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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함께쓰는 기자칼럼
 <경향신문> 함께쓰는 기자칼럼
ⓒ 경향신문 인터넷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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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경향신문 법조팀 이범준 기자입니다. 6월 6일 자 <경향신문> 에 실리는 기자 칼럼의 초안을 공개합니다. 칼럼은 개인의 주장이 많이 들어갑니다. 사실을 전달하는 스트레이트에 비해 선호가 엇갈리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번 기자칼럼을 독자들의 의견과 지적을 반영해 완성하려고 합니다. 주말 동안 제보와 지적, 의견 부탁드립니다."

지난 3일 토요일 주말부터 휴일 내내 <경향신문> 인터넷판 초기화면에 둥둥 떠 있는 미완성 기사가 이채로웠다. 기자가 주장의 글(칼럼)을 완성해 지면에 내보내기 전에 독자들의 의견을 미리 구하고 이를 적극 반영하기로 한 새로운 의제설정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어서 시선을 끌 만했다.

과연 독자들이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또 어느 선(범주)까지 의견을 지면에 반영해 담아낼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층 낮은 자세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종이신문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신선해 보였다.

독자 의견 구하기, 의제설정 '새바람' 일으킬까?

<경향신문> 법조팀 이범준 기자는 '사법행정의 달인'이라고 법조계에서 부를 정도로 유명한 박병대 대법관이 지난 1일 퇴임한 것과 관련해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고자 본인의 기자 칼럼을 내보내기로 결정한 듯하다. 하지만 화려한 법관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대법관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보며 '인맥'과 '정의'에 대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를 통해 나름대로 규정하려다 보니 다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예고편에 그러한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다. 사실을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비해 선호가 엇갈리는 칼럼 기사를 완성하기 전에 그는 '독자들의 의견과 지적을 구한다'는 내용을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올렸다. 무척 이례적이긴 하지만 신문의 특성상 일방향적 성격의 의제설정 방식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시선을 끈다.

이 기자는 자사 인터넷판 미완성 칼럼 기사에서 "박 전 대법관은 법관 인생의 3분의 1을 법원행정처에서 보냈다"고 전제하면서 퇴임식을 맞아 판사들이 1645쪽짜리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람>이라는 헌정 문집을 출판한 점에 주목했다. 여기에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청와대에 다녀온 김앤장 변호사,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 등이 참여한 점, 이들은 글을 써서 올리고 박 전 대법관에게 고급 부채를 하나씩 받은 게 전부라는 점 등을 강조했다.

'자발적 참여'로 보아야 하는지 의문이 간다는 뉘앙스를 예고편에서 남기며 독자들의 의견을 구하고자 했던 것으로 읽힌다. 이 기자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법행정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라는 제4부"라며 "231쪽에 이르는 어지간한 책 한 권 분량에는 그가 행정처에서 이룬 업적 소개와 후배들의 평가가 들어있다"고 소개했다.

심상치 않은 대목임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 내용 중에는 '마법의 열쇠', '능대능소' 등의 미사여구와 함께 30명에 이르는 대한민국 고위 법관들의 찬사가 이어지는데, "어떤 글은 읽는 사람의 인내를 시험한다"고까지 표현했다. 무얼 전달하려는지 짐작은 가지만 팩트가 다소 빈약해 보인다.

'시민 마이크', 핫 이슈마다 독자들 의견수렴

이 기자도 이 한 가지 사례만을 가지고 '사법부의 적폐청산'을 논하기에는 밑그림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칼럼 기사가 지면에 나가기 전에 온라인상에서 뜨겁게 댓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모양새가 이채롭다. 그동안 지면을 통해 소속 신문사 기자 또는 데스크, 논설위원들이 썼던 자사의 의견기사(주로 칼럼이나 사설 등)는 일방적이었고, 그 의견기사가 나간 다음에야 반응이 뜨거웠던 것에 비하면 정 반대 현상이다.

이처럼 종이 신문사에서 의제로 다룰 중요한 핫 이슈를 독자들로부터 사전에 의견을 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일종에 독자들로 하여금 사전 검열을 받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스트레이트 기사뿐만 아니라 의견기사에서도 의제설정권을 독자들과 함께한다는 취지라면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종이신문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중앙일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이 신문은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화면 맨 상단에 '시민 마이크'란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주요 이슈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곳이다.

신문은 시민 마이크 운영에 관해 "시민들이 직접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일상의 소소한 불편부터 세상을 바꿀 다양한 아이디어,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대국민 여론 수렴 서비스"라며 "기사화할 만한 내용이 있을 경우, 시민 마이크 특별취재팀이 이를 취재하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론화한다"고 밝혔다.

신문뿐만 아니라 JTBC 방송사와 함께 연대해 시민 마이크 제도를 운영하고 활용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 전면 백지화해야 할까요?'란 물음을 던져 놓고 의견과 설문조사를 동시에 수렴하고 나서 시선을 끈다.

신문은 지난 주말과 휴일 동안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모두 16개의 보가 건설됐는데, 이 때문에 녹조가 과거보다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을 구하고 나섰다. 온라인상에서 이와 관련해 실시하고 있는 실시간 설문조사에서 '4대강 사업 전면 백지화하고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는 쪽의 의견에 60% 이상 높은 찬성을 보였다. 물론 많은 독자들의 의견도 올라오고 있다.

종이신문 '어젠다 세팅 변화' 성공 여부 관심

이 신문은 이 외에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 배치', '공직자 위장 전입', '문자 폭탄', '전교조 부활'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독자들의 의견을 묻고 설문을 수렴하고 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종이신문의 변신이다.

이처럼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 과정에 독자들을 더 많이 참여하게 하고 이를 온-오프라인 쌍방향 의제설정에 활용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는 신문들이 그동안 취약하다고 비판받아 온 이념성·편향성 논란을 얼마나 누그러뜨릴지 초미의 관심거리다.

오래전부터 시민기자제도를 도입해 운영하는 온라인 매체와는 달리 종이신문들도 이제는 자사의 온라인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민과 독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지면에까지 반영하려는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독자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자세는 무척 바람직한 모습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종이신문들의 '뉴 어젠다 세팅'이 과연 성공할지 기대와 관심이 모아진다.


태그:#기자칼럼, #시민마이크, #의제설정, #뉴 어젠다 세팅, #종이신문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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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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