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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모르는 이시우

이시우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사실은 저도 이시우를 사람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지난 4월 19일 체포되어 같은달 22일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감방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속된 그날부터 오늘까지 이시우씨는 국가보안법에 저항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하며 37일째(5월26일 토요일) 단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강화도에서 목회를 하다 목회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는 아는 후배가 있습니다. 천안 병천에서 모인 감리교개혁모임에서 두 번째로 그를 만났을 때 이시우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도 집중적으로 그를 소개한 것이 아니고 다른 이야기에 묻혀 이시우라는 사람이 사는 데가 강화도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이전에 <오마이뉴스>에서 이시우라는 사람의 기사를 우연히 읽었습니다. 그가 체포된 지 보름도 더 지난 다음 처음으로 그에 대한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이시우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아! 이런 사진작가가 있었구나'하는 정도였습니다. 사진작가로 비무장지대를 주로 촬영하고, <통일뉴스>라는 잡지에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그에 내 기억입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도 이시우씨의 현실이 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백리포행

부처님 오신 날, 모처럼 우리 가족은 부처님의 은덕(?)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다고 했습니다. 말은 담아두면 가슴에 쌓이나 봅니다. 몇 번 그 말을 듣고 나니, 연휴 날 아무 데도 안 가면 사단이라도 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까짓 거 오월 가정의 달 아니냐. 한번 가보자"고 했지만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했습니다. 할 수 없이 처가식구들을 선동했습니다. 처가에서는 제가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대체로 그냥 믿어주는 편입니다.

의외로 쉽게 부처님 오신 날 백리포행이 결정되었습니다. 수요일 밤늦게 경기도 평택에서 떠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수요일 예배를 마치자마자 우리 식구들은 평택에 가는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평택에서는 백리포까지 처남이 끄는 승합차에 무임승차를 했습니다.

바닷가 민박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아내는 즐거워했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백리포 해변에서 모처럼 함께한 언니와 형부를 위한 막내 처제의 재롱도 일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절에 가서 축하인사를 드리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여간 뭔가 모르게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다음날 비가 왔습니다. 아내는 바다가 다 좋은 것 같았습니다. 밤이면 밤바다라서 좋고, 비가 오면 비 오는 바다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바다를 보면서 왜 '이시우'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을까요? 하필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쉬고 있는 이 시간에,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이 귀중한 대목에서 하필이면 이시우라는 부담스러운 이름이 말입니다. 바다와 이시우가 뭔 관련이 있다고 이시우를 생각했을까요.

백리포에 도착한 그 시간 이시우는 감방 미결사에서 34일째 단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34일이란 사실은 집으로 돌아와서 그에 관한 소식을 검색해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단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백리포에서 기억한 이시우라는 이름은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생각도 했습니다. 오래전에 없어졌어야 할 이 악법이 왜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무산된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순도를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습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가 있었습니다. 노무현 탄핵 이후에 구성된 18대 국회개원하고 섭니다.

열린우리당은 의석수가 과반수가 넘었습니다. 18대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4대 개혁입법을 명령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제외한 3대 법안은 그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결국 폐지하지 못하고 그냥 밀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었더라면 오늘 이시우씨는 37일간의 극한 단식투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18대 개원 직후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이 기회는 국민들이 여당에 만들어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할 책임 있는 여당이 상생정치 운운하면서, 아름다운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명령을 저버렸습니다.

오늘 노무현 정부가 이렇게 몰리고 따돌림을 당하는 그 이유 가운데는 국가보안법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열린우리당의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어설픈 상생정치는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에 국민들의 명령을 몽땅 팔아먹은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하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여당이 밀리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포기했을 때 알았습니다. 두고두고 가슴을 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시우씨는 바로 그 희생자입니다. 정치인들이 국회의원들이 그 책임의 당사자입니다. 한나라당이야 태생이 그러니 국보법 폐지를 극악하게 반대했을 겁니다. 그래야 한나라당이지요.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툭하면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을 팔아먹습니다만, 국가보안법을 폐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정말 상생정치를 한다는 이들의 명분처럼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정치였는지 아닌지는 지금 열린우리당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국민이 그들의 어깨에 지워 준 역사적인 과업을 외면할 때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진리를 열린우리당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다시 살려야 할 불길 '국가보안법 폐지'

국회의원들을 욕하지만 사실 우리도 책임이 있습니다. 볼 장 다 보고 파투난 판에서 그 놈(?)들만 욕한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입니다만, 우리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여당의원들이 밀릴 때 온 국민들이 뒷심이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국보법 폐지에 주저주저할 그때 강하게 질책을 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잘못입니다.

때늦은 후회입니다만 그때 국보법이 폐지되었더라면 이시우씨는 지금 구속을 당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안 당해도 될 구금을 지금 당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서 안 해도 될 옥중단식투쟁을 홀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심하고 어리석은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이시우는 홀로 외롭게 고난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보법 폐지문제로만 본다면 이시우는 우리 시대의 예수입니다.

반 FTA 문제와 김승연 한화 회장의 사건으로 신문은 도배를 하고 있고, 또 우리는 6월 항쟁 20주년이라는 이벤트가 주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이시우를 아주 놓치고 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됩니다. 현상적으로 국가보안법폐지는 이미 싸늘하게 식은 재처럼 보이지만 다시 살려야 할 불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불길을 되살리는데 이시우는 소중한 불씨입니다.

이러면 어떨까 싶습니다. 6월 항쟁 20주년 기념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는 겁니다. 국사독재권력의 벽을 허물고 민주주의를 세운 6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 국가보안법 투쟁을 벌여나가는 것이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화문 촛불집회도 좋고 전국적으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재미있게 결합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시민문화축제(가칭)'를 열고 이시우를 구출해 내는 것이 진정한 6월 항쟁의 정신을 살리는 행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하여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도 이시우라는 사람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이 너무 절통하고, 그가 37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같은 하늘 아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염치가 없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정말 모처럼 아내와 우리 가족이 함께 다녀온 백리포 나들이도 이시우를 생각하면 죄책이 됩니다.

그가 옥중단식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이시우를 구출해 내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일을 준비합니다.

나는 내일(27일) 주일 예배 시간 중에 우리 교우들에게 그가 단식 12일째 그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보내왔다는 편지글을 읽어 주겠습니다. 주일 예배 시 잠시 잠을 내어 우리 교우들과 함께 그의 편지글을 묵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아픈 곳이 치유될 때까지 신경은 '아픈 곳'에 집중됩니다. '아픈 곳'에는 사회모순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곳은 시대중심에 서고자 하는 예술가에게 숙명의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가야하는 시대 요구에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시우씨의 편지글 중에서 / <오마이뉴스>에서 가져온 글)

태그:#이시우, #6월 항쟁, #국가보안법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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