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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의 대학 졸업과 작은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짧은 기간 때문에 패키지 여행을 생각하다가 가족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배낭여행으로 결정했습니다. 태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들을 고려했지만 볼거리, 먹거리, 쇼핑 모두를 즐길 수 있는 홍콩으로 결정했습니다.

가족 여행을 한 것이 7년쯤 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해외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지만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가족 여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에 목숨을 건 열혈 부모는 아니지만 '대학 입시'는 큰 장벽이었습니다. 이제 두 아이 모두 입시에서 해방돼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도 단계가 있습니다. 가장 행복할 때는 여행을 다녀온 후 추억을 되새길 때입니다. 가장 힘든 시기는 실제 여행을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여행의 준비 단계 역시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인터넷에서 여행기와 정보를 검색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항공권을 구입하면서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가족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부 싸움입니다. 한 번 의견이 충돌하면 여행 기간 내내 다툼이 반복됩니다. 24시간 내내 얼굴을 마주봐야 하기에 감정을 삭일 시간이 없습니다. 이번 여행 계획은 아이들에게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부부간의 다툼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최선책입니다. 여행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지혜이지요.

싸면서 좋은 것은 없구나

홍콩으로 떠나며.
▲ 인천공항 홍콩으로 떠나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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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만난 저가 항공은 착한 가격만큼이나 고충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항공기는 좌석 사이가 좁아서 불편했습니다. 음료와 주류는 돈을 내야 했으며 기내식은 먹기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마일리지 적립도 되지 않았습니다. 짧은 거리여서 다행이지 장거리 여행이었으면 시작부터 후회할 뻔했습니다.

홍콩 첵랍콕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인천 공항, 싱가포르 창이 공항과 함께 아시아 허브(HUB) 공항답게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공항은 청결했고 시내까지 이동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공항 전철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옥토퍼스 카드를 구입하여 공항버스를 이용해 숙소가 있는 침사추이로 이동했습니다.

홍콩 국제공항 '첵랍콕 공항'.
▲ 첵랍콕 공항 홍콩 국제공항 '첵랍콕 공항'.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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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퍼스 카드는 지하철, 버스, 트램, 페리 등 홍콩의 모든 대중 교통수단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 편의점에서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어 홍콩 여행자들의 필수 카드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시내버스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아 이 카드가 없으면 불편합니다. 

침사추이는 홍콩의 가장 중심인 구룡 반도에 있습니다. 편리한 교통과 명품 쇼핑센터들이 밀집되어 있고 우리나라 민박집들이 많아 배낭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침사추이 한인 숙소 지역.
▲ 침사추이 침사추이 한인 숙소 지역.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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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하자 집사람과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침침한 계단을 걸어 도착한 민박집은 도심 뒷골목 여인숙을 연상시켰습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컴컴한 숙소와 좁은 방은 네 명이 지내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숙소를 예약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빠! 이게 뭐야!"

작은 아이의 표정이 바뀌면서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 역시 생각지도 못한 문제여서 "여행이란 불편한 것을 참는 것"이라고 말해보지만 일그러진 가족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본 숙소와 방은 여유가 있어 보였는데…. 

"이번 여행 정말 기대하고 있었는데!"

큰 아이가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습니다. 돈을 조금 아껴 보려는 계획이 '소탐대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사람도 한 마디 하였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늘 그렇지!"

숙소 예약 한 번으로 가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비행기부터 숙소까지 여행의 시작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최대한 비용을 아끼면서 즐거운 여행을 만들려고 했는데 첫날부터 총체적인 부실입니다. '싸면서 좋은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홍콩에서 확인했습니다.

거대한 빌딩도 아름다울 수 있다

서둘러 숙소를 나왔습니다. 홍콩은 구룡 반도, 홍콩섬, 란타우섬 그리고 신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홍콩섬을 관광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MTR)로 센트럴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홍콩섬의 명물인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와 해발 396m의 빅토리아 피크에 가기로 했습니다.

홍콩 여행이 처음이라 가이드북을 보아도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인들에게 묻고 또 묻는 것입니다. 몇 번을 묻고 제자리를 반복한 후에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총 길이가 800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는 관광이 아닌 현지인들의 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오전에는 아래 방향으로 오후에는 윗방향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홍콩섬의 명물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
▲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 홍콩섬의 명물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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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중간 중간에는 출입구가 있어 자신이 편리한 곳에 내리거나 탈 수 있습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주위에는 작지만 앙증맞은 레스토랑과 바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곳이 소호입니다. 소호는 이색적인 갤러리와 골동품 가게들이 여행자들의 눈을 즐겁게 만듭니다.

빅토리아 피크로 이동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휴양지로 발달된 빅토리아 피크는 해발 396m 타이핑산(太平山) 정상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피크 트램을 이용해서 산을 오릅니다. 피크 트램은 1800년대 후반부터 운행되고 있으며 45도의 급경사를 숨가쁘게 오르내립니다.

빅토리아 피크를 오르내리는 '피크 트램'.
▲ 피크 트램 빅토리아 피크를 오르내리는 '피크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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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오르자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마천루들이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홍콩 정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피크 타워에는 야경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피크 타워에서는 레저와 쇼핑을 위해 개발된 홍콩의 랜드 마크로 시원하게 펼쳐진 홍콩의 전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안개 자욱한 빅토리아 피크에서 본 구룡반도와 홍콩섬 모습.
▲ 빅토리아 피크에서 본 정경 안개 자욱한 빅토리아 피크에서 본 구룡반도와 홍콩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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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빌딩들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숙소에 대한 생각을 잊은 듯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네요. 숙소에 대한 미안함으로 비상금을 털어 아이들에게 거한(?) 저녁을 사면서 어리바리한 홍콩 여행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태그:#홍콩, #침사추이,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 #빅토리아 피크, #피크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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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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