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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는 어렵다. 오로지 마을만들기의 3주체인 행정, 주민, 전문가의 역랑과 진정성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차라리 구조적이고 태생적인 문제다.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는 구조 악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일단 행정 편의적이고 기술 만능적인 '마을 만들기' 방법론이 문제다. 그 질곡에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 많은 행정과 주민들이 막연히 소망하는 대로 대부분의 마을은 관광지나 공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홍보, 마케팅, 호객행위를 열심히 해도 농외소득이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마을은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다. 단지 주민들의 생활의 터전일 뿐이다. 굳이 마을에 손을 대려면, 예산을 퍼부으려면 마을이 품고 있는 사회적이고, 인문적이고, 문화적인 요소와 자원들을 융·복합적으로 결합, 마치 종합예술 작품처럼 승화시키려는 사업목표를 세우는 게 좋겠다. 결국 '마을 만들기'의 방법론은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 살이'로 가치관, 그리고 자세와 마을가짐부터 전향하는 게 순서다. 그러면 마을로 가는 길이 어렵거나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른다. 여전히 힘겨운 작업이겠지만, 마을로 가야 하는 당위성과 명분은 최소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런 마을을 이른바 '대안마을'로 부르고자 한다. 경제적 측면으로는 1차 유기농산물 생산, 2차 고부가 농특산물 가공, 3차 도농 교류와 도농 직거래 서비스 등의 밸류체인(Value Chain)이 작동되는 융복합형 농업․농촌 발전전략이 유효하다. 마을공동체사업을 책임지는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사회 혁신적으로 지속발전 가능한 농촌·지역공동체마을이다.  

사회적 측면으로 대안마을은, 도시민, 견학단 등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경거리나 체험놀이터를 조성하는 '마을 만들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원주민, 출향인, 귀농인 등 내부인의 안정된 생활과 예측 가능한 생애 설계를 위한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살이'를 실천하는 생활과 생존의 공간이다. 물론 이를 위한 학습과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깨어있는 마을시민'들이 모여 '마을기업'을 함께 꾸리고 사는 공동체 마을이다. 

홍건적에 쫓겨 국가 ‘고려’를 등지고 공민왕이 피신했던 순천 삼청리 유경(留京)마을
▲ 순천 유경마을 홍건적에 쫓겨 국가 ‘고려’를 등지고 공민왕이 피신했던 순천 삼청리 유경(留京)마을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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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조직'이 책임을 지는 대안마을

그런데 대안마을은 정책이나 제도로 만드는 게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정부나 외부의 지원 이전에 먼저 마을 안에 그 일을 감당할 사람과 조직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기존의 마을이나 권역 단위애서 벌어지는 각종 농촌 지역개발사업, 또는 마을공동체사업의 현장을 보라. 충분한 사람과 조직은커녕, 기본적으로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소재 차제가 불명확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주로 이장이 겸직하는 위원장 중심의 위원회(추진 또는 운영)가 주도하는 마을공동체사업은 주체조차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설사 책임을 지고 싶어도 책임을 질 수 없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구조다.

사업의 주요방향과 과제를 결정하는 위원회나 협의회는 사업을 책임지는 법인격이나 사업의 실무 시행 주체가 아니다. 단지 의사결정 구조에 불과하다. 따라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법인격을 갖춘, 결정한 의사를 시행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사업의 업무조직이 필수적이다. 적어도 그런 '마을기업'의 설립과 운영이 가능한 마을에 한해 정부는 사업비를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일단 사업의 책임 주체가 명확해지는 효과는 물론, 마을주민들이 마을기업에 출자와 참여를 결심하고 결행하는 과정에서 심기일전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작동한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아무나 마을공동체사업에 함부로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대안마을을 하고 싶은 마을의 주민들은 다양한 학습과 깊이 있는 훈련을 통해 마을주민은 '마을 시민'으로, 마을 모임이나 동아리는 '마을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마을기업을 설립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을 경영할 수 있을 만큼 농촌 마을 주민들의 조직적으로 자조와 자치역량을 갖추어져야 한다. 대안마을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는 오직 '마을 시민'과 '마을기업'에 달려있다.

이때 특히 마을주민 개개인의 개별 역량뿐 아니라 '마을기업'이라는 사업조직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 공동책임 사업조직인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민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마을기업' 내부에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이 우선, 충분히 축적되어야 한다. 정작 마을공동체사업이나 사회적 경제 사업은 그 이후에 시작하는 게 일의 순서다. 

요즘 농촌이나 도시 할 것 없이 마을공동체와 사회적 경제가 유행이지만, 행정이나 현장에서는 마을공동체 사업과 사회적 경제 사업이 따로 겉돌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띈다. 사업현장에 주민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공무원이나 직업적 활동가만 동분서주, 고군분투하고 있다. 마을을 기반으로, 마을 사람을 중심으로 서로 연계하고 융합하면 사업의 명분도 더 강화되고 실질적인 시너지효과까지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조직이 없는 마을공동체사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세운 무주 초리넝쿨마을
▲ 무주 초리넝쿨마을 사람과 조직이 없는 마을공동체사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세운 무주 초리넝쿨마을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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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형 사회적 경제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대안마을'을

마을공동체사업과 사회적 경제가 유기적으로 융합되는 대안마을을 하자면, 우선 사회적 경제를 하는 목적을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 제고 등의 근시안적 목표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 사회적 경제를 마을·지역공동체 재생과 활성화의 수단이나 방법론으로 채택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바로 '마을기업'을 마을공동체사의 출발지점과 중심에 놓으면 된다.  

즉, 마을·지역사회 공동체사업의 사전 준비, 그리고 입문단계에서부터 마을기업 등의 사회적경제조직에게 학교로서, 실습장으로서 역할을 부여하면 된다. 그리고 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공동체사업의 관리·경영 책임 주체로서 '열쇠' 같은 사회적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 결국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조직이 마을공동체(community)와 사회적경제(business)를 유기적, 물리화학적으로 연계·융합하는 '고리'로서의 명분과 소임에만 충실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마을공동체사업과 결합된 사회적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보은 선애빌마을
▲ 보은 선애빌마을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마을공동체사업과 결합된 사회적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보은 선애빌마을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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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농촌 지역은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 모델이 적합하다. 완주군은 '마을기업' 중심의 마을공동체 사업을 위해 2010년에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현 완주공동체 지원센터)를 설립, 전국 최초로 커뮤니티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 분야 중간지원조직의 모델을 제시했다. 커뮤니티비즈니스(C.B.) 중심의 완주군 마을 만들기 수행방식은 '마을 회사' 등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실행 주체들과 행정주체, 지역사회 단체들을 지원하는 특징을 띤다.

단양 한드미마을에는 '마을 월급쟁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십수 명의 청년, 귀농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농촌 마을체험 사업을 비롯해 농촌유학센터, 지역아동센터, 마을 공동식당 등을 운영하는 '한드미유통영농조합법인'에서 최소 2천만 원 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일과 삶이 하나 되는 공동체 마을을 함께 일구고 있다.

마을의 남은 숙제는 마을양로원이다. 그동안 마을공동체사업에 동참하느라 고생한 마을 노인들을 위해 안정적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공동생활주택 '호스피탈리티 움'을 추진하고 있다. 농촌유학센터에 유학 온 아이들, 영농조합법인에서 일하는 청년들과 더불어 모든 세대가 어울려 사는 생활공동체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홍성 홍동면에는 '위대한 평민'들이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이루고 산다. 농업 및 가공, 농촌관광, 교육, 문화, 공동체, 에너지 등 50여 개의 마을·지역공동체사업 관련 단체가 활동 중이다. 문당리, 운월리를 중심으로 귀농인을 포함한 마을주민들이 주도하는 이런 다양한 민간조직이 홍동면 지역공동체 활성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이 자생적인 생활문화공동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생태계)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2011년 4월에는 순수 민간주도형 중간지원조직 '지역센터 마을 활력소'도 자체적으로 설립했다. 최소한 홍동면 안에서 벌어지는 마을공동체사업은 홍동면 주민의 머리와 손으로 자주적으로 해결해보려는 평소의 각오와 소망을 실행한 것이다.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의 책임주체를 자각하고 자임하는 전의면민들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는 세종시 전의면
▲ 새종시 전의면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의 책임주체를 자각하고 자임하는 전의면민들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는 세종시 전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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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마을은 곧 '사람 사는 복지마을'이다

대안마을은 '사람 사는 농촌'을 뜻한다. 곧 마을 단위의 마을 복지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마을이다. 오늘날 우리 농촌사회에는 복지의 공백지대, 사각지대가 마치 함정이나 지뢰밭처럼 도처에 산재해 있다. 마을 만들기를 열심히 한다고, 법을 몇 군데 고치고 예산을 좀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예 기왕의 '돈 버는 농업'이라는 경제적 잣대와 '농촌 지역개발'이라는 토건적 잣대는 걷어치우고 '사람 사는 농촌'이라는 사회복지의 시각으로 농정을 새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 농민의 주력인 소농, 영세농, 가족농은 고소득, 고부가가치의 농정구호가 여전히 어렵고 버겁다. 그보다 보건, 의료, 주거, 고용, 교육 등의 사회복지망이 그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최근 복지전달체계를 '행정단위'에서 '마을 단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구도 이어진다. 전북연구원은 '전라북도 마을 복지 전달체계 구축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관 주도 복지서비스에 의존하는 복지는 한계에 달했다"며 복지체감도 향상을 위해 마을 단위로 전달하는 '전북형 마을복지 모델'을 제안한다.

전북형 마을공동체 복지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행정 읍면동 단위의 복지전달체계를 마을 단위로 세분화하면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동네 주민까지 복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 복지제공 기관을 복지시설로 제한하지 않고 복지의 제공 방식을 다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을의 병원, 보건소, 경로당, 반상회, 주민자치회 등으로 복지의 주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적재원이 미처 투입되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를 마을의 조직과 자원이 주체적으로, 내생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같은 '마을 단위 복지' 제안은 마을 단위에서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결합되는 주민참여형 공동체 복지가 대안이라는 진단의 결과다. 다만, 복지예산의 부족을 이유로 자칫 국가와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민간에 전가하는 식의 정책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당연히 정부의 복지 예산의 확충과 집행 효율 제고부터 우선 노력하는 게 일의 순서다.

나아가 농민은 국가의 식량 주권과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국가기간산업 농업에 복무하고 있으니 마땅히 공익농민, 또는 사회적 농민이라 할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나서서 농민을 '사회적 농민' 수준으로 대접하는 게 보다 근본적인 '사회복지 대책'이 될 것이다. 가령 농사만 지어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기본소득 생활비를 지급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민 또는 농촌주민, 귀농인에게는 따로 먹고사는 생활기술을 가르치는 마을이 있다면 그 마을이 바로 대안마을이다. '사람 사는 복지마을'이다.

귀농인과 원주민이 공동으로 세우는 협동조합을 사업수행주체로 세우는 '활기찬 농촌프로젝트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의성 단촌면
▲ 의성 단촌면 귀농인과 원주민이 공동으로 세우는 협동조합을 사업수행주체로 세우는 '활기찬 농촌프로젝트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의성 단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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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an introduction to Communology/ 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태그:#마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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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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