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역이란 역은 빠짐없이 멈춰서는 완행열차. 속도가 느려 가까운 다음 역까지는 달음박질 잘하는 젊은 사람들은 뛰어 가는 것이 빠르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급행열차라도 지나가려면 어김없이 멈춰서기 때문에 연착하기를 밥 먹듯이 해도 누구 한 사람 항의하지도 않았던 완행열차의 착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 장이 서는 날이면 그 곳 정거장에선 온갖 농산물은 물론이고 닭이나 돼지까지 데리고 타던 완행열차. 사람 사는 맛 또한 쏠쏠한 정이 풋풋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시속 300km를 달리는, 아니 태풍 '매미'보다 빠른 KTX가 보편화 되었지만(KTX의 최고 상업 운행 속도는 시속 300km이며, 초당 83m. 태풍 매미는 초속 60m) 누구에게나 완행열차에 얽힌 추억 한두 가지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학교 다니느라 자취를 할 때는 3개월 단위로 집에 내려가서 생활비와 용돈을 타오는데 그것도 한 열흘 지나면 주머니가 헐렁해서 찬 바람이 불었고 주머니에는 돈 대신 빈주먹만 찔러 넣고 다니다가 친구에게 몇 푼 빌려서 완행열차에 몸을 싣는다.

시도 때도 없는 연착에 굼벵이 기어가듯 느려터진 완행열차는 좀처럼 영주 역에 도착 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앉아서 가면 졸기라도 하련만, 서서 대여섯 시간을 갈 때는 차라리 내려서 기차를 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에 가서는 온갖 호강을 다하다가 3개월치 생활비를 받아 주머니가 두둑해 지면 에누리 없이 특급 열차 표를 사들고 기차역을 한 바퀴 휘 둘러 보며 괜히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영주와 대구를 오가는 몇 년 동안 나는 귀에 딱지가 앉아도 할머니의 상기된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기차에 얽힌 할머니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할머니께 전해들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놀라운 일화다. 내가 처음으로 기차를 타 본 것이 아마 5살 때쯤인 것 같다. 내가 기억해서가 아니라 할머니께서 이야기해 주셔서 그랬나보다 할 뿐이지만. 기차 안에서의 사건을 짐작 해 볼 때 엄청 짓궂은 아이였던 것만은 틀림 없었나보다.

아버지께서 논산 훈련소의 장교로 계시면서 군인 가족에 따른 애로사항 중의 하나가 잦은 전속이었다고 한다. 언니가 초등학교 6년을 졸업하기까지 거친 학교가 무려 4개였다니 알만하다. 아버지의 잦은 전속으로 몸이 약하신 엄마는 나를 시골의 할머니 댁에 보내기로 결정을 했고 할머니를 따라 영주 행 기차를 탔던 것이 기차를 처음 타게 된 첫 경험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차멀미를 심하게 하셔서 정신없이 기차에 누워 계셨단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서럽게 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지만 아무도 악을 써대며 울어대는 나를 달래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꿈결 같기도 하고 생시 같기도 하게 할머니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어떤 아주머니께서 울상을 하며 할머니를 흔들어 대고 있었단다.

"할매요, 야가 할매 손녀래요? 아이구 야 좀 말려 주소."
"아니, 무슨 일인데 그래요?"

차 멀미에 지친 할머니께서 겨우 눈을 떠 보니 아이 울음소리는 그쳤는데 그 대신 기차 안에는 돼지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단다.

이야기인 즉, 내가 자꾸만 울어대니 너무 시끄러워서 아기 돼지를 장에 내다 팔려고 돼지를 데리고 기차를 탄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달래느라 돼지를 만지고 놀게 했는데 나는 그만 돼지에게 성질을 부리느라 아기 돼지의 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더란다.

돼지는 아프고 괴로워서 꽥꽥거리며 발버둥을 치는데, 나는 아무리 달래도 돼지를 놓아 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돼지와 나의 작태가 우스워서 웃다가 나중에는 돼지 주인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더욱 박장대소를 했단다.

그 후부터 나는 할머니가 '기차 타고 애미한테 가자'라고 하시면 얼른 돼지우리로 달려가서 아기 돼지가 없으면 어미 돼지라도 끌고 나오려고 발버둥을 쳐서 집안 식구들을 웃기곤 했 단다. 이 역시 완행열차에서나 있음직한 억지로 만들 수 없는 추억이 아닌가 한다.

태그:#아기돼지, #완행열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