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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타락한 화랑의 후예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역신, 즉 역병에 빗대질 정도로 병적이었다. 아무 거리낌도 없이 한 여인을 겁탈하고 남의 아내를 빼앗는 진골족의 자손들인 화랑에게, 처용은 아무리 용의 자식이라지만 한갓 지방의 유력자를 아비로 둔 미꾸라지에 지나지 않았다. 지방의 용은 서울에 오면 개울가의 미꾸라지 취급을 받는다.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 85쪽-

언중유골(言中有骨), 말 중에 뼈가 있다고 했습니다. 술술 지껄이는 말 중에도 뼈가 있거늘 하물며 또박또박 눌러 쓴 글 속에 어찌 뼈가 없겠습니까? 가끔은 개떡이라고 써놓고 찰떡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고, 찰떡이라고 써놓고 개떡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글 속에 스며있는 속뜻을 읽어 내는 걸 행간을 읽는다고도 합니다.

역사적 기시감 더해주는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지은이 이양호┃펴낸곳 평사리┃2014.2.15┃1만 6000원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지은이 이양호┃펴낸곳 평사리┃2014.2.15┃1만 6000원
ⓒ 평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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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지은이 이양호, 펴낸곳 평사리)는 '삼국유사'에 실린 글에 들어있는 뼈들을 추려내고 간추려서 작금의 우리나라 정세 등을 반추해보며 고전을 통해서 찾을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역사에도 기시감이 있는 가 봅니다. 책에서 저자는 우리 현대사 100년이 일연이 살던 시대와 똑 닮았다고 설명하며, 작금의 우리 시대를 닮아있는 때를 책 제일 앞쪽에 편집하는 것으로 역사적 기시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승려였던 일연(一然: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 지은 사서(史書)입니다.

저자는 삼국유사를 '삼국사기에서 팽개친 일'을 기록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국유사는 어떠한 사실을 단순히 연대별 주제별로 정리한 글이 아니라 그 시대(왕)를 상징할 수 있는 내용들을 '집중', '배제', '배치' 그리고 '문학적 상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토막 글속에 뼈처럼 집중된 역사적 상황들이 농축돼 들어가 있고, 전후 배치를 이야기들을 통해 뼈 국물 같은 비밀코드를 우려낼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49대 헌강대왕 때 설화로 '처용랑과 망해사'가 실려 있습니다. 처용이 밤이 이슥히 놀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가 자고 있는 자리에 가랑이가 넷이니 '둘은 내 것이나 둘은 뉘 것인고'하며 '본래 내 것이다마는 빼앗아간 것을 어쩌리'하니 역신이 처용 앞에 정체를 드러내며 꿇어앉아 처용의 아내를 흠모했음을 고백하며 이후로는 처용의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용서를 빌었다는 내용입니다. 

고등학생쯤에 배웠을 처용설화는 두 다리의 주인공이 역신이라는 정도까지입니다. 아무리 설화라고 하지만, 처용 아내가 역신과 뒤엉켜 운우지정을 나누는 장면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역신으로 위장 된 어떤 비밀이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박정희적 현상을 다시보고 있다. 그것도 박정희가 가졌던 좋은 점, 자주국방에의 염원·교육의 평준화·그린벨트 설정·국부(國富)의 창출 등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들은 깡그리 잘린 채, 문제적인 것들만이 유령처럼 살아 돌아왔다.

지금 우리는 공적 기관의 친위대화, 종교인·지식인의 어용화도 보고 있고 또 올바르게 일하는 사람들이 잘려나가는 것도 보고 있다. 신라 말기의 딱 그 꼴이다.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 91쪽-

책에서는 처용 이야기에 나오는 역신을 '타락한 화랑의 후예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용랑과 망해사'에 들어있는 뼈는 신라 헌강대왕 시대의 타락한 사회상이자 부패한 권력을 조명하는 풍자며 개탄이었습니다. 

역신의 두 다리, 아직도 존재

시대와 양상은 조금은 다를지 모르지만, 삼국유사에 실린 글에서 찾을 수 있는 뼈들은 오늘날 자행되고 있는 정치적 불미스러움이며 부조리한 사회상입니다. 역신의 두 다리, 권력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신라 스님들 모습에서는 어느 종교집단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기고만장했던 화랑들이 보인 사회상에서는 타락한 어느 정보기관의 모습이 연상되니 이야말로 역사적 기시감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불행입니다.

제일 윗자리에 있는 자가 오만하여, 해서는 안 되는 일임에도 밀어 붙이고, 권력을 사유화하여 공권력을 희화화하고, 패거리를 지어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을 잘라낸 뒤 그 자리를 어용들로 채우자, 이렇게나 아름답던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못했다. 아름다운 사람이 엇으면 아름다운 시대도 사라진다.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 292쪽-

그냥 읽으면 처용의 아내를 범한 두 다리 주인공은 실체가 불분명한 역신이지만, 고대사에 감춰진 비밀코드로 읽으면 타락한 화랑의 후예들이며, 권력에 편승한 승려들이 자행하던 사회적 부패상이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삼국유사에 들어있는 뼈를 밝혀내는 뜻이 서양이 그랬고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작금의 절망적인 우리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 우리 겨레가 밝힌 '역사의 눈'을 바로 삼국유사에서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나누는 말에도 뼈가 있고, 삼국유사로 전해지는 글 속에 들어있는 뼈까지 새기게 되니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지은이 이양호, 펴낸곳 평사리)로 다시 음미해보는 삼국유사는 헛헛하게만 느껴지는 오늘을 속 든든하게 채워 줄 진한 뼈 국물이자 난잡한 시대를 헤쳐 나갈 비밀코드를 밝혀줄 키워드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지은이 이양호┃펴낸곳 평사리┃2014.2.15┃1만 6000원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 - 일연이 밝힌 한국 고대사의 비밀 코드

이양호 지음, 평사리(2014)


태그:#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 #이양호, #평사리, #일연, #처용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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