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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는 월자봉에서 한해의 평온을 기원하면서
▲ 일월산 정상 달이 뜨는 월자봉에서 한해의 평온을 기원하면서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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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새해가 밝은 지 한참 지났지만 음력 정월을 맞아 19일(일) 첫 산행으로 고향 영양에서 영산이자 가장 높은 일월산을 다녀왔다.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정착한 영양군 입암면 사람들은 향우회를 조직하고 그 산하에 산악회를 두었다. 해마다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이번에는 멀리 고향에서 지내기로 했다. 대형버스로 40여명이 참석하였다.

영양 일월산을 다녀오다

먼 여정이라 아내가 출발지인 부산지하철 사상역까지 차로 태워주었다. 컴컴한 새벽 여섯시에 출발하였다. 가는 길목에서 기다리는 향민들을 태우고 양산 울산 그리고 경주를 지나 대게의 산지인 영덕에 못미처 강구에서 얼마 전 새로 개통하여 아직 네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다는 영덕-상주 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약수터로 유명한 신촌에서 내려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며 잠시 쉬었다가 고향 입암을 거쳐 열한시 쯤 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해발 1,219M 정상은 해를 가장 먼저 볼 수있는 일자봉이다.
▲ 일월산 정상 표지석 해발 1,219M 정상은 해를 가장 먼저 볼 수있는 일자봉이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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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일정은 산 중간쯤 차를 세우고 한 시간 가량 등산을 하려고 했다. 햇살은 화사했지만 산이 높다보니 바람이 심해 그대로 정상까지 차로 올라 왔다. 얼마 전 내린 눈으로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정상에 서니 청명한 하늘 아래 양 사방이 탁 트여 멀리 동해바다가 보일 듯 했다.
 
산 정상의 공군부대
  
해발 1219미터인 정상에서 해를 가장 먼저 보는 봉우리가 일자봉이고 그 다음이 달이 뜨는 월자봉이다. 양과 음이 함께 하는 매우 특별한 이름 때문에 매년 정초가 되면 전국에서 무속인들이 신내림을 받기 위해 반드시 다녀가야 한다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십 년 전 이곳에 미군 미사일기지가 들어섰다. 우리는 부대에 가려져 있는 정상에는 가지 못하고 가까운 월자봉에 올랐다. 눈 앞에서 공군부대에 세워진 거대한 철탑을 대하니 요즘 한창 시끄러운 경북 성주의 사드배치에 대한 논란이 생각난다.

이를 두고 온 나라가 찬반으로 나누어 싸우고 있지만 우리 어려서는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미사일 기지가 생겼다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라 수 백리 떨어진 고향마을에서 밤에 그 불빛을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만약 지금 이 부대를 건설하려 했다면 시끄러울 것이다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자니 시산제를 지낼 준비가 다되었다.
나는 지난해까지 향우회 회장을 지낸 직전 회장 자격으로 헌사하면서 오늘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어 모두가 둘러 앉아 제주로 쓰인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추석 성묘 후 음복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일월산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추석 성묘 후 음복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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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주산이지만 대부분 어릴 때 고향을 떠나고 바쁘게 살다보니 참석 인원 거의 대부분 처음 와봤다면서 오기를 잘했다며 그렇게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지난 추석에도 다녀갔다. 그리고 예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번 올랐으니 무척 익숙하다.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이곳에 있어 해마다 시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과연 명당은 있는가
  
우리 집에서 120리 정도 떨어진 여기에 묘를 쓴 이야기도 엄청나지만 아버지께서 생시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던 시절, 해마다 늦가을이면 시사를 지내기 위해 집에서 쉬지 않고 꼬박 하루를 걸어서 성묘를 하고 이튿날 새벽부터 다시 밤이 늦도록 걸어서 돌아 오셨으니 그 어려움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도 철이 들 무렵에는 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그 때는 산 밑은 아니라도 거리의 절반 정도까지는 어느 해부터 버스가 다니면서 많이 도움이 됐다. 그래도 산속 외딴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오는 일정은 무척 힘들었다. 후손이 잘되라고 그 당시 조선의 명사 박문수 어사가 직접 잡아주었다는 명당인데 그때는 왜 이리도 자손을 힘들게 하냐고 나는 가끔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좋은 터인데 이리 힘들게 다니게 합니까?"
"5대에 발복한다하니 너희들보다는 너의 밑으로는 잘 될 것이다"
"......"
  
긴가민가했지만 그래도 비록 고향을 멀리 떠나 살아오면서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나는 주술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를 잘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선지 몰라도 지금까지도 큰 탈없이 잘 지내 왔었고 딸도 시집을 가서 잘살고 있으며 아들도 요즘 그 어렵다는 취업난 속에서도 졸업과 동시에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선발해준 회사도 고맙고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하였겠지만 이 또한 할아버지의 음덕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버님 생전에는 이 성묘가 집안의 가장 큰 행사였으며 시제를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한해를 마무리 하셨다.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이며 영양의 대표 유적지이다
▲ 영양 서석지 여름 전경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이며 영양의 대표 유적지이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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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녀 왔느냐~'

방문을 여시며 아버님이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내가 결혼하여 일찌감치 자가용을 샀고 형제들과 함께 성묘를 다녀오니 대견해 하셨다. 다행히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는 맞은편 봉우리에 있어 부대건설로 정상 봉우리가 파헤쳐 허물어지는 불상사도 면하였다.

다만 부대로 올라가는 잘 닦여진 도로를 이용하다보니 이제는 동네 뒷산보다도 오히려 편한 성묘길이 되었다. 시간 여유가 많다보니 가끔 머루와 다래를 따거나 더덕을 캐기도 한다.
 
고향마을을 가다
  
돌아가는 길에 일부 향민들이 영양서석지를 둘러보자는 얘기가 있어 예정에 없었던 고향마을에 들렀다. 마을을 들어서기 전에 우리 마을 출신인 면장이 마중을 나와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면서 고향방문을 환영하였다. 마침 그 시간에 면내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함께 마을로 들어가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입암 연당리는 우리나라 3대 정원중 하나인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영양서석지가 있는 곳이다. 약 400년 전 나의 12대조 할아버지께서 마을 한가운데 조성한 자연 그대로의 임천정원이다.(관련기사 : 내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 서석지)

이곳 역시 대부분 처음 와보았단다. 서석지에 이어 마을까지 들러 보면서 모두들 감탄을 하였다. 육지의 섬이라는 오지중의 오지에 이처럼 연못과 함께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도 크고 마을 고가들도 커서 놀랐다고 했다.

고향의 유서 깊은 곳이지만 대부분 처음 와본다며 연못과 잘 어울리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 서석지 관람 고향의 유서 깊은 곳이지만 대부분 처음 와본다며 연못과 잘 어울리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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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살고 계신 형님께 인사하고 가려고 전화를 하였더니 형수님과 함께 나오셔서 영양이 자랑하는 술인 초화주 몇 박스를 건내주셨다. 모두들 반갑고 고맙다며 인사를 나눴다. 마침 숙모님과 종형께서도 오셔서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반기셨다. 그리고는 마을회관으로 들어와서 음료수라도 마시라면서 옷소매를 붙잡으셨으나 그때 손전화가 왔다.
 
"형님 빨리 오세요, 닭백숙이 다 식게 되었습니다"
"알았다, 바로 출발할게"
  
면사무소 인근 약수터 식당에서 점심 준비가 다되었다는 독촉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차에 올라 바로 이웃마을인 양항동 약수터에 들렀다. 예전 모습은 그대로이나 약수를 샘에서 바가지로 떠 마시던 것이 지금은 샘이 솟던 우물을 메워 그곳에 파이프를 연결하여 약수를 편리하게 받도록 하였으나 그 때보다는 정감이 덜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약수를 마시거나 물통에 받아 갔지만 지금은 한적하여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쌉싸름한 약수로 푹 삶은 백숙을 형수님이 주신 초화주를 반주삼아 마시니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모두들 어린 시절 얘기로 추억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누군가 빨리 영덕으로 가서 그 유명한 대게를 맛보자며 서두르는 바람에 고향의 정을 뒤로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태그:#일월산, #명당, #시산제, #연당리, #영양서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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