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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13 2월22일상' 수상자로 김경훈 김종술 소중한 윤찬영 이규정 이동철 이상규 이숙경 이종필 최오균 한만송 황주찬 총 12명의 시민기자를 선정했습니다. '2월22일상'은 한 해 동안 꾸준히 좋은 기사를 쓴 시민기자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3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2013 2월22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만원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2 올해의 뉴스게릴라상'과 '2012 특별상', '2012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2월 22일상'을 수상하는 이동철·소중한·이규정·김경훈 기자.(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마이뉴스> '2월 22일상'을 수상하는 이동철·소중한·이규정·김경훈 기자.(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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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린 오후 8시. '2월 22일 상' 수상자인 이동철(32), 이규정(28), 김경훈(28), 소중한(26) 시민기자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의 한 막걸릿집에서 만났다.

특별히 이 네 명이 한자리에 모인 데는 이유가 있다. 모두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 출신인데다, 이동철 기자를 제외하고, 현재 모두 기자 지망생이다. 이동철·김경훈·소중한 기자는 15기, 이규정 기자는 16기 대학생 인턴기자로 활동했다. 이들은 인턴기자로 처음 만난 뒤 <오마이뉴스>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함께 참여하면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먼저 수상소감을 묻자 다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겠다"며 겸손해했다. 하지만 인터뷰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을 보는 관점과 자기 철학 등을 예비언론인으로서 뚜렷이 밝혔다. 

이동철 기자.
 이동철 기자.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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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철 기자] "일베에 신상까지 털렸지만..."

한때 기자를 꿈꾸었던 이동철 기자는 작년 11월부터 부천 노동법률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외되고 억울한 일을 당한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노동자 권리 찾기에 힘쓰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을 얻고 투병 중이던 윤아무개씨를 만난 후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숨을 안 쉬잖아, 내 새끼!"... 삼성에서 또!)

이 기자가 윤씨를 찾아간 그날 밤, 윤씨는 31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윤씨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대신 전한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말하는 이 기자의 눈빛은 흔들렸다. 그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을지 가슴으로 전해졌다.

"당시 투병 중이던 윤씨를 만나러 낮에 병원에 찾아갔는데, 윤씨가 '저 사람 누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윤씨가 많이 힘든 상황인데 내가 찾아가서 낯선 느낌을 준다는 게 엄청 미안했다. 가슴이 아팠다. 취재할 때도 조심스럽고 힘들었지만, 기사를 쓰고 나서도 오랫동안 당시의 충격을 지울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끊어지는 걸 직접 경험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1월에는 난생처음 '신상 털리기' 경험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성을 음식에 비유, 전두환 찬양... 이게 1위라고?'기사를 쓰고, '일베' 이용자들에게 '저격'을 당한 것이다. '일베' 사이트에 집 주소까지 공개되고 악성 댓글에 시달렸지만, 그의 열정과 의욕까지 꺾지는 못했다. 잠시 기자의 꿈을 접어 두었지만, 이 기자는 사실 '문학전문기자'가 되고 싶은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소중한 기자.
 소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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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자] "기사 하나로 교수에게 '홍어 코스' 대접 받아"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 활동을 하기 전, 2년 6개월간 전남대학교 <전대신문>에서 편집장을 지낸 소중한 기자는 "학보사 편집장을 지낼 때는 주로 출입처를 오가며 기사를 썼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발로 현장을 누볐다.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가슴 뛰는 경험을 했다.

그는 가장 애정이 가는 기사로 지난 1월에 쓴 '홍어 먹던 한화갑,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를 꼽았다. 18대 대선 결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광주에서는 92%의 표가 야권후보에게 갔다.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는 야권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광주를 향해 "춘향이처럼 변치 않는 마음"이라며 "어리석다"고 비판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호남 지역을 향해 '지역주의'란 비난의 목소리가 일부 흘러나왔고, 급기야 5·18민주항쟁을 '폭동'이나 '북한 간첩의 침투'로 보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은 32년 전 5월의 아픔을 간직한 광주시민들을 힘들게 했다. 광주 출신인 그는 펜을 들었다.

"기성 언론에서는 당시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의 발언 때문에 호남 민심이 좋지 않다는 내용을 보도했지만, 내가 호남 사람이다 보니 그것만으로 전달되지 않는 '한'이 있었다. 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욕을 먹기도 했지만, 단순히 '지역감정'이라는 말로 매도될 수 없는 호남 사람들의 감수성과 한을 대변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는 "이 기사가 나간 다음 날, 교수님이 대견하다며 홍어를 풀코스로 사주셨다. 홍어무침에 삼합, 홍어애탕, 홍어전까지 그날 홍어 배터지게 먹었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이동철 기자는 "나보다 동생이지만,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와 친화력은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몸빵'이 제일 자신 있다는 소 기자는 앞으로 "길바닥에서 자주 만나는 발로 뛰는 기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김경훈 기자.
 김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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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기자] "서평으로 사회의식 담고 싶어"

인턴 동기들 사이에서 '서평맨'으로 불리는 김경훈 시민기자는 한 해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풍부하다. 그는 지난 2010년 9월 처음 기사를 쓴 이후 지금까지 총 32편의 서평기사를 썼다.

"처음 서평을 썼을 때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내 글을 남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자기만의 관심사에 갇혀서 편협한 이야기를 하거나, 현 상황에서 의미가 없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내 기사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많이 고민하고 쓴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서평에 담으려 노력한다."

김 기자는 작년에 쓴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서울대생들의 최고 멘토? 교수님 실망입니다'를 꼽았다. 그는 기사를 통해 기득권 세대에게 청춘이 놓인 현실과 사회구조의 모순을 직시하라는 날카로운 의견을 던졌다.

"당시에 필요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사회에 필요한 얘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기사로) 실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책만 열심히 읽는 건 아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시민기자특별취재팀으로 활약하며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장을 전했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는 기사를 많이 쓰고 싶다"는 김 기자는 올해도 펜을 들고 열심히 현장을 누빌 계획이란다.

이규정 기자.
 이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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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정 기자] "사람들과 함게 해답 찾고 싶다"

자칭타칭 '컵밥 전문기자'로 불리는 이규정 기자는 이날 함께 자리한 다른 기자들에게 부러움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컵밥 보도가 나간 뒤 <오마이뉴스>에서 '이규정'을 검색해서 기사를 챙겨본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다른 기자들은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참신함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지난해 4월, 서울 노량진에서 벌어지는 '컵밥 전쟁'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후속기사를 썼다. (관련 기사 : 노량진서 뜬 '2천원 컵밥', 이렇게 망가지나)

이 기자는 영세 음식점 주인과 컵밥 노점상 간의 갈등, 중재에 나섰지만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는 구청, 그 와중에 편의점 컵밥을 출시해 판매하는 대기업의 행태를 지적했다. '컵밥 전쟁'에 응축된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를 기사로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보도로 영세 음식점 주인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번민이 있었다. 내 기사로 혹여나 인근 식당 상인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분들도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서민인데, 사실 어떤 게 맞는 건지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다만 당시는 노량진의 명물이 논의 없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면서 사람들과 함께 해답을 찾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스펙 위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꿈의 가치를 좇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규정 기자는 "다른 언론고시생과는 좀 다를지 몰라도, 시민기자 활동이 분명 기자가 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지금 현장에서 부딪히며 얻는 경험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꼼꼼히 채워나가 기자의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이다.

"만만한 게 아니라는 부담... 기꺼이 짊어지겠다"

"내가 쓴 글이 '공공의 것'이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듯하다. 책임감도 생기고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기자라는 게 '참 만만한 게 아니다' '대충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과 무거움을 더 크게 느꼈다.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 마음이 들수록 잘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커진다. 그런 무거움이라면 기꺼이 짊어지고 싶다."

소중한 기자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오마이뉴스>는 어떤 의미일까? 이번 질문만큼은 의견이 하나로 모였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발언대이자 고마운 공간이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도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인터뷰를 마치며, 네 사람은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이 시대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배우며 기자의 꿈에 한 발씩 다가가고 싶다고 말이다. 올해는 이 청춘들이 전하는 가슴 뜨거운 기사뿐 아니라, 이들이 훌륭한 저널리스트로 성장해 나가는 치열한 과정을 <오마이뉴스>에서 지켜볼 수 있을 듯하다.




태그:#2월22일,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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