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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만세운동의 현장, 아우내 장터
ⓒ 이기원
"터미널까지 태워 드릴까요."
"그럼, 고맙지요."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주최한 새내기 교사 연수 마지막 날 한마음 고등학교 박영규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연수 장소인 천안 국립청소년수련원에서 천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야 할 일이 걱정되던 차에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병천 순대 드셨어요?"
"예, 어제 밤 뒷풀이 때 안주로 조금 먹어봤지요."
"그럼, 아우내 장터에서 순대국밥 드시고 가세요."

거기다가 병천 순대까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순 없다는 생각에 하나를 더 주문했다.

"만세운동 유적지가 가까운 데 있나요?"
"유관순이 병천 사람들과 만세운동을 했던 곳이 아우내 장터에요.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 사진으로 나온 곳도 있구요. 장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관순 기념관도 있고, 생가도 있습니다."
"아, 그래요? 답사도 했으면 좋겠네."
"천안 오신 손님이니 제가 안내할게요."

박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게 작년 5월 '광주 오월 기행'에서였다. 천안에 있는 대안고등학교에 근무하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천안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번에 그 인연 덕을 톡톡히 보게 된 것이다.

▲ 병천 순대
ⓒ 이기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숙소에서 짐 챙겨 나와 먼저 아우내 장터를 찾았다.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넓은 공터를 둘러싼 대부분의 음식점이 순대국밥 집이었다. 박 선생님이 추천하는 순대국밥 집으로 들어갔다. 순대 한 접시와 순대국밥을 시키고 나니 뭔가 빠진 듯 허전하다며 막걸리도 시켰다.

"천안 와서 병천 순대 안 먹고 가면 후회합니다."
"그러게요. 선생님 아니면 그냥 지나칠 뻔 했네요."
"자 한 잔 하시죠."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먹는 순대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값은 저렴했다. 장터 주변에서 생계를 이어왔던 서민들의 음식 순대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쉬웠던 것은 우리를 안내하는 박 선생님이 운전 때문에 막걸리를 마실 수 없다는 점이었다.

▲ 영원한 서민의 음식, 순대국밥
ⓒ 이기원

병천 순대와 막걸리로 배를 채운 뒤에 아우내 장터의 만세 현장을 둘러보았다. 지금도 1일과 6일에는 5일장이 열린다는 아우내 장터는 평범한 시골 장터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곳만 박 선생님의 안내로 둘러볼 수 있었다.

아우내 장터는 3 ․ 1 운동의 발원지로 알려지고 있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이 중심이 되어 3천여 명이 이곳에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찾은 병천면의 현재 인구가 6581명인 것이 비추어보면 당시 3천의 만세 시위가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병천면 만세운동뿐 아니라 3 ․ 1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유명해진 유관순이 태어난 고향도 천안시 병천면이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3 ․ 1 운동에 참가했고, 고향에 내려와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고 한다.

▲ 유관순 생가
ⓒ 이기원

유관순 기념관과 생가를 둘러보면서 문득 궁금한 점이 있어 박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지금도 병천은 시골인데 3 ․ 1 운동 당시에는 더했겠죠?"
"그랬을 겁니다."
"그런 시골에서 딸을 이화학당 보낼 정도였으면 집안이 꽤 잘 살았겠네요."
"글쎄요. 유관순이 이화학당 간 것은 교회의 도움을 받아 다녔다고 합니다. 일종의 장학생 비슷한 것이지요."
"아, 그렇군요."

▲ 유관순 기념 매봉교회
ⓒ 이기원

과연 유관순이 다녔다는 매봉교회 전시관에는 선생님 말씀대로 교회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을 다녔다는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관순의 만세운동과 순국을 단순한 애국이란 관점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종교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자료도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된 자료를 꺼내어 읽어볼 수는 없어 제목만 보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역사적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평가할 때는 다양한 관점과 입장에 의해 서로 다른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 역사적 진실을 찾아 밝히는 게 후손들의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답사를 마치고 터미널을 향하면서 서로의 주소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맛난 순대와 유익한 답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작별의 말을 주고받았다.

"고맙습니다. 강원도에 오시면 전화 주세요."
"우리 학교에 홍천에서 온 아이가 있는데, 방학 때 옥수수 먹으러 오라고 하데요. 가게 되면 전화 하지요."
"오시면 원주 답사 책임집니다."

태그:#아우내, #유관순, #병천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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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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