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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운전병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해병대 대령이 군사법원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4일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판단해 파기환송했다.

일단은 해병대 대령이 성추행 혐의를 벗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리 간단치 않다. 군검찰이나 해군의 수사를 대법원이 뒤집은 것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 국가보훈처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7월 사건 진정을 접수받고 조사에 나서 대령의 범죄행위라고 판단해 해군참모총장에게 수사를 의뢰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는 피해 권리구제를 위한 법률구조까지 요청했던 사안이다. 인권위원회 조사발표 후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여론이 비등하자 군검찰은 대령을 구속했다.

특히 이번 판결로 국가보훈처의 입장도 곤혹스럽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2011년 5월 상급자의 부당한 성추행으로 전역 후에도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점에서 국가책임을 인정해 피해자인 운전병을 국가유공자로 판정했다. 이 사건은 군대 내 성추행 피해자로는 첫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례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국가유공자 인정의 근거가 된 성추행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단함에 따라, 보훈처로서는 국가유공자로 계속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에 대해 인권위는 "사법부의 판단이기에 현재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월요일쯤에서나 입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국가보훈처는 조금 복잡해 보였다. 기자가 통화한 국가보훈처 관계자 3명은 "전체적인 검토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 "현재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단,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긴 전에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해군본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의뢰해 보훈심사위원회에서 요건사실확인서를 근거로 심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또 유공자로 지정된 후 취소된 사례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본인이 허위 자료를 제출해 유공자로 지정된 경우는 있어도,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취소 여부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났다고 바로 (국가유공자를) 취소하는 게 아니다. 보훈심사위원회의 재심의를 거쳐 취소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훈심사위원회가 심의해 유공자 결정을 하는데 이 분(운전병)에 대한 심의를 의뢰 받았을 때의 심의자료를 보고 어떻게 국가유공자로 된 것인지 경위를 보고 판단할 사안이다. 또 대법원 판결도 봐야 한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이번 사건은 고등군사법원이 다시 심리해 판단하게 됐다. 고등군사법원에서는 대법원의 무죄 취지를 받아들여 무죄로 판결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군검찰이 다시 상고할 것이 예상돼 결국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될 전망이어서 최종 판결은 더 지켜봐야 한다.

사건 개요
2010년 7월 해병대 모 부대 L상병의 어머니는 "A대령이 군 휴양소에서 술을 먹고 관사로 복귀하던 중 운전병인 아들을 차량 뒷좌석 등에서 강제로 키스를 하고,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 강제추행을 했으며, 아들은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신속한 조사 및 권리구제를 원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A대령은 당시 술에 만취한 상태로 강제추행 사실 및 구체적 경위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진정서에는 A대령이 "여자처럼 예쁘게 생겼다"며 추행한 것으로 돼 있다.

인권위원회 조사결과,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 강제추행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는 군형법 등의 규정을 위반해 강제추행의 범죄행위를 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의 인격권, 성적자기결정권 및 신체의 안전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해군참모총장에게 A대령을 수사 의뢰하고, 국방부장관에게는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또 대한변호사협회 법률구조재단에는 피해자 L상병에 대한 민형사상의 권리구제를 위한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돼 파문이 일었다. 군검찰은 A대령이 3회에 걸쳐 강제로 추행해 L상병에게 3년간 치료가 필요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정신과적 상해를 입게 했다며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의병제대한 L상병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인정받아 국가유공자가 됐다. 군복무 중 성추행 피해자로서 국가유공자가 된 것은 L상병이 처음이었다.

국가보훈처는 2011년 5월 "해병대 부대 참모장의 운전병으로 복무 중 참모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정신적인 충격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의병 전역된 사례"라며 "피해자가 본연의 임무수행 중 상급자의 부당한 성추행으로 인해 전역 후에도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점에서 국가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A대령은 공판과정을 통해 공소사실을 다투면서 술에 만취해 당시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지만, 성추행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2010년 12월 A대령의 세 차례 강제추행 혐의 가운데 두 가지는 무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고등군사법원은 2012년 2월 A대령에게 징역 1년9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A대령에 징역 1년9월 선고한 원심 깨고 고등군사법원으로 파기환송

사건은 A대령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는데, 대법원 제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자신의 운전병을 성추행한 혐의(군인 등 강제추행치상)로 기소된 해병대 A대령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중 일부에 한해 신빙성을 인정해 유죄 인정의 근거로 채용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원심은 세 번째 강제추행만을 유죄로 인정했는데, 그 내용을 살펴봐도 나머지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근거가 유죄 인정에 있어 방해가 되지 않는 점에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해사실과 사건당일의 상황에 관해 대체로 사건경위서와 같은 취지로 상세히 진술하다가, 피고인측 변호인이 사건경위서와 진술내용이 일부 일치하지 않음을 추궁하자 그때부터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 사건경위서대로만 해달라는 식으로 일관성 없는 진술을 했다"며 "이후 피해자는 증인으로 출석해 범행을 당한 충격으로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을 못하거나 잘 모른다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또 "그런데 피해자는 다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는 새로운 사실을 진술할 뿐 아니라 기존 진술내용 중 모순이 있는 부분을 보충해 상세히 진술하기까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호인이나 재판부의 신문 중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한 채 사건경위서에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만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내용을 대조해 보면 구체적인 부분에서 일관되지 않는 부분도 매우 많아, 원심도 3회째 추행 하나만 실제 일어났던 것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무죄로 판단했다"며 "그러나 범행 당시 시간관계와 피해자 진술 내용이 변천되는 과정 및 거기서 드러나는 진술 태도만 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여러 사정이 쉽게 발견된다"고 밝혔다.

특히 "피해자는 범행을 당한 후 어머니와 공중전화로 통화한 다음 인근 산에 올라가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고, 피고인이 탈 지프차를 고장 내어 사고를 가장하는 방법으로 함께 죽으려고 했다고 사건경위서 등에서 구체적으로 진술했으나,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그 시각에 어머니와 통화한 바 없고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음이 인정되고, 목을 매었다가 부러졌다는 나뭇가지나 노끈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목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으며, 지프차도 조사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밖에도 피해자의 진술은 내용이 수시로 달라지고 있고, 그것이 객관적 사실에 의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음은 물론 아예 모순되는 부분도 많아 보이는 점 등 기록에 드러나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진술을 신빙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상해진단서도 피고인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진술이 사실임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 기재만으로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피해자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은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사죄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고, 합의를 추진하며 2000만원을 공탁했는데, 이에 대해 피고인은 사건 당시 만취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든 피해자가 부대 생활에서 고통을 겪은 것 같았으며 해병대의 명예를 위해 조속히 합의하고 전역하는 것이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피고인의 반응이 다소 석연치 않다거나 수긍하기 어렵다고 보이는 점이 없지 않다는 것만으로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전개과정과 사회 분위기, 군대 내 피고인의 지위를 감안해 보면 피고인이 무고함에도 자포자기의 위축된 심리상태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었다고 못 볼 바 아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피해자 진술 등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에는 현저히 부족하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위법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해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에도 실렸습니다. 로이슈



태그:#운전병, #대령, #강제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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