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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

모처럼 교육 현장의 글에 손이 갔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친 지도 20년이 지났는데 이제 타성에 젖어드는가 보다. 올곧은 교사들의 삶의 모습에 눈을 돌려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데 많이 게을렀다.

임정아 선생이 쓴 <너의 외로움을 믿는다>의 47꼭지 글을 천천히 그리고 시간을 두고 읽었다. 읽으면서 교사로서, 부모로서 아이를 대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본받아야 할 것은 몸에 밸 수 있도록 곱씹었다.

임정아 선생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심지어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되는 순간에도 아이들의 삶에서 눈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그것을 그대로 옮긴다. 선생일 수밖에 없는 임정아 선생의 삶을 뒤따라가 본다.

사물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 엄마에게서 물려받았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다가 문득 개달았다. 길가에 솎아져 버려진 참께 모종처럼 버려지는 아이들도 정성을 쏟으며 사랑을 한 됫박 돌려주곤 했었다고.……(24쪽)

임정아 선생 어머니는 들길에 참께 모종이 솎아져 버려진 것을 보고, '너희들은 어떻게 선택되지 못하고 버려졌구나'하는 가여운 생각에 모종들을 거두어 집 꽃밭 가에 심었더니 가을에 참깨가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는 이야기를 임정아 선생에게 들려주었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몸으로 익혀 아이들에게 그대로 옮겨진다.

흔히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다른 아이들이 필기를 하는데 혼자서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에게 가서 "성현인 볼수록 잘 생겼어. 영화배우 해도 되겠는 걸. 특히 네 눈썹은 백만 불짜리구나."(135쪽)

라고 한다든지, 또 휴대폰 문자 보내는 것을 모른다며,

"난 모르거든 좀 가르쳐 줄 수 있겠니?"
"넌 설명도 참 쉽게 잘하는구나. 금방 이해가 되네. 나중에 선생님하면 정말 잘 하겠다."(142쪽)


라고 말한다. 아이가 마음을 열수 있도록 그리고 다가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래서 마침내 아이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한다. 졸업식 전날 집으로 찾아와 큰절을 하면서,

선생님 덕분에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74쪽)

섣부른 판단보다는 기다림을

봄 여름 쓸모없이 미움 받던 잡초들이 너무나 예쁜 꽃이나 열매를 매달고 있는 모습은 놀랍고 아름다웠다. 시렁풀이라고 흔히 부르던 조그만 풀은 아주 작고 귀여운 샛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름 내내 지긋지긋하게도 난다며 무지막지하게 뽑아 버리던 이름 모를 풀에는 분홍색 조 이삭과도 같은 예쁜 열매가 매달려 있다. 여름철에 바쁜 나머지 미처 뽑아내지 못했던 잡초들이다.

운 좋게 나의 호미질에서 살아남은 그 애들은 가을이 되자 그렇게 영롱하고 이쁜 결정체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가슴이 아려왔다. 공들여 가꾸기는커녕 "아휴, 저 풀들은 언제 다 뽑나? 뽑아도 뽑아도 잡초는 왜 또 나는 거야?" 투덜거리며 짓밟고 증오했던 풀들이다. 그런데도 이렇듯 화사한 생명의 환희로 스스로 빛나고 있나니!(245-6쪽)


늦가을 임정아 선생은 시골집에서 낙엽을 태우면서 이른바 잡초라고 부른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 아름다움은 곧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

▲ 책표지
ⓒ 나라말
어쩌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그 수많은 학생들 중,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게 하나 없어 아무 쓸모없다며 구박당하고 소외당하는 아이들 중에서, 그 애들 삶의 가을날 오히려 이 풀들처럼 탐스러운 꽃이나 열매를 맺는 아이들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그 씨앗을 감추고 있음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발로 짓밟으며 뽑아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일은 없을까 하고.(246쪽)

가슴 뜨끔한 부분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아이들의 겉모습, 그것도 잠깐 스쳐 지나가며 본 것으로 얼마나 섣불리 판단하여 왔는가? 그로 인하여 아이들은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는가?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잡초란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라고 뜻매김하여 놓았다. 그렇다. 아이들에게 무한히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 주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고, 아둔한 눈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여 그 가능성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내었는가?

부모에게는, 교사에게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드러내 줄 수 있는 눈과 노력이, 그리고 기다림의 내공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이력에는 이러한 것을 찾아볼 수 없으니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임정아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깊이 새긴다. 아이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무한한 잠재력을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그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노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반성

흔히들 요즘 아이들은 어떻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나무란다. 이 책에는 그런 것이 없다. 아이들이 변화는 것은 하나의 큰 흐름이다. 그 흐름으로 임정아 선생은 뛰어 들어 간다.

예전에는 등나무 그늘 아래 다소곳이 앉아서 사뭇 진지하게 아이들과 상담을 했었다. 세상은 이렇듯 막무가내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학교 운동장엔 그런 등나무 그늘도 없거니와 아이들은 수업 마치기 무섭게 학원 간다며 순식간에 학교를 빠져나간다. 언제 다정히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없다. 이러한 때 채팅이라도 하며 그 애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행운이라 여기며 오늘도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린다. (119쪽)

아이들과 대화 시간이 없음을 탓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아이들과 채팅을 통하여 그들의 삶에 다가서고 이해한다. 무엇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임정아 선생의 태도가 아름답게 와 닿는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철저한 자기반성이 뒤따른 것이리라.

아이들에게 성실성을 길러주기 위해 무결석반을 강조했던 임정아 선생. 하지만 어느 날 언니가 죽었는데도 자기 때문에 무결석반이 깨어질까봐 걱정하는 반 아이를 보고 그것이 얼마나 아이들을 힘들게 하였는지 깨닫고 무결석반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한 거지! 무결석에 집착한 나머지 아이들의 인간적인 권리를 모르는 사이에 박탈한 것은 아닐까? 혹시 나의 무결석 방침이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담임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지?……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우울했다. 지금까지 우리 반 아이들. 얼마나 고달팠을까? 살다보면 아플 때도 있고, 오늘의 선화처럼 학교에 가지 못할 이런저런 가족사가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이 인간사이다. 그런데도 내색 못한 채 학급의 무결석을 깨지 않으려고 어린 가슴들은 얼마나 조였을까?(38쪽)


20년 동안 타성에 젖어들었던 교사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아름다운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먼저 아이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 아둔한 눈으로 하는 섣부른 판단보다는 아이들의 잠재력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내공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책 제목 : 너의 외로움을 믿는다
글쓴이 : 임정아
출판사 : 나라말
가격 : 9,000원
쪽수 : 277쪽(47꼭지의 글이 있음)


너의 외로움을 믿는다 - 임정아 교육 산문집

임정아 지음, 나라말(2006)


태그:#임정아, #교사, #아이,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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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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