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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할 때는 그 공과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거시적인 역사적 층위에서 볼 때, 그에게 과연 진정한 역사적 공적이 있을까 싶다.

흔히 그의 공적으로 '경제 부흥'이니 '조국 근대화'니 하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것들을 빼고 나면, 그는 집권 기간 내내 오로지 정치적 숙적 탄압과 온 국민을 상대로 한 겁박을 일삼았을 뿐이다. 그 경제 부흥이라는 것도 온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군 것이니 실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무엇보다 20여 년의 독재 정치로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역사적인 죄악'을 생각하면, '경제 부흥' 운운하는 말들이 내 귀에는 뻔뻔스럽게만 들린다.

그럼에도 독재자 박정희를 향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애정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그 딸인 대통령 박근혜의 '무서운' 위세 때문일까. 최근에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 기념사업 등 '박정희 되살리기'에 대한 기사(오마이뉴스 4월 6일 자 기사;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되살리기' 시동 걸었나?>)가 그런 생각을 더 굳게 한다.

1960~70년대를 강압적으로 통치한 박정희의 파렴치와 야비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박정희 정권이 한일회담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운 장준하와 <사상계>에게 가한 핍박은 세간의 양아치 사업자들이나 저지를 만한 짓들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사상계> 사를 상대로 유례 없는 대규모 세무조사를 벌인 일은 유명하다. 이 조사에서 별다른 시빗거리가 나오지 않자 그들은 <사상계> 사와 거래를 하고 있던 인쇄소, 제본소, 지업상, 광고주, 지방거래서점 등을 이 잡듯이 뒤지기도 했다.(214쪽 참조) 이는 채무자 대신 그 가족을 괴롭히는 악덕 사채업자들의 행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짓이었다.

내가 정부 비판의 장본인이면 차라리 죽이거나 살리거나 나를 잡아가면 좋겠는데 나는 아니 잡아가고 공연히 시키는 대로 일하는 주위의 사람만 못살게 학대합니다. 그리고는 나를 가르쳐서는 노망한다 하고 버리고 떠나라고 이간을 시키고, 심지어는 지방의 독자로서 찾아왔던 사람까지 잡아다 고생을 일까지 있습니다. ('춘래불사춘', <씨알의 소리> 1972년 4월호 6쪽; 274쪽에서 인용함)

함석헌 선생이 박정희 정권에 대적하다가 당한 핍박을 직접 서술한 대목의 일부다. 박 정권의 극악스러운 폭압으로 모든 이가 숨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그때 황야에서 홀로 제대로 된 외침을 이어간 사람은 오직 함석헌뿐이었다. 그 대가로 <씨알의 소리> 업무부장이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구타를 당하고, 인쇄소와의 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지되기도 했다.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하는 파렴치한 고사작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석헌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을 '저항'을 사랑하며 살았다. 이 책의 저자 김상웅 선생이, 기존의 함석헌 평전과 달리 이 책에서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열쇳말도 바로 이 '저항'이다.

그럼에도 다시 <저항인 험석헌 평전>을 쓰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제목에 '저항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의 생애가 온통 저항인이었는데, 마치 종교인, 재야사학자, 문필가, 시인 등으로 '왜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맹호출림(猛虎出林)'의 호랑이를 고양이처럼 그림으로써 함 선생의 본령과 실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서, 새로운 평전을 통해 본 모습에 접근하고자 한다. 강조하거니와 그는 88년 생애를 통해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특히 박정희와 전두환의 포악한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거의 모든 사건에는 빠지지 않고, 항상 저항의 대열에 앞장섰다. (13, 14쪽 '머리말'에서)

함석헌 선생은 저항할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억눌러도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끄러움이 많고 겸손하며 평화를 사랑했으나 불의한 것에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가 '싸우는 평화주의자'라는 별칭을 갖게 된 이유다.

함석헌 선생이 우리 역사를 보는 데에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 저자는 함석헌 선생이 역사의 진보를 믿었다고 단언한다. 당장에는 권력이 승리하고 패악이 선을 누르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세상은 진보하고 선이 승리한다고 믿었다. 그가 기독교도들에게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음)'의 근본 정신인 '저항'을 강조하고, 언론(인)을 향해 '감옥행'과 '게릴라전'을 주창한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 등을 남긴 미국의 철학자이다. 그는 대표 저서인 <시민의 불복종>에서 불의한 시대에 의로운 이가 갈 곳은 감옥뿐이라고 말했다. 함석헌이 좋아한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소로였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처형 등으로 모든 언론이 공포감에 빠져 있을 때, 함석헌 선생은 "민권을 찾고 싶거든 감옥으로 들어가라! 살고 싶거든 죽음의 입으로 들어가라!"('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사상계> 1963년 4월호, 28~29쪽; 181쪽에서 재인용)고 절규했다.

함석헌 선생의 사상은 여러 측면에서 조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의 고갱이는, 일찍이 그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1890~1971) 선생이 최초로 썼다는 '씨알'['알'은 원래 'ㅏ' 대신 아래 아(․)로 표기되어 있음]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다. '씨알'은 한자어 '國民(국민)'에 있는 '民'의 우리말 표현으로, '종자'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국민'은 소박하게 '나라의 씨앗'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한 나라의 근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근본 노릇을 하지 못하는 '씨알'이 얼마나 많은가. '씨알'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생명을 내놓지는 않는다. 새 생명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듯하다가도 스스로에게서 싹을 틔워 한때를 자랑하다가 맥없이 스러져가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평생을 야인으로 살아간 '바보새' 함석헌 선생이 오늘날 이들 '씨알'들을 보면 과연 뭐라고 말씀하실까.

물론 밑바탕이 제대로 선 '씨알'도 많다. 하지만 진보 정권 10년 이후에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반동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들 제대로 선 '씨알'들은 지금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다. 나는 이렇게 어둠에 빠져 있는 '씨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들려주고 싶다. 함석헌 선생이 '누에'와 '수선화'에 대해 각각 쓴 글[순서대로 (가)와 (나)]의 일부를 빌려서 말이다.

(가) 그 힘은 비록 약하고, 그 입은 비록 적으며,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것 아니어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먹는 날, 천하라고 다 먹을 수 있다. 유교문화도 옴질옴질, 불교문화도 옴질옴질, 기독교문화도 옴질옴질, 과학에 가 붙어도 살금살금, 정신에 가 붙어도 살금살금, 다툴 것 없이, 시기할 것 없이, 떠밀면 돌아눕고, 뺏으면 또다시 가 붙으면서, 소리도 없이, 떠듦도 없이 먹고는 자고, 자고 나면 한 껍질 벗고, 새로 나서 또 먹어서 애기 잠, 두 잠, 석 잠, 그리고 한 잠을 자고 나면 백옥(白玉) 같은 문화의 전당 지을 수 있지 않겠나? 누에-번데기-나비의 생활철학이야말로, 씨알의 생활철학이다.('머리말', <생활철학>, 서광사, 1962; 218에서 재인용)
(나) 남들은 여름날 사나운 볕(폭양)의 찌고 내리지짐을 넝쿨식의 복종이나 응달에 피는 꽃식의 아첨으로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막의 드문 오아시스의 종려 야자식으로 간신히 지하수의 샘에 뿌리를 박고 버티어 봄으로 지내는데, 이 연한 수선은 종려식의 영웅주의를 나타낼 맘도 없지만 또 넝쿨식의 아첨도 차마 할 수 없어 겸손의 길을 취해 신선답게 굴복도 대항도 아니 하고 써늘하게 땅속에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을 하여 들어오는 악(惡)을, 제 속에서 장차 올 날을 위한 신비로운 선(善)의 양식으로 전환을 시킵니다. 그러니 결코 잠이 아닙니다. 때를 거꾸로 이용하는 지혜의 싸움입니다.('수선화에게 배우라', <씨알의 소리>, 1975년 6월호, 4~5쪽; 288쪽에서 재인용)

<저항인 함석헌 평전> (김삼웅 지음 | 현암사 | 2013.03 | 2만 원)


저항인 함석헌 평전 -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의 거대한 생애와 사상

김삼웅 지음, 현암사(2013)


태그:#김삼웅, #<저항인 함석헌 평전>,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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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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