에는 발을 아예 들여놓지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발을 내놓지 않으면서 남의 등을 떠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은 그처럼 냉정하고, 잔인하다. 뒤늦게 후회해 봤자, 이미 쏟아진 물이다.

하나만 더 당부하자. 나는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휴일이나 늦은 밤 시간에도 후배들을 집으로 데려갔다. 몇 년에 한두 번 하는 집들이가 아니라 내 집에서 자고 가지 않은 후배들이 거의 없다 할 정도였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같이한 후 자연스레 같이 어깨동무를 하는 식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너무 자신을 오픈하고 허물없이 노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 당시 내 집을 들락날락했던 후배들 중에 지금까지 내 집을 찾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가장 어려워하고, 존경받는 선배들은 과연 어떤 경우일까? 매일 술 사고 밥 사는 선배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큰 소리로 혼내고, 일처리 과정과 결과를 일일이 따져 묻는 선배일까?

놀랍게도 답변은 하나로 통일된다. 회사일로 새벽녘까지 접대를 하고서도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출근해 앉아있는 선배이다.

틀림없이 내일 아침에는 늦게 출근하고 입에 술 냄새를 풍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러한 기대와 예상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이다. 늦게 출근하는 선배나 상사를 후배나 부하직원들이 존경할 리 없다. 또 그들 눈에는 어떤 선배와 상사가 게으르고, 늦게 출근하면서 일찍 퇴근하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그들의 눈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

선배나 상사는 당연히 말과 행동에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시내용이 정확하고, 일을 풀어가는 능력이 후배나 부하직원보다는 탁월해야 한다. 또 그들을 감쌀 수 있는 포용력과 함께 일에 대한 결단성과 과감성이 있어야 한다. 물에 물탄 듯해서는 결코 존경을 받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아들과 직장 후배들에게 던지는 생각의 메시지입니다.


태그:#직장,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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