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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백담계곡. 하지만 도보 등산객들은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오가는 셔틀버스 때문에 불편함이 많다.
ⓒ 홍무표
추석 연휴에 설악산 백담사를 다녀왔다.

10여 년 만에. 사실 이번엔 본격적인 설악산 등산이라기보다 백담계곡을 염두에 두고 온 길이었다. 백담(百潭)이라는 말 그대로 절까지의 십리가 넘는 계곡 길은 깨끗한 바위와 수많은 옥빛 담(潭)과 소(沼)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길이다.

그런데 옛날에 비해 길이 넓어졌다 싶었는데 그 길로 대형 버스가 다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자주. 1시간 30분 넘게 걸어가면서 내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버스를 세어보니 30대 가량.

90여분 동안 30대가 스쳐지나가니 3분에 1대 꼴이다. 좁은 계곡 길을 시속 4-50 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스치듯 지나간다. 검은 매연을 뿜으면서 요란한 소음과 함께.

게다가 지난 여름의 집중호우로 물굽이들이 여러 곳 심하게 패였다. 그렇게 심하게 패인 데는 차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직선은 차도의 속성이다.

직선화된 계곡에서 유속이 커지고 그 압력과 충격이 물굽이에 집중되는 건 상식이다. 그리고 보니 계곡 쪽 도로 가장자리 곳곳에 바위들을 늘어놓았다. 차들이 너무 계곡 쪽으로 붙으면 도로가 지반이 약해서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 백담계곡을 오르내리는 셔틀 버스.
ⓒ 홍무표
실제로 살펴보니 많은 곳이 지반이 유실되고 시멘트 바닥이 공중에 떠있었다. 그 대책은 무엇일까?

도로 안쪽으로 더 산을 깎아서 길을 넓히든지 계곡 쪽 도로 지반을 강화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공사를 해야 한다.

도로로 인해 계곡이 훼손되고 다시 그 대책으로 시멘트를 발라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관광산업의 힘

스위스의 어떤 마을에 한 고위 정치인이 방문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환경보호를 위해 전기자동차 외에 일반 차량은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수행원들이 경호 문제로 자동차 진입을 요청했을 때 마을 사람들 대답은 '노'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스위스는 관광산업이 GDP대비 8%를 차지하는 관광대국이다. 부수적으로 발달한 호텔 경영과 외식산업은 많은 유학생을 유인해서 실제 경제효과는 더 크다고 한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광을 통해 얻어지는 스위스라는 나라의 브랜드 가치다.

개인적으로도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머니칼과 시계로 대표되는 정확과 신뢰 그리고 아름다운 알프스다. 그 이미지는 멀리 내다보는 식견과 지혜를 가진 그 국민이 오랜 기간 자연을 지혜롭게 관리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스위스 몽블랑의 물가는 세계에서 악명이 높다. 그렇게 비싼데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위스 국민은 자연을 잘 관리한다. 따라서 언제 찾아가도 실망하지 않는다."

스위스의 그 마을 사람들이 백담계곡을 놓고 선택의 문제에 당면 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10여 년 전 겨울 인제군 용대리에서 1박을 하고 백담사를 거쳐 봉정암에서 자고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다. 새벽 일찍 출발해야 여유 있게 봉정암이나 중청 대피소에서 묵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용대리에 민박집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지금 용대리 부근에 민박들이 많이 줄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걸어서 1시간 30분 이상 걸리던 길이 버스로 20분으로 단축돼 시간과 체력이 여유가 생긴 탓에 북한산이나 도봉산같이 당일 산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굳이 용대리에서 숙박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백담계곡은 설악산 등산과 분리해서 독립된 '코스'로 개발해도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이 된다. 천천히 걸어서 백담사까지 왕복하면 대략 4시간 정도 걸린다. 어느 한 곳도 놓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이같이 순하고 아름답고, 탁 트이면서도 아늑하고 맑은 계곡을 연로한 부모님이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 평상복 차림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은 흔치않다. 이 계곡 곳곳에 쉼터를 겸한 전망대를 만들고 계단을 설치해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안전하게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게 접근성을 높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물론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전동 휠체어나 전기 자동차가 그 대안이 될 것이다. 하이브리드 마차는 어떨까? 마차에 모터를 달아서 평지에선 말 두 마리가 끌고 오르막길에선 전동기를 돌리는 방식, 최대시속 20 킬로미터. 소음도 별로 없고 매연도 없다. 그래도 20분이면 충분할 것이다. 경쾌한 말발굽과 방울소리를 울리면서. 그 외에도 친환경적인 다양한 대안이 있을 것이다.

스키시즌에는 인근의 스키장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한편 그 지역 명물인 두부 만들기 가족 체험이나 황태덕장 견학 등 계절별로 웰빙을 주제로 코스를 개발하면 어떨까.

거기에 합리적인 가격에 깔끔하고 쾌적하게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이 갖춰진다면 동해안으로 넘어 오가는 손님을 유혹할 수 있는 훌륭하고 알찬 관광 구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지역 경제도 당연히 활성화 될 것이다. 이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지자체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내 고장을 아름답고 값지게 가꾸겠다는 일치된 마음이다.

버스는 지역주민들이 만든 '용대향토기업'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당장에는 주민들에게 버스 운행 수입이 적은 이익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백담계곡이 망가진 백담사는 '김빠진 맥주'나 다름 없이 때문이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성급하게 배를 가르는 꼴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백담사 계곡을 오르내리는 셔틀 버스는 1993년 부터 백담사를 찾는 신도들을 위해 운행되기 시작했고, 1996년 부터 '대향토기업'이 일반 탐방객을 위해 9대의 버스를 도입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셔틀버스 운행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면서 "산행을 하기 힘든 노약자들에겐 편리함을 주지만, 계곡을 따라 걷고자하는 등산객들에겐 매연, 소음 등 불편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버스나 모노레일 등 매연을 내뿜지 않는 교통수단 뿐 아니라 도보 등산객을 위한 생태친화적인 탐방로를 따로 만드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훼손된 자연은 복원되기 어렵다

이 계곡은 수천 수억 년의 자연생태 과정을 거쳐 균형점을 찾았다. 그래서 한 번 훼손된 자연은 영원히 복구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그리 넓지 않다.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자연을 짓밟고, 병들면 등을 돌려서는 곤란하다. 그럼 우리 후손은 우리를 뭐라 부를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준 지혜로운 조상이라 할까.

돌아오는 길에는 나도 버스를 탔다. 버스를 나무라면서 탄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나 나 역시 또 매연과 먼지를 마시는 그 수모를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창으로 버스를 피해 길가에 서있는 사람들 표정을 잘 볼 수 있었다. 분노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는 사람, 황당하고 무안해서 웃는 사람, 아이를 꼭 잡고 서있는 젊은 엄마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있었다.

어서 예전의 백담계곡으로 다시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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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존재 의미에 이 사회의 일원으로 절실히 공감하여 기자 되기를 원합니다. 자신있는 분야라면 아무래도 제 전공인 고전문학 분야가 좀 나을 듯합니다. 시켜주신다면 시간과 능력이 되는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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