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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9. 20. 부산. 한국전에 참전하는 유엔군 병력을 태운 군함이 부산항에 입항하자 이들의 환영식을 거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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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마치 이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재빨리 대응했다. 미국 시각으로 6월 25일, 애치슨 국무장관은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유엔에서 한국전쟁 문제를 논의할 것을 결정한 뒤 곧바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할 결의안을 작성했다.
그 내용은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고 있으며, 적대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남침한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철수시키라는 것이었다. 이때 이미 북한은 침략국으로 규정됐으며, 이로써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은 유엔군을 조직할 명분을 마련했다.
1950년 6월 26일과 28일에 긴급 소집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7월 7일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됐다. 유엔군사령관에는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임명됐다. 곧이어 자유진영 연합국의 병력이 속속 도착해 마침내 유엔군이 편성됐다. 미국을 비롯한 호주·벨기에·캐나다·콜롬비아·프랑스·영국 등 16개국 군대가 참가했다. 하지만 유엔군 가운데 공군의 98%, 해군의 83%, 지상군의 88%는 미군이었다.
무늬는 유엔군이지만 실상은 미군이나 다름 없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참전국 병력은 유엔군에 배속되면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지휘 아래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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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14. 도쿄, Collins 장군이 유엔기를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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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6. 유엔군(미군) 병사들이 부산항 부두에 내려 전선으로 떠날 차비를 차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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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5. 한 한국인이 거울을 들고 유엔군 병사의 면도를 도와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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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9. 18. 유엔군 병사들이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대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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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27. 서울. 시민과 학생들이 유엔 참전국 국기를 들고 광화문에서 평화 행진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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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20. 한 유엔군이 등 뒤에 “이 사람은 유엔군이다. 원조하라”라는 문안을 새긴 옷을 입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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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4. 1. 홍천, 유엔군이 전선을 따라 북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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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6. 21. 유엔군들이 임진강변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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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6. 27. 한 유엔군이 어린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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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9. 24. 유엔군(미 해병대) 장병이 전투 후 잠시 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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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3. 25. 유엔군(미 해병부대)의 열병식이 거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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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8. 17. 판문점, 정전협정 조인으로 유엔군(미군) 포로가 돌아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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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9. 3.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 중립국감시위원단으로 한국에 온 인도병사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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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