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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교직 입문 첫 해부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로 살고 있다. 재벌 건설회사 사장 출신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정권이 출범한 건 2008년이었다. 1년 뒤인 2009년, 2차에 걸친 교사 시국선언으로 학교 현장에 '공포정치'가 펼쳐졌다. 강경 탄압 국면이 이어지면서 이탈자가 생겨났다. 교육 활동가들은 무기력에 빠졌다. 10만을 육박하던 전교조 조합원 교사 수는 반토막으로 줄었다.

전교조는 단체행동권이 없는 반쪽짜리 노조다. 연가가 거의 유일한 '집단 투쟁' 수단이다. 연가 투쟁 때마다 전교조는 정부와 사법당국의 표적이 되었다. 보수언론은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공론장에서 전교조에 투쟁만 일삼는 과격단체 이미지를 덧칠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곳곳에서 전교조를 압박했다. '보험' 드는 심정으로 가입한 교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2013년 법외노조 정국이 시작되었다. 전교조는 사면초가에 놓였다. '법외노조'라는 건조한 용어는 실제의 법률적 쟁점과 무관하게 '불법노조'를 환기했다. 전교조가 불법단체처럼 비춰지는 부정적인 효과가 사람들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2015년 6월 현재 전교조는 크게 위축되어 있다. 교원노조에 적대적인 정부와 시대착오적인 법 체계가 표면적인 배경 요인이다. 전교조 창립일인 지난 5월 28일, 헌법재판소(헌재)가 현직 교원에게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에서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전교조 법외노조화의 법적 근거가 되었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의 '노조 아님 통보' 조항은 모법 위임 없는 시행령상의 규정이다. 2013년 2월, 당시 이재갑 노동부차관이 동 조항이 헌법상 피해최소성의 원칙에 반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발언한 까닭이다.

국가인권위가 해고 조합원 배제와 노조 설립 취소를 규정하고 있는 노조법 시행령이 위헌이므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과잉 법 적용과 위헌 시비, 하극상 시행령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박근혜 정부의 기형적인 '시행령 통치'가 전교조 법외노조화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교원노조와 관련된 전통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해직, 퇴직교원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한다. 문제의 조항이 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시대착오적 규정이라며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최고 법관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비판에 귀를 닫았다.

전교조 내부 상황도 좋지 않다. 핵심 활동가가 없거나 집행부가 꾸려지지 않은 '사고' 지회․분회가 많다. 조합원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신규교사 가입이 줄면서 활동 동력이 떨어진 전교조가 '늙었다'고 자탄하는 배경이다.

지금 전교조는 법외노조와 법내노조를 널뛰듯 오가고 있다. 햇수로 3년째다. 지난 6월 3일 대법원은 전교조가 "법외노조 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라며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효력정지가처분신청 재항고심에서 전교조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한 뒤 사건을 재심리하라며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헌재가 '교원노조법 합헌' 결정을 내린 지 5일만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서울고법의 2014년 9월 19일 '전교조의 법외노조 효력정지 결정'(2014년 9월 19일)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한 것은 10월 8일이었다. 이후 대법원은 재항고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지 않다가 이번 헌재 결정이 나오자 신속하게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공개변론 한 번 하지 않은 헌재와 마찬가지로 대법원 역시 8개월여를 허송세월로 보내다가 전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정부, 헌재, 대법원 등 권력기관이 총동원된 '기획 탄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헌재는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해직조합원이 조직의 자주성을 해친다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현재 전교조 해직조합원 비중은 전체의 0.02퍼센트에 불과하다. 1989년 전교조 설립 이후 지금까지 해직교사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었으나 그들이 전교조의 자주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한 정부는 '이명박근혜' 정부를 제외하고 없었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교원노조법 제2조의 입법 목적이 다른 행정 수단과 결합하여 노조의 자주성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면서, "해당 법률 조항은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헌재 논리대로라면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하고 설립을 취소시키려는 정부 시도는 전교조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된다. 이런 모순적 결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교조의 자주성은 전교조 스스로 지켜왔다. 정부는 전교조의 최고 의사 결정 주체가 500여 명 가까운 전국대의원들임을 모르는 걸까. 밤샘 일정이 예사로 이루어지는 전교조 전국대의원대회(전국대대)만큼 치열하게 토론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조직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전교조 전국대대에서 결정된 사항은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 전교조는 그렇게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조직이다.

5만여 전교조 조합원들은 9명의 해직조합원을 끝까지 품기 위해 법외노조의 길을 선택해 걷고 있다. 노조가 있고 노동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있어야 노조가 있을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전교조의 '늙은 투사'들은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법외노조라는 황량한 벌판이 전교조의 최종 기착지가 아닌 듯하다. 정부 목표는 법외노조를 넘어 전교조를 없애는 일일 것이다. 이 가공할 '드라마'에는 청와대, 교육부, 고용노동부,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 주요 권력기관이 공동주연으로 총출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2011년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전교조를 불법노조로 정리하라"라는 발언을 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전교조 불법노조화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교육시민단체와 야당이 헌재에게 선고기일을 연기하고 공개 변론을 요청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공안통' 검사 출신이 이끄는 헌재는 모든 요구를 묵살한 채 일사천리로 판결을 선고했다.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돼 있을 그들은 집요하고 위력적이며, 그래서 공포스럽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즈음이었다. 청와대가 25일간 총리 후보군 100여명을 검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총리 물망에 오를 정도면 출세의 정점에 이른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촉망받는 인재이자 나무랄 데 없는 우등생으로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농부시인 서정홍은 시 <못난이 철학 1>에서 "도둑이나 사기뿐보다 / 수천수만 배 더 나쁜 게 있다면 (중략) 공부 열심히 해서 편안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한테"라고 썼다. "가난한 이들과 땀 흘려 일하고 / 정직하게 살라 가르치지 않고"라면서 말이다.

미국의 대표 지성 하워드 진이 적실히 표현한 것처럼,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이 세상은 서로 다른 가치와 철학과 세계관이 다투는 격렬한 싸움터다.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는 기계로 살 것인가, 양심에 귀를 기울이는 인간의 삶을 살 것인가. 출세지상주의자를 만들 것인가, 더불어 함께 사는 시민을 길러낼 것인가. 26살 '늙은' 전교조의 '푸른' 교사들은 잘 알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전교조 법외노조화, #불법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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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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