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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6 토익 관련 기자설명회에서 한 기자가 보도자료를 체크하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6 토익 관련 기자설명회에서 한 기자가 보도자료를 체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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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씨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A씨가 한 달 일하고 받은 돈은 30만 원. 공과금 내기도 빠듯한 액수다. A씨는 주말 단기 알바생이 아니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토익 학원의 강사지만, 수강생이 줄어든 수개월 동안 매월 70만 원 이하의 임금을 받았다.

#2. '까~톡!'. 밤 11시 30분, B씨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교재 30페이지 2번 문제가 이해가 안 가는데 설명해주세요." 수강생이었다. 이제 막 잠이 들려던 찰나, B씨는 침대에서 일어나 교재를 폈다. B씨의 손에선 24시간 스마트폰이 떠날 일이 없다. '24시간 카톡 상담'과 수강생 카페·SNS 관리 때문이다.

화려한 대형 토익 학원의 이면은 어두웠다. 대다수 토익 강사는 학원에 소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영업자나 다름없다. 언론에 비춰지는 '억대 연봉 스타 토익 강사'는 극소수였다. 상당수 강사는 기본급 없이 수강생 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수강생 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대다수 강사는 수강생을 모으기 위해 사비를 털어 홍보하고, 근무시간 외에도 수강생 관리 업무를 한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토익 강사의 또 다른 면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1월 17일부터 30일까지 이메일을 이용해 서울 소재 대형 토익 학원(YBM, 파고다 어학원 등)에 근무 중이거나 근무했던 160여 명의 토익 강사에게 근로 환경에 대한 20가지 문항의 질문을 보냈다. 약 10%가 답을 보내왔고,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더욱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허울 좋은' 토익 강사, 월급도 천차만별

한 대학교 학생회관에서 학생들이 교내 토익강좌 수강신청 홍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한 대학교 학생회관에서 학생들이 교내 토익강좌 수강신청 홍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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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토익 강사니 허울은 좋을 수 있는데... 샐러리맨들은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잖아요."

서울 소재 대형 토익 학원에서 5년 이상 근무한 C씨(30대)의 말이다. C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학원이 사업체를 빌려주는 것과 다름없다, 학원이 강사를 초빙하고 우리는 (학원에) 브랜드 이용료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씨는 "대부분은 완전한 성과급제"라고 덧붙였다.

기자와 인터뷰한 토익 강사들은 대형 토익 학원에 '정규직' 토익 강사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개 학원과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고다 어학원은 전체 강사의 약 80% 정도가 개인사업자다.

즉, 대부분의 토익 강사는 학원에 소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다. 학원의 브랜드와 장소 등을 돈 내고 사용하는 자영업자나 다름없다. 따라서 기본급 없이 성과(수강생 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수강생이 줄면 임금도 줄어든다. C씨 또한 "수입이 들쭉날쭉하다"고 말했다.

실제 질의·응답에서 토익 강사들이 밝힌 임금은 천차만별이었다. "급여가 30만 원이었던 달도 있었다"고 털어놓은 토익 강사가 있는 반면, "보통 강사들은 일반 대기업 직장인들 연봉보다 더 번다"거나 "방학에는 대다수가 1000만~3000만 원 이상 수입을 거둔다"는 답변도 있었다. 한 달 급여가 "1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라고 답하는 등 달마다 편차가 큰 경우도 있었다. 안정적인 수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생들이 낸 수강료를 강사가 전부 갖는 것도 아니다. 학원과 강사가 일정한 비율로 나눠 가진다. 이 비율은 강사와 학원의 계약에 따라 다른데, 학원의 몫이 강사의 몫보다 더 큰 경우도 있다. 강의하는 사람보다 장소와 강의 시스템 등을 제공한 학원이 수강료를 더 많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구조다.

서울 소재 대형 토익 학원에서 5년 이상 근무한 D씨는 "재수강률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강사가 (수강료를) 가져가는 비율이 최하 35%에서 40% 정도고, 학원은 60%에서 65% 정도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D씨는 "대형 토익 학원은 대부분 이런 수준으로 알고 있고, 강사가 제일 많이 가져가는 곳은 비율이 5대5 정도"라고 말했다.

토익 강사들은 24시간 카톡 상담을 운영하거나 수강생 카페·SNS 등을 관리하기도 한다. 학원 측이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토익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다.
▲ "24시간 카톡 상담합니다" 토익 강사들은 24시간 카톡 상담을 운영하거나 수강생 카페·SNS 등을 관리하기도 한다. 학원 측이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토익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다.
ⓒ 토익 홍보물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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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어.. 월급 20%가 홍보비

"학원 측에서 강사보다 더 많은 비율의 돈(수강료)을 가져가면서, 왜 마케팅은 강사 개인이 거의 다 담당하라고 하는 건지... 부당합니다."

서울 소재 대형 토익 학원에서 5년 이상 근무한 E씨(20대)의 말이다. 토익 업계는 수강생 수만큼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다 보니, 강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강의를 성실히 하는 노력만으로 토익 업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힘들다.

D씨는 "2009년까지는 토익 자체에 대한 수요가 많아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2010년 넘어가면서 그나마 홍보를 해야 학생들이 오는 경향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수강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강사 개인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토익강사들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대형 토익 학원 강사들은 강좌 개설에 맞춰 학원 측이 만드는 광고(TV, 인터넷 배너 광고 등) 외에 별도의 개인 홍보물을 제작한다. 이에 들어가는 프로필 사진 촬영, 홍보물 디자인 비용 등은 대부분 토익 강사의 몫이다.

서울 소재 대형 토익 학원 강의 경력 5년 이하의 강사 F씨(30대)는 "프로필 사진(포토샵, 메이크업 비용 포함)은 괜찮은 곳에서 찍으면 30만 원 정도이고, 전단지나 L폴더(홍보용 문구용품) 같은 경우도 1000장에 30만 원, 디자인은 따로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20만~40만 원 정도 쓴다"고 말했다.

F씨는 "(보통 토익 강사가) 방학 때 돈을 많이 벌어도 학기 중에 홍보비로 돈을 많이 쓴다"며 "매달 월급의 20% 이상은 홍보비로 나간다"고 답했다. 이어 "특히 방학 전 달에 블로그 광고 등 바이럴 마케팅비로 월 200만~300만 원 이상씩 쓰는 분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토익강사는 본인의 돈뿐 아니라 시간도 할애해야 한다. 수강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24시간 카톡 상담을 운영하거나 수강생 카페·SNS 등을 관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C씨는 "이런 활동은 모두 자율"이라면서도 "안 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토익 시장에서 도태된다, 특히 기존 토익 강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강생 유치를 위한 각종 홍보 활동이 '의무 아닌 의무'라는 것이다. D씨의 설명도 비슷하다.

토익 강사들은 24시간 카톡 상담을 운영하거나 수강생 카페·SNS 등을 관리하기도 한다. 학원 측이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토익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업무들이다.
▲ 토익 학원 수강생 카페들 토익 강사들은 24시간 카톡 상담을 운영하거나 수강생 카페·SNS 등을 관리하기도 한다. 학원 측이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토익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업무들이다.
ⓒ 검색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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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도 많고, 능력 있는 강사인데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던 강사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10명 강의실을 배정 받았습니다. 반면에 홍보를 한 스타 강사는 300명 강의실을 배정받았습니다. 능력 차이가 없는데, 동 시간 수업을 해도 급여 차이가 30배 나게 되는 겁니다. 일반 강사에서 스타 강사로 한순간에 크는 사람들이 있어요. 1, 2년간 월급 전부를 홍보비로 쓰는 거죠."

상대적으로 기반과 경력이 부족한 젊은 토익 강사가 마주하는 현실은 더욱 냉혹하다. C씨는 "어떤 토익 학원의 경우 초반엔 시급을 따져 기본급을 보장해주는 곳이 있긴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C씨는 "시장은 한정되어 있는데 진입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흔한 말로 굶기도 한다"며 "초창기에는 100만 원도 못 버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C씨는 "경쟁이 심하다 보니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며, "개인적으로 잘 되는 분들보다는 힘든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D씨도 "스타강사 아니면 대부분 투잡을 뛴다"며 "급여가 한 달에 100만 원 안 나올 때도 있다"며 "특히 결혼한 강사들은 이것만으로 생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강사들이 대형 토익 학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F씨는 "대형학원의 브랜드 파워는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며 "대형학원에서 강의했던 경력이 있으면 나중에 출강을 나가거나 과외를 하게 되더라도 경력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학원 측, "강사는 학원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파트너십'"

이에 대해 학원 측은 어떤 입장일까. 대형 토익 학원 측은 강사가 학원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YBM 어학원 홍보팀은 기자와 이메일에서 불안정한 급여 체계에 관해 "프리랜서라는 업종 특성 상 개인 역량에 따라 급여 수준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파고다 어학원 홍보팀은 "성과급 체계에 따른 급여 책정이 맞다"라면서도 "수강생의 수요를 예측해 강의를 개설하기 때문에 월 100만 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강사들은 없다"고 해명했다.

강사가 홍보비 등 각종 비용을 자부담하는 것에 대해 YBM 측은 "강사와 학원의 관계는 일반적인 직장인과 회사의 소속 관계가 아닌 파트너십 관계라는 특수성이 있다"며 "개별 마케팅 활동은 어디까지나 강사 개인의 자율 의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학원 측이 이를 강제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학원에서는 TV 광고나 인터넷 배너 광고 등 학원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켜 강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입 강사들은 학원의 브랜드 가치와 체계적인 강의 시스템 제공 등 학원 차원의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파고다 어학원 홍보팀의 입장도 비슷하다. 파고다 측은 "학원에서 집행하는 마케팅 비용 또한 상당히 크다, 이로 인한 마케팅 효과 또한 강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며 "이외에도 브랜드와 하드웨어(과목군별 담당 직원·강의실 장비·홈페이지 운영 및 관리 등)를 제공한다"고 해명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예지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토익, #토익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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