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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등대에서 바라본 선바위(가운데) 너머로 노을이 진다.
 거문도 등대에서 바라본 선바위(가운데) 너머로 노을이 진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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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팔경을 쓴 귤은 김유시인은 거문도 팔경에 지역마다 거문도의 다양한 모습을 글로 남겼다.
 삼호팔경을 쓴 귤은 김유시인은 거문도 팔경에 지역마다 거문도의 다양한 모습을 글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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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국어화(紅國漁火).

<거문도 팔경>을 쓴 귤은 김류의 시 삼호팔경(三湖八景)의 한 구절이다. 홍국어화는 갈치· 멸치잡이 배들이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수백 척의 배에 불을 밝힌 모습을 뜻한다. 지금의 거문도 풍경을 압축하면 이 말이 가장 어울릴 듯싶다.

거문도의 풍경을 글로 옮긴 김류 시인은 <귤은재유고>(橘隱齋遺稿)를 남겼다. 여기에는 340여 수의 시를 비롯해 많은 글들이 수록돼 있다. 그가 떠난 지 129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의 시와 함께 거문도를 둘러보면 여행의 맛과 멋은 더 깊어진다.

橘亭秋月(귤정추월), 竹林夜雨(죽림야우), 鹿門怒潮(녹문노조), 龍巒落照(용만낙조)
梨谷明沙(이곡명사), 紅國漁火(홍국어화), 石凜歸雲(석름귀운), 白島歸帆(백도귀범)

북상 중인 태풍 소식에 그만...

거문도항에 묶여있는 선단의 모습
 거문도항에 묶여있는 선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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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다. 뜻하지 않는 복병을 만났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동료들과 거문도 여행을 준비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그런데 거문도를 떠나기 전날 속보가 떴다. 17호 태풍 도라지의 북상 소식이었다.

지금은 소멸했지만 당시 일행은 "우리는 여행만 잡으면 태풍이 오냐"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당일까지 태풍의 영향이 미미해 거문도에서 나오는 날을 앞당기기로 하고 일정대로 출발했다. 지난 3일 이른 아침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행 배에 올라탔다. 막상 배를 탔지만 날씨 때문에 일행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도 중간에 있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의 거리는 약 115km. 여수를 출발한 오가고호는 시속 60km의 속력으로 바다 위를 가로질렀다. 너른 바다로 나가니 너울성 파도로 배가 많이 흔들거렸다. 2시간 30분이 지나고 우리는 거문도 고도항에 도착했다.

거문도는 여수시 삼산면에 속해 있는 섬으로 고도(孤島)·동도(東島)·서도(西島)로 이뤄져 있다. 이중 고도가 거문리에 해당한다. 도착과 동시에 백도 가는 관광선을 타기로 했지만 파도가 높아 배가 뜨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TV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것처럼 즉석에서 먹거리를 해결하기로 한 우리 일행은 두 개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낚시팀, 다른 한 팀은 고동팀이었다. 우리는 각자 먹거리를 구해 저녁에 숙소인 거문도 등대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섬사람 최고의 찬거리... 거북손을 따다

갯바위에 달라붙은 거북손을 따다 너울이 몰아쳐 휩쓸릴뻔한 모습
 갯바위에 달라붙은 거북손을 따다 너울이 몰아쳐 휩쓸릴뻔한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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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람들 최고의 별미인 거북손은 남해안의 청정해역 갯바위에서 산다.
 스페인 사람들 최고의 별미인 거북손은 남해안의 청정해역 갯바위에서 산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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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람들의 최고의 찬거리인 거북손은 까먹기는 힘들지만 약간 삶아서 속살을 숟가락 뒷부분으로 쏘옥 빼서 먹으면 식감이 쫄깃하고 끝맛이 고소하다
 섬사람들의 최고의 찬거리인 거북손은 까먹기는 힘들지만 약간 삶아서 속살을 숟가락 뒷부분으로 쏘옥 빼서 먹으면 식감이 쫄깃하고 끝맛이 고소하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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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팀은 고도항에서 배를 불러 양식장이 있는 바지선으로 낚시를 떠났다. 나머지 일행은 거문도 등대 가기 전에 고동을 잡았다. 이곳은 몇 년 전 TV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도 나왔던 곳이다. 한참 고동 잡기에 나섰으나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다. 이후 등대 쪽으로 거점을 옮겼다. 그곳에서 낚시와 함께 갯것에 집중했다. 너울이 커서 고동 잡기는 틀린 것 같았다. 그런데 파도가 부서지는 갯바위 주변을 보니 <1박 2일>에서 봤던 거북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거야."

이내 우리는 갯바위에 달라붙은 거북손을 따기 시작했다. 거북손은 거북손과의 만각류로 몸길이는 3~5cm 정도다. 거북의 손을 닮아 거북손이라 불린다. 몸 아랫부분은 육질로 된 자루 모양이고 윗부분에는 손톱 모양의 석회질 껍데기가 있다. 거북손은 만조 때 석회각판에서 고사리 잎같이 생긴 만각을 내놓고 있다가 지나가는 플랑크톤을 잡아 먹는다.

거북손은 까먹기는 힘들지만, 약간 삶아서 속살을 숟가락 뒷부분으로 쏘옥 빼 먹으면 된다. 식감이 쫄깃하고 끝맛이 고소하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별미다. 그 이름을 딴 '페르세베(percebe) 축제'까지 있을 정도. 국내에도 도시인들에겐 이색적이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찬거리다.

오지고 푸진 섬, 거문도

일행들이 낚시로 잡은 돌돔을 들고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일행들이 낚시로 잡은 돌돔을 들고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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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팀이 4자급 참돔 3마리를 잡아 올렸다. 참돔은 쫄깃쫄깃한 식감이 감칠나다.
 낚시팀이 4자급 참돔 3마리를 잡아 올렸다. 참돔은 쫄깃쫄깃한 식감이 감칠나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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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너울이 일어 파도가 높게 일었다. 거북손을 따다가 하마터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갈 뻔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파도가 오면 도망가고 또 들어가 따기를 반복하니 그 재미가 만만치 않았다.

이윽고 저녁이 됐다. 일행들이 잡아 올린 찬거리가 속속들이 모였다. 이날 최고의 조과는 바지선 낚시팀이었다. 이들은 넉 자가 넘는 참돔과 함께 고등어와 아지를 쿨러에 가득 채워왔다. 우리는 거북손을 한 냄비를 땄으나 회가 너무 푸져 이날 저녁 손도 대지 못했다.

역시 거문도는 오지고 푸진 곳이 틀림없다. 등대에서 맞는 여행 첫날, 사실 태풍 소식에 긴장도 했지만 서로가 '정글의 법칙'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 끝에 해산물과 함께 풍성한 하룻밤을 맞았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에 외딴섬 거문도의 밤이 깊어간다. 이럴 때 김류 선생은 이렇게 읊었으리라.

"귤정추월(橘亭秋月)"(귤은 사당 숲 사이로 은은한 가을 달빛이 비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거문도여행, #거북손, #거문도 팔경, #거문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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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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