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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고잔지구 개발 예시도. 국토교통부는 고잔역과 뒤편 환승주차장 사이 녹지대 48,000㎡ 부지에 1,500가구를 건설할 예정이다.
 행복주택 고잔지구 개발 예시도. 국토교통부는 고잔역과 뒤편 환승주차장 사이 녹지대 48,000㎡ 부지에 1,500가구를 건설할 예정이다.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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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행복주택'이 삽질도 하기 전에 삐걱거립니다. 행복주택은 철도부지 등에 임대료가 싼 공공 임대주택 20만 가구를 공급하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부동산 정책입니다. 그 행복주택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지난 12일 안양 국토연구원에서부터 시작한 행복주택 공청회가 안산, 목동, 공릉 등지의 주민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임대주택지 신길동 63블록이 있는데 웬 고잔지구?

안산에서도 행복주택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됐습니다. 비대위의 주장은 신도시 주거환경 파괴, 학교설립 계획 없어 교육문제 유발, 고밀도 주택건립으로 인한 경관 훼손, 소음과 진동 등으로 인한 주거환경 악화로 요약됩니다.

특히 이들은 신길동 63블록(단원구 신길동 1379번지 일원 5만544㎡)이 국민임대주택지구로 지정된 마당에 고잔지구(단원구 고잔동 285-8 일원 4만8천㎡)를 시범지구로 선정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비대위는 고잔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반대 서명을 받으며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습니다.

신길동 63블록은 지난 2006년 국민임대주택 건설사업 부지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사업성 부족과 온천개발 민원 등을 이유로 방치한 끝에 산업폐기물 등 쓰레기 무단투기로 슬럼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온천개발 민원은 200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해 일단락된 사건이라는 게 안산시의 입장입니다. 법률적으로 사업추진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신길동 63블록은 다문화 특구인 원곡동이 인근에 있어 지리적 입지 여건으로도 적합합니다. 시범지구로 개발할 경우 다문화 특구 리모델링이라는 '덤'까지 챙길 개연성이 큽니다. 국토부가 행복주택을 친환경 복합주거타운에 '명품 임대주택'으로 짓겠다고 했으니까요. 행복주택 안에 호텔, 주민복지센터, 건강증진센터, 공원, 경연장 등을 짓는다니 이참에 다문화 특구와 연계해 리모델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멀쩡한 부지가 있는데도 고잔지구에 행복주택을 지어 주변 녹지율을 떨어뜨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지역 현실과 특성을 무시한 채 시범지구로 선정된 고잔지구가 철회되어야 하는 명백한 이유입니다.

행복주택 반대는 '님비 현상?'... 근본적 문제 따로 있어

행복주택에 반대하는 이같은 여론을 집값 하락에 전전긍긍하는 '님비 현상'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당국에 있습니다.

먼저 '전시 국정' 관행입니다. 대선공약이라면 앞뒤 안 보고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집행하려는 관행에 문제의 씨앗이 있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해 정권 치적 쌓기가 정책 목표의 1순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뿌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주택 공급을 불쑥 선언하고 밀어붙여온 '후진성'에 있습니다. 대규모 택지개발은 국가의 재정·경제·사회·인구변화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전제로 공급하고 관리하는 '선진성'에 입각해야 합니다. 박근혜정부가 역대 정권과 별 차이 없는 행복주택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결국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셈입니다.

둘째, '불통 행정'입니다. 국토교통부는 '보안'을 이유로 해당 지자체와는 시범지구 선정 이후에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행복한 사업을 추진한다면서도 사전협의 조차 없는 철통보안을 하달해 스스로 '불통 정부'를 자인한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산시는 물론 김문수 경기지사마저 고잔지구 선정을 반대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닫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불통'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들끓고 있는 비난 여론입니다.

셋째, '계층 갈등'의 확산입니다. 행복주택의 필요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설명과 소통 없이 밀어붙인 결과 (공공) 임대주택에 대한 선입견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른바 '낙인효과'의 확산입니다. '임대주택은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낙인을 찍어 공동체 내에 차별과 격리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별은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이어지고 결국 공동체의 균열을 초래하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국민대통합을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목표와는 멀어도 너무 멉니다.

행복주택이 오순도순 행복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불행으로 신음하는 '불행주택'으로 전락할 수 있는 이유들입니다.

행복주택의 성공적 안착 '소셜 믹스'에 있다

행복주택과 보금자리주택은 '반값 임대'냐 '반값 분양'이냐, 사업부지가 그린벨트냐 철도부지냐만 다를 뿐 참 닮았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주택의 반면교사가 될 보금자리주택의 성적표는 어떨까요? MB정부는 1년에 15만 가구씩 10년간 150만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짓겠다고 했으나 현재 입주 완료 아파트는 1만 가구에 불과합니다. 인·허가까지 포함하면 53만가구이나 박근혜정부에서 사실상 접은 상태로 향후 추진이 희박해 보입니다.

박근혜정부는 올해 1만 가구를 시작으로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까지 행복주택 20만 가구 전부를 인·허가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문제는 사업비용과 사업시행자인 LH공사의 재정난입니다. 당초 행복주택 건설비용은 3.3㎡당 360만 원대로 예측됐으나 부지특성상 내화·내진 시설강화와 각종 특수공법 적용으로 이미 500만 원대로 높아졌습니다. 총 사업비가 1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금자리주택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LH공사의 상태는 심각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채가 138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신길동 63블록 사업을 계속 지연시킨 속내가 재정난에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근거입니다. 물론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겠지만 결국 빌리는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적자를 키우는 사업인 행복주택 건설은 LH공사를 사지로 몰아갈 공산이 큽니다. 여기에 금융위기의 여진과 부동산 경기침체까지 가세해 행복주택의 생명력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싼 집값과 전세난, 월세 부담을 감안하면 공공 임대주택 보급 확대는 필요합니다. 문제는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소셜 믹스'가 대표적인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서울 은평뉴타운 1단지처럼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한 단지 내에 섞어 짓는 것입니다. 신길동 63블록도 국민임대 722세대와 일반분양 214세대를 섞어 짓는 소셜 믹스로 택지개발을 계획했습니다. 소셜 믹스의 '새로운 진화'에 행복주택의 성공적 안착이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비등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지난 5일부터 19일까지 시범지구 주민열람을 공고하고 있습니다. 행복주택 건설을 강행하겠다는 것입니다. 행복주택이 성공하려면 보금자리주택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한 대전제는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와 소통입니다. 달리 길이 없으니까요.

짓기만 하면 통하던 시대는, 벌써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태그:#행복주택, #고잔지구, #보금자리주택, #신길동 63블록, #소셜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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