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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초부자 감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맹목적인 부의 대물림 수단'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지난 8월, 결혼시 1억 원의 증여세 추가 공제를 제공하는 이른바 '혼인증여공제'를 정부가 추진한다고 발표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은 날선 반응을 보였다. 세법개정안을 심의하는 조세소위에서도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회 다수당이 반대했던 이 법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달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올해 세법개정안을 의결했다. 혼인증여공제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공제액도 정부안인 1억 원 그대로였고 결혼 뿐만 아니라 출산을 해도 지원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초대형 감세안이 있었던 지난해에 비해 이번 정부 세법개정안은 자잘한 총선용 감세공약이 주를 이뤄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그 중 최고 쟁점으로 부상한 법안이 바로 이 '혼인증여공제'였고, 연일 '부자감세'를 막아세우겠다고 주장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법안을 저지하거나 타협안을 내세워 축소된 형태로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 터였다. 

그런데 결론은 딴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결정은 있으되 이유는 모른다
 
1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류성걸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1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류성걸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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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도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회의 공식적인 회의 과정에서 세법이 심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속기록도 회의록도 없고, 그 과정에 참여한 의원들이 왜 그렇게 타협했는지 소위에 입장을 보고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양당 간사와 정부가 합의했으니 반론도 답변도 받지 않고 그냥 의결 처리하는 것이다.

혼인증여공제만이 아니다. 또다른 쟁점이던 가업승계시 증여세 완화도 연부연납은 15년으로 늘리고 저율과세 구간은 120억 원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결정됐는데, 당연히 공식적으로 논의된 사항이 아니다. 120억 원이라는 숫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숫자일 뿐 왜 그 숫자로 타협했는지 아무도 알려주는 이가 없다.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은 조세특례제한법상 단순일몰연장 대상 법안들이다. 시한을 두고 세금을 깎아주는 사업들을 연장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 조세감면의 법정한도를 2.3%, 약 9조 원을 초과한 세법개정안을 들이밀었다는 점이다. 조세특례심층평가를 통해 효과가 없거나 제도개선이 필요한 사업으로 지적된 사업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렇다면 국회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 일몰할 것들을 가려낼 필요가 있었고, 조세소위에서도 이 우려로 말미암아 일몰연장 여부를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을까? 조세소위는 다시 이 사안을 논의하지 않은 채 38건의 단순일몰연장안을 모두 그대로 가결시켰다. 국정감사를 통해 조세지출 법정한도율 위반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도, 재정건전성을 제 1의 가치로 내세우는 정부여당도 입은 있으되 말이 없다.   

올해만이 아니다. 돌이켜 보라. 지난해 세법의 최고 쟁점이었던 법인세율 인하 타협안인 과표 전구간 세율 1% 일괄 인하 안은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심의과정에서 논의된 적이 없는 '갑툭튀' 안이다. 조세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누구도 종부세 중과세 완화나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안이 사실상 관철됐다. 물론 이유는 모른다. 

'소소위'의 시대

요즘 세법이 결정되는 과정은 이렇다. 일단 조세소위에서 1회독이라는 것을 한다. 전문위원이 법안의 요지를 설명하고 정부가 의견을 제시하면, 의원들이 질의를 하거나 법안에 대해 의견을 낸다. 모두 이견이 없으면 법안은 '잠정 의결'된다. 이견이 있으면 법안은 '계속 심사'로 분류되어 추후 논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2회독은 없다. 이 '계속 심사'대상 법안들은 곧바로 이른바 '소소위'로 불리는 비공식 밀실협의체에 일괄 회부된다. 기재위 양당 간사와 기재부 차관과 세제실장 등 소수가 모여 논의를 한다(대체로 당당하게 소위 회의장에서 진행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협상안이 바로 '여야 합의안'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소위에 올라와 의결된다. 이를 정당화하는 논거는 딱 하나다. '시간이 없다'다.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의원들이 소위에서 2회독, 3회독을 하면서 합의점을 만들어 나갔다. 쟁점법안 일부는 간사 협상에 위임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법안의 심사도 이견의 조율과 토론도 법안심사소위에서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의사진행의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예산심사에서 활용되었던 '소소위'가 조세소위에까지 도입되면서 이 모든 전통은 파괴됐다. 속기록상 '소소위'가 처음 등장하는 때는 2016년 정기국회에서다.

결과는 참담하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소위 법안심사에서 합의되지 않은 세법 124건 중 94건이 밀실협의를 거쳐 통과됐다. 합의되지 않은 정부안 79건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소소위' 비밀협상을 거쳐 전부 통과됐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335건의 세법 중 73%가 소위 심사 과정에서 '계속 심사'대상으로 분류됐지만, 그 중 대부분이 '소소위'를 통해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공개적 토론은 고사하고 속기록도 공개 보고 서면조차도 없다. 2023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씁쓸한 현실이다. 

이것이 양당-기재부 카르텔이다

양당이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스스로 와해시키며 '소소위'를 가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를 통해 누리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이 말하는 '의사진행과정의 효율성'은 '회의를 덜 해도 된다'를 에둘러 고상하게 말하는 표현이다. 골치아픈 쟁점 토론을 간사 둘에게 떠넘길 수 있으니 회의 횟수가 줄어든다. 국회회의록 자료를 보면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서 정기회 기간 조세소위는 각각 41회가 열렸다. 21대 국회에서 조세소위는 31회로 끝이다. 2012년 조세소위는 16번이 열렸지만 올해는 8회가 전부다. 1회독+소소위+의결이라는 '패스트트랙' 시스템 덕이다. 

의원들은 주목도가 떨어지는 골치아픈 법안심사에서 벗어나 지역구 관리나 당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법안심사소위에 여당 의원이 한 명도 출석하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어차피 모든 것이 '소소위'에서 결정되므로, 소위에서의 법안심사에 열심히 임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소위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소소위'에 더더욱 무게가 실리는 구조가 형성된다. 
 
2023년 11월 24일 조세소위 속기록 중 일부
 2023년 11월 24일 조세소위 속기록 중 일부
ⓒ 국회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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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들의 '양두구육형 조세정치'의 민낯을 숨길 필요성이 있다. 앞에서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면서 윤석열 정부를 부자감세니 세수결손이니 힐난하지만, 실제로는 무수한 감세법안으로 상위중산층이나 금융투자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법안 실적을 채우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렇게 정부안에 합의해 주면서 그들이 민생 법안이라며 당론으로 삼은 감세법안 몇 개를 '현수막 용'으로 챙겨가는 것이다(대체로 3개 정도인 것 같다). 애초에 윤석열 정부의 감세를 저지할 생각은 없고, 또다른 감세안을 정부로부터 뜯어내기 위해 협상의 지렛대로 써먹는 게 민주당 조세소위 대응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기재부도 나쁠 것이 없다. 그들이 밀실테이블에서 배제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현 상황은 소위 심사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일이다. 소위 심사가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민주당 간사만 설득하면 정부안은 다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부자감세 논란에도 하나도 계류되지 않고 모조리 의결된 지난해 정부 세법개정안이다. 현재의 세법심사 구조에서는 선출된 국회의원보다는 소소위에 배석할 수 있는 기재부 1차관이나 세제실장의 권한이 훨씬 막강하다. 

결과적으로 양당-기재부의 파레토 균형이 빚어낸 이 '소소위 체제'는 수많은 희생을 수반한다. 내가 낼 세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 권리가 있는 국민의 권리는 사라진다. 국민들이 표로서 조세정책의 방향성을 위임한 헌법기관의 법안심사권은 짓밟힌다. 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는 기업과 전문가 이해집단의 영향력은 극대화된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큰 차이가 없는 두 정당의 밀실 협상은 포퓰리즘형 감세로의 질주로 귀결된다. 과세는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은 형해화된다. 

21대 국회의 천태만상 세법 심사는 '1987년 체제'가 종언을 고했다는 또 하나의 부고장이라 할 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국민의힘은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서로가 가진 모순에 의존해 한몸이 되어버린 거대한 '키메라'를 상대로 머리 하나를 베어낸다고 해서 한 시대를 청산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에, 그들은 너무나 심하게 현 체제에 중독돼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국회 장혜영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세법,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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