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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목가적인 풍경
 교외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목가적인 풍경
ⓒ 조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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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나라, 아일랜드가 나를 껴안다

누군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다는 건, 행복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잃어버린 인생 길을 여행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이나마 그 답을 찾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 거창한 욕심 이전에, 2년간의 장기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지쳤던 몸과 마음을 좀 쉬게 해주고도 싶었다.

막상 낯선 땅에 발을 딛고 보니, 여유보다 먼저 나를 찾은 건 두려움이었다. 결국, 입국심사관에게서 자유롭게 해준 유학생 친구에게 SOS를 요청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달려와 준 그녀와 내가 첫 여행지로 택한 곳은 더블린에서 버스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킬케니였다. (관련기사: 전라도, 서른일곱, 여자... 난 왜 유서 쓰고 이 나라를 떴나)

도심을 조금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초록 들판이 펼쳐졌다. 혹시 겨울이라 초록의 아일랜드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걱정은 기우였다. 초록빛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은 대지 위에 가끔씩 고개를 내미는 나무 몇 그루, 양 떼들을 보고 있노라니 '안구정화'와 함께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중세도시 킬케니에 자리한 킬케니성
 중세도시 킬케니에 자리한 킬케니성
ⓒ 조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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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방식은 다양하다. 식도락 여행, 여행책자에서 알려주는 유명한 장소를 모두 찍고 오는 여행, 아무 계획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여행. 나의 여행은 세 번째에 속했다.

방송 일은 늘 데드라인에 시달리는 일이다. 철저한 자료 조사도 필수다. 요즘은 다들 나와 같이 살아가겠지만, 어쨌거나 여행하는 동안은 '일할 때처럼 살지 말자'는 지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조건 여유롭게, 여행 공부도 되도록 하지 않는 그런 여행이 시작됐다.

킬케니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친구와 나는 호기롭게 식당으로 향했다. 주방장 추천요리와 샌드위치를 주문해 두 접시를 말끔하게 비워줌으로써, 한국인 여성의 '위대(胃大)함'을 몸소 실천했다.

아기자기한 상가 건물을 지나 곧 눈앞에 영국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성이 나타났다. 13세기에 완성됐다는 킬케니 성이었다. 사위는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운 좋게(?)' 마지막 가이드 투어에 합류했다. 성 내부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지만, 영어로 아일랜드의 중세 역사를 이해하기엔 내 영어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인간에겐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탁월한 능력이 있어 다행이었다. 마음속에 두 가지 창을 띄워 놓고, 한 창을 통해서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눈치껏 따라 웃었고, 또 다른 창에서는 천 년 전 이곳에 살았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만 이대로 돌아가기 싫었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 가지 결심했다. 애초 열흘로 결정한 여행 일정을 20일로 늘리는 것. 단순히 아일랜드가 좋아서는 아니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라는 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아일랜드에도 비리와 부조리가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 뒤통수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대로 돌아가기 싫었다. 똑같은 나로 살아가기 싫었다. 내게 주어진 20일, 그 시간 동안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붙잡고 싶었다.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강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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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밤, 더블린으로 돌아온 나는 스스로 물었다.

'네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뭐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방송을 '마약'에 비유할 정도로 방송에 미쳐 있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갑'과 '을'의 현실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좀 더 솔직해지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고 보는 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내 안에도 분명 '갑'에 대한 욕망이 있었을 테니.

밥이면 용서되는 현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10여 년 사이, 방송 환경은 급속히 변해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종합편성사의 급부상이다. 2009년 미디어법이 통과될 때에만 해도 많은 방송가 사람들이 눈물로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불과 4~5년 사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또 다른 '갑'이 되어, 혹은 여전히 충실한 '을'로서.

나 역시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종편 프로그램을 한 일이 있다. 정치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인데, 이제는 어느 방송사를 가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회의가 깔렸고…. 사실 핑계일 뿐, 솔직하게는 좀 더 나은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다. 이제는 누구나 종편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는 것을 당연시한다. 방송 일이 아니라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일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먹고 살아가는 일만큼 위대한 일은 없으니까.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멈추고, '갑질'이 횡행하고 있기는, 지상파 방송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또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야만 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왠지 모르게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는 진짜로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방송인으로서,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 골웨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 골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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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뜬 무지개, 힐링이 시작된 것일까?

여행 사흘째. 유학생 친구가 사는 골웨이라는 작은 도시로 향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재주는 없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젤을 펼쳐놓고 그림을 한 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주가 있다고 해도 날씨가 쉽게 허락해 주지 않을지 모른다. '아일랜드 날씨는 여자 마음과 같다'는 말이 있다는데, 아일랜드에 와 본 사람이라면 다들 무릎을 치며 공감할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달리고 있는 버스 왼편 차창으로는 화사한 햇살이, 오른편 차창으로는 거센 빗줄기가 내리고 있을 만큼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이기 때문이다.

골웨이를 찾은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햇살이 쨍하다 싶어 친구와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걷기로 했는데, 채 몇 분정도 걷지도 않았는데 비가 왔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재미있는 것은 1년에 300일 가까이 비가 오는 이곳 사람들은 거의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모자가 달린 점퍼를 입고선, 모자를 들쳐 쓰면 그만이다. 흡수력이 빠른 나도 우산을 펼쳐본 일이 거의 없다.

모자를 뒤집어쓴 채 산책로 중반에 다다르자, 또다시 햇살이 나왔다. 아래로 선명한 무지개가 놓여 있다.

아일랜드의 선물, 골웨이에 뜬 쌍무지개
 아일랜드의 선물, 골웨이에 뜬 쌍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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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친구와 나는 동시에 힘껏 함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무지개 위에 또 하나의 무지개가 있다니!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쌍무지개다. 순간, 상처투성이였던 내 마음에도 '짠'하고 무지개가 뜨는 듯했다. 그것으로 어쩌면 이 여행의 의미는 충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쌍무지개 뜬 바로 그 날, 아홉 살 소년에게 '쌍욕'을 먹다

벅차오르는 마음이 생겨, 저녁에는 홀로 크리스마스 마켓과 시내를 구경하려고 나섰다. 가톨릭 신자가 80% 이상인 이곳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이방인이지만, 나 역시 축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셀카봉을 꺼냈다. 사실 골웨이는 수도 더블린과 달리 아직 셀카봉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라 셀카봉만 꺼내 들었다 하면 스타가 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저거 봐~ 셀카봉이야."
"정말 멋지다!"

여기저기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군거리는가 하면, 불쑥 옆으로 다가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에게 다가오는 그들을 마다치 않고, 사진을 찍어서 확인까지 해주며 마음에 무지개가 뜬 날을 기념하고자 했다.

대미를 장식한 건, 한 무리의 소년들이었다. 아홉 살 전후의 소년 대여섯 명과 함께 'V'를 그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중에는 내 얼굴과 머리에 'V'를 그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손길이 고맙고, 따뜻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고마움은 얼마 가지 않아 분노로 바뀌었다.

"얘네, 욕했네!"

사진을 확인한 유학생 친구는 아일랜드에서는 V를 손등이 앞으로 가게 하면 욕이라는 것이다. 한껏 감동했던 마음에 '쩌억'하고 빗금 가는 소리가 났다. 

저 아름다운 거리 어딘가에서 바로 그 아이들을 만났다
 저 아름다운 거리 어딘가에서 바로 그 아이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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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사흘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일랜드 여행은 마치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남은 시간, 내게 또 어떤 감동과 실망을 안겨줄지, 나는 과연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내 인생의 길을 찾을 것인지…….

어쨌든 나는 걸어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아일랜드 여행은 2014년 12월 9일~ 30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아일랜드, #골웨이, #방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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