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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품 오솔길
ⓒ 김대갑
진초록 색감이 뚝뚝 묻어나는 유월의 오후, 평화롭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하품하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처럼 흘러나오는 작은 공원.

세계 유일의 유엔 묘지가 옆에 있고,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볼 수 있는 박물관이 편안한 자태를 선보이는 평화 공원. 게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문화회관의 아리아가 청명한 성하의 계절을 그림처럼 희롱하고 있는 곳.

가만 가만히 평화공원의 오솔길을 걸어가 본다. 푸른 잔디밭에는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공놀이를 즐기고 있고, 갓 돌이 지난 유아들이 뒤뚱뒤뚱 걸음마를 하고 있다. 이름이 '평화공원'이라서 평화로운지, 아니면 한가한 오후의 분위기가 평화로운지 절로 시심이 물컹물컹 묻어난다.

▲ 작품명 '화합', 한국
ⓒ 김대갑
발걸음은 어느덧 조각품들이 유화처럼 앉아 있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화합이라는 부제가 걸린 금속조형물이 청동의 푸른 녹을 찬연한 햇살 아래 노출시키고 있다.

'화합'이란 테마는 평화라는 테마의 상위 범주가 아닌가. 화합해야 평화가 오고, 평화가 와야 화합이 완성되는 것이니까. 차가운 금속으로 화합이란 주제를 표현한 그 발상이 너무 신선하다. 그래서 가만히 쓰다듬어본다. 조각품의 몸통에는 부드럽고 따듯한 온기가 흐른다. 덩달아 내 마음도 부드러워진다.

▲ 아틀란티스로, 한국
ⓒ 김대갑
곧이어 나타나는 신비한 바퀴. 바퀴는 뾰족한 첨탑을 하늘로 밀어올리고 있다. 아마도 신비와 미지의 대륙을 찾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금속성의 질감을 유려하게 표현한 것도 신비롭거니와 바퀴에 뚫린 네 개의 구멍이 자아내는 궁금증도 특이하다. 조각가는 무척 환상적인 세계에 살고 싶어하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 특이한 제목의 조각품, 네덜란드
ⓒ 김대갑
엥, 갑자기 등장하는 벌거벗은 육체라니. 더군다나 성기를 햇살 아래 고스란히 노출시킨 민망한 모습이라니.

제목도 참 특이하다. '넘어지는 인간인가 혹은 추락하는 인간인가 누가 알 것인가?'. 작가의 국적이 궁금하여 자세히 보니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 사람이다. 아하, 풍차라는 낭만적인 오브제를 늘 접하는 나라 사람답게 제목 한번 낭만적으로 지었구나. 남 성기가 있는 걸로 봐서 분명 남자인데, 다리를 하늘로 향해 물구나무선 형국이라 추락과 비상의 경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추락과 비상의 세계를 늘 꿈꾸었던 모양이다.

▲ 아름다운 우리 아가야, 벨기에
ⓒ 김대갑
▲ 작품명 '토템', 이탈리아
ⓒ 김대갑
평화공원의 조각품들은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적도 대륙을 넘나들어 미국과 인도, 그리스, 태국 출신들도 있으며 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만든 작품들도 있다.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조각품들이 뿜어내는 정서와 향기도 제각기 다르다. 주로 화강석 재료를 쓴 것이 많은데,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돌을 소재로 다양한 테마를 연출한 기법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통일을 위한 분투, 그리스
ⓒ 김대갑
그러나 국적에 관계없이 특이한 소재를 가지고 연출한 작품도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가 출품한 '토템'이란 작품은 아프리카 토속 신앙을 소재로 한 것인데, 그 독특한 문양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 신의 의자, 한국
ⓒ 김대갑
이 밖에 한국인이 만든 '신의 의자'란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모티브를 딴 느낌을 주며, 그리스국적의 조각가가 만든 '통일을 위한 분투'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시각도 준다.

▲ 세상의 온갖 소리가 묻어 있다, 인도
ⓒ 김대갑
'소리'라는 작품 또한 무척 신비로운 감을 준다. 넓적한 화강석 판에 음파의 진동모양을 형상화한 것인데, 그 독특하면서도 유연한 흐름이 무척 경이롭다. 이 작품을 가만 쳐다보니 어느새 귓가에는 세상의 온갖 소리가 다 들리는 듯하다.

▲ 평화로운 연못을 바라보며
ⓒ 김대갑
이제 조각품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오솔길을 되돌아간다. 여전히 햇살은 투명한 은빛을 공원 여기저기에 뿌려대고 있으며, 아이들은 천상의 미소를 지은 채 공원 이곳저곳을 소요하고 있다.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더 없이 평화로운 기운이 구름 사이로 숨어 있다. 솜털 구름이 하롱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공원 한쪽에 있는 연못을 가면 내려다본다. 지극히 조용하게 흐르는 물소리. 물소리 사이로 떠다니는 금빛 찬란한 붕어들. 평화란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산, #평화공원, #조각품,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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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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