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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류길재 통일부장관 주재로 2013년 제1차 남북관계발전위원회를 열어 '제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안(2013~2017)'을 심의했다.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은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제13조) 및 동법 시행령(제7조)에 따라 5년마다 통일부장관이 수립하도록 돼 있다.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 : 법치와 정치 사이

정부가 25일 심의한 2차 기본계획안은 통일부장관이 확정하면 정부 정책으로 공식화된다. 물론 국회에 보고하고 국민들에게 고시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그래서 25일 정부가 발표한 2차 기본계획(안)이 사실상 정부의 입장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대안 제시가 회의에서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2005년 12월 29일 여야간 초당적 합의로 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은 제1조에 "남한과 북한의 기본적인 관계와 남북관계의 발전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추상적으로 밝힌 뒤, 제2조에 기본원칙 중 하나로 "남북관계는 정치적·파당적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서는 아니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바로 이점이 남북관계발전법의 태생적 한계와 직결된다. 왜냐하면 그 법에 따라 노무현 정부 말에 확정된 '제1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08~2012)'은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휴지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1차 기본계획이 사문화된 책임을 주무부처인 통일부에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북한 통일 문제는 하나의 정책 사안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의 영역이기도 하다. 새 정권과 대통령이 앞선 정권과 대통령과 북한 통일 문제에 관한 시각이 다를 수 있고, 그 차이가 정권 획득의 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거의 완전히 다른 성향과 방향을 가졌다. 그런 가운데 통일부가 자율적인 판단을 갖고 1차 기본계획을 이행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제로'였다.

그렇지만 남북관계발전법 제정을 계기로 대북정책에서 법치 구현·투명성 제고·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기여한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특히, 제2장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한 정부의 책무로 명시한 ▲ 한반도 평화증진 ▲ 남북경제공동체 구현 ▲ 민족동질성 회복 ▲ 인도적 문제 해결 ▲ 북한에 대한 지원 ▲ 국제사회에서의 협력증진 등 6대 사항은 대북정책의 기본방향이라 할 수 있고, 대북정책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근간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점들을 보다 구체화시켜 남북관계발전법을 이행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2차 기본계획(안)은 정부 임기와 계획 이행기간이 일치해 사산의 우려가 아니라 성공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신뢰성과 효용성

2차 기본계획(안)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더욱 뚜렷해졌다. 현 정부가 제시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통일을 단계적으로 준비해나가겠다는 목표다. 이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화해협력의 제도화를 목표로 제시한 1차 기본계획과 비교된다.

1차 기본계획의 목표로 제시된 화해협력의 제도화는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남북협력사업을 고무 촉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의 예측가능성· 지속성·안정성을 보장하는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 이명박 정권 5년간 남북협력사업이 완전히 중단됐다. 2013년 초 전쟁위험까지 겪은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게 박근혜 정부가 당면한 과제였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그 개념과 방향이 타당성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내용의 부실함과 북한의 호응 부재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2차 기본계획(안)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토대로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신뢰와 과정(process)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신뢰를 구성하는 세 측면(대내·북한·대외) 중 역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쪽은 북한과의 신뢰 형성이다. 하지만 취임 7개월이 지나가는 시점에도 북한과의 신뢰는커녕 주도권 다툼의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뢰 프로세스의 신뢰성과 함께 효과성의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과정을 중시한 것은 좋은데 현실성 있는 정책 수단, 그 집행과 관련한 시간 개념이 발견되지 않는다.

2차 기본계획(안)은 1차계획안에 포함된 평화 정착 대신 '실질적 통일 준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도 박근혜 정부가 통일을 과정으로 인식하며 작은 통일(경제공동체)에서 큰 통일(정치통합)로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보이는데, 이는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그렇지만 통일 준비가 평화 정착 대신 2대 목표 중 하나로 부각될 만큼 우선적이고 더 중요한 목표인지는 의문스럽다.

이와 관련해 2차 기본계획(안)에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추진방향에서 비핵화 내용이 빠진 것은 10대 중점과제 중의 하나인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추구' 내용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일부 내용의 변경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세 번째 북핵 실험의 해이자 정전 60주년에 취임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방안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신뢰프로세스 성공의 네 가지 원칙

신뢰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네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발전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제정된 것과 이 법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 남북관계 제도화를 추구한 입법 취지가 구현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초당적 협력과 민관협력은 정책 집행은 물론 결정 단계에서도 적용되는 원리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야당과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고,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구성에서 관료와 민간의 균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둘째, 정경분리 원칙의 구현이다. 2차 기본계획(안)의 4대 추진방향 중 첫째로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있는 추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확고한 대북억지에 기반하되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복원·발전시키겠다는 전략으로서 외형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유사해 보인다.

안보는 안보, 협력은 협력으로 병행 추진하려면 협력에 대한 안보의 제약을 최소화하고 협력이 안보의 지지 하에 남북관계 발전에 더욱 기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경분리 원칙의 구현이고, 그 사례가 경제협력의 군사적 보장이었다. 정경분리에 의한 적극적 경협과 민간교류는 안보 위기나 정치적 갈등에 의한 남북관계 악화를 예방하고 발전을 촉진한다. 정경분리 원칙의 적용이 정부가 추구하는 '안보와 협력의 균형'을 보장하는 길이다.

셋째, 인도주의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시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남북간 정치적 관계와 무관하게 무조건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인도주의는 광범위한 지지를 갖고 있는 행동규범이자, 실제 대북정책에서는 우선적인 현안이기도 하다. 인도적 문제 해결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대내외적인 지지를 제고시킬 호재기도 하다.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의 연계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신 그것을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상시화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평화 정착에 대한 우선적 관심을 둬야 한다. 내가 속한 대학 연구기관에서 실시한 '2013 통일의식조사발표'에 따르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 1위, "같은 민족"에 대한 응답은 2007년 50.6%에서 2013년 40.3%으로 줄어들었다. 그에 비해 "전쟁위협 해소" 응답은 19.2%에서 30.8%로 높아졌다. 이 설문조사는 2013년 7월 1~22일 사이 전국 16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65세의 성인 남녀 1200명을 다단층화 무작위 추출법으로 이뤄진 것으로,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8%다.

한반도에서 평화정착은 통일의 전제조건이고, 한반도 전체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의 실체이자, 한반도 비핵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대내·외 그리고 북한으로부터 신뢰를 받아 남북관계의 발전에 기여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서보혁님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이면서 코리아연구원 연구기획위원을 겸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신뢰프로세스, #남북관계기본법, #남북관계발전계획, #평화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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