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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한산했던 중앙동과 다가동 사이
 토요일 오후, 한산했던 중앙동과 다가동 사이
ⓒ 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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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짬을 내 전주에 다녀왔다. 완산구 중앙동과 다가동의 경계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어놓으니 오후 다섯 시 즈음이었다. 숙소 주변은 참 조용하고 소담한 동네였다. 그 아기자기한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그래도 전주에 왔는데 한옥마을은 다녀 와야지'라는 마음에 방을 나섰다.

숙소에서 한옥마을로 가는 길은 의외로 무척이나 한산했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동네 주민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줄지어 선 가게들 대부분은 불이 꺼진 상태였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동성당과 한옥마을 부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분식집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분식집
ⓒ 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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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좁은 골목이 나오더니 사람을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자그마한 제분소, 세탁소, 비어있는 작업실, 분식집.... 응? 분식집? 배가 고파서인지, 가게문에 쓰인 '분식'이란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아래에는 '손칼국수'라는 글자도 보였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본 가게 안은 어두웠다. 입맛을 다시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유리문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러자 형광등 불빛과 그 아래 주인 아주머니 얼굴이 보였다. 기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었는데, 아주머니와 어르신이 화투를 치고 계셨다. 한창 진행되고 있던 판을 깬 것 같아 조심히 여쭸다. "돼요?" 돌아오는 대답이 명쾌했다. "되죠."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분식집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분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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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오기 힘든 골목의 중간에 있는 가게 치고는 꽤 넓고 아늑했다. 그래봤자 기다란 테이블 두 개에 열다섯 명 남짓이 꽉 채워 앉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 시간 손님은 나뿐이었다. 아주머니와 같이 화투를 치시던 어르신이 아주머니께 무어라 말을 하셨는지, 아주머니는 어르신에게 이렇게 타박(?)을 주셨다. "아유 지금 손님 있잖어~"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모든 것이 낯선 이 상황이 재밌었다. 한옥마을은 잠시 잊었다.

아주머니가 칼국수를 준비하시는 동안 어르신은 잠시 자리를 뜨셨다. 십분쯤 흘렀을까. 어르신은 가게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셨다. 마침 칼국수가 나왔고 두 분은 경기(?)를 재개하셨다. 나는 비로소 편안해진 마음으로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뜨끈한 국물, 납작하고 넓은 면, 명태(황태인가)가 잘 어우러진, 시원한 칼국수. 그 옆 고추장아찌 맛도 일품이었다.
 뜨끈한 국물, 납작하고 넓은 면, 명태(황태인가)가 잘 어우러진, 시원한 칼국수. 그 옆 고추장아찌 맛도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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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셨다. 단골이신지, 아주머니는 화투를 멈추지 않으셨고 할아버지도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시며 한참동안 서 계셨다. 아주머니가 주방에 들어가시자 화투 친구(?) 어르신은 또다시 자취를 감추셨고... 할아버지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셨다.

두 분은 나를 사이에 둔 채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 내게 말을 거셨다.

"아유.. 저렇게 젊어 봐. 뭐 못 할 게 있겠어."
"허허.. 그러게 말여. 나도 70대만 돼도 지금보단 날라(날아)다니겠어."
"그쪽은 몇 살이래?"

나이를 말씀드리자 돌아오는 대답에 기분이 묘해졌다.

"아이고, 진짜 좋을 때다~ 애인있으면 결혼하기 딱 좋은 나이다."
"제일 좋을 때여. 젊은 게 좋아, 정말. 나 몇 살 같아 보여?"

우연히 만난 분식집의 풍경
 우연히 만난 분식집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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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할아버지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곧, 70대 같으시다고, 정정하시다고 답했다. 할아버지는 환한 미소를 보이셨고, 그 옆에서 함께 웃던 아주머니는 손가락을 펴 숫자 8과 5를 보여주셨다. 그 뒤로도 나이와 젊음에 대한 두 분과의 이야기는 꽤 오래 이어졌다.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던 전라도 사투리, 정말 오랜만에 해본 어르신과의 대화, 내 나이가 '딱 좋은 나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까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상황에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천천히 칼국수를 먹고 가게를 나섰다. 아주머니는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왔던 방향과 같은 쪽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골목이 끝나자, 정말 놀랍게도 눈앞엔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가게들은 모두 문을 열었고 각종 먹을거리와 관광상품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골목 하나를 두고 이렇게 풍경이 다르다. 당분간 번화가와 주택가의 매력적인 경계를 잊지 못할 듯하다. 이미 한옥마을은 잊힌 지 오래다.


태그:#전주여행, #해달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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