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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추모제에 참석한 고 손상규씨의 어머니 이옥희씨가 '보고싶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 손에 쥐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07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추모제에서 군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고 손상규씨의 어머니 이옥희씨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울먹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옥희(51·충북 제천)씨는 2005년 4월 5일 이후부터 자장면을 먹지 못한다. 죽은 아들 (손)상규(사망당시 26세)가 좋아했던 음식이다. 평소 식성이 비슷했던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볼때마다 상규가 생각난다.

"아직도 상규 사진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에미로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왜 죽었는지 모르니 분해 죽겠다."

이씨는 가방에서 아들의 사진을 꺼내더니, 보지도 않고 기자에게 건넸다. 그는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에서 '하늘에 부치는 편지' 낭독자로 무대에 섰다. 잔뜩 잠긴 목소리로 그리던 아들의 이름을 마음껏 불렀다.

"죄를 지어 감옥에 갔으면 면회라도 할 수 있고, 지구상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 만날 기약을 할 수 있고, 전화해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텐데…. 상규야. 너의 억울하한 죽음의 진상이 밝혀질때까지 싸우마."

아들이 죽은 뒤 이씨의 일상은 180도 변했다. 직업 군인이었던 남편이 퇴직한 뒤 부부는 장사를 시작했었지만 요즘은 장사에 전념할 여유가 없다. 아들의 의문사를 풀만한 조그만 빌미라도 있을까 싶어 아들의 부대(경기도 파주), 육군본부, 국방부 등을 찾아다녔다. 울분을 못 이겨, 그의 표현대로, 지위가 높은 군인들의 '귓방망이'를 후리는 일도 많았다.

2005년 4월 5일, 그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씨는 합동추모제가 열리기 전인 오후 2시께 기자와 만나, 전직 직업 군인의 아내가 군대에 불신을 갖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씨는 지난 2005년 4월 4일 오전 상규가 정보장교로 근무하던 부대(25사단 70연대 2대대)에서 느닷없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육군 중위였던 아들이 이유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출근 시각에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탈영했다'는 전화가 걸려온 데다, 정보장교에게 '근무지 이탈'이 아닌 '탈영'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미심쩍었다. 부부는 곧바로 부대로 향했다. 아들을 만나고 돌아올 계획으로 부대 인근에서 하룻밤 묵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부대 안에 걸린 장교들의 사진 속에서 아들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죽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헌병대 수사관이 부부에게 다가왔다.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아들이 부대 뒷산의 나무 한 그루에 목을 맨 채 발견된 것이다. 곧바로 현장을 찾았다. 아들은 니트 티셔츠에 곤색 트레이닝 바지와 모자가 달린 재킷을 입고 있었다. 재킷의 모자는 씌워진 채였다. 마치 나무 아래 서서 부모를 맞는 듯 했다.

이씨는 "아들이 신고 있던 흰색 운동화는 깨끗했다, 산을 올라갔는데 어떻게 흙 하나 묻히지 않고 갈 수 있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4월 3일 부대측이 전달한 증거품에는 희한하게도 운동화에 흙이 묻어있었다.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들이 왜 야심한데 험한 산에 올라갔는지, 평소 잘 걸지 않던 군번줄을 발견 당시에는 왜 걸고 있었는지 등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같이 발견된 휴대전화는 지문 하나 없이 깨끗했다.

부대가 밝힌 아들의 사인은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이씨는 "낙천적인 아들이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을 할 리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같은 아들의 죽음에 대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가 지난 4월 3일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부대 동료들, 전우가 아니고 웬수였다"

▲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07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추모제에서 군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은 고 손상규씨의 어머니 이옥희씨와 입대를 앞둔 동생 손상천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씨는 아들의 사후 군 부대측의 대응을 묻자 콧방귀를 꼈다. "아무 말이 없다"며 "수사 결과 발표를 두 번 했다는데, 유가족에게 소식 한 번 없었다"고 꼬집었다. "증거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부대는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대에서 시키는 대로 상규가 죽고 3일 뒤 장례를 치렀다"며 "아들(사체)을 옆에 두고 부대, 국방부와 싸웠어야 했는데, 장례를 치른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아들의 군 동료들도 입을 닫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씨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통화가 돼도 "(헌병대 조사에서) 아는대로 다 답했다"는 짤막한 답변만 한 채 끊었다. 그는 "상규가 죽고 나니, 그들은 전우가 아니라 웬수였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미국의 경우 이런 사건이 생기면 조사 기간만 3개월이라지만, 한국은 24시간 내에 참모총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살로 보고되는 것 같다"며 "상규도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변에서 이제는 관련된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하지만, 상규의 명예만 찾아준다면 그러고 싶다"며 "상규가 살아서 돌아오는 건 바라지도, 바랄 수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 아들에게 온 입영통지서

아들은 현재 경기도 벽제 화장장 옆 부대의 봉안소에 있다. 아들과 비슷한 처지의 고 김훈 중위와 함께 있다. 이씨는 "데려오고 싶지만, 상규는 아직도 군인"이라며 "국립묘지가 아니면 옮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첫째 아들을 그렇게 보내고 난 뒤 얼마전 둘째(25)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온 것. 이씨는 병무청을 찾아 "군대 못 보낸다"고 '억지'를 썼다. 입영통지가 사형선고처럼 무서웠다. 둘째의 입대는 조금 연기됐지만, 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이씨는 "상규 그렇게 보내고, 어떻게 또 군대를 보내겠느냐"며 "25년 군 생활을 한 아버지는 군대에 청춘을 바쳤고, 첫째 아들은 목숨을 바쳤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정한 현충일. 이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까.

▲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07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추모제에서 군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태그:#이옥희, #손상규, #의문사,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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