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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거창분지 웅양초등학교에는 60명도 넘는 반이 한 학년에 적어도 3개씩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선생님 곁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예닐곱 명이 한 학년의 전부이며, 그것도 형편이 좋은 축에 속한다. 이제는 다음해에 들어올 아이들 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경이 되었다. 여파는 같은 마을 웅양중학교로 그대로 옮아간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잦아든 마을 학교의 고민은 한참 적막이 감도는 마을 골목의 위기에서 전이된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지금의 정부는 작아지는 작은 학교에 통폐합이라는 간단 처방을 꺼내 들었다. 소규모 학교로는 운영이 어렵다는 경제 논리가 판단의 근간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적정규모 학급수 기준 설정, 전학절차 간소화, 원거리 통학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나섰다.

초·중 6학급 미만, 고교 9학급 미만은 통폐합하고, 학생들을 기존 또는 신설 기숙형 학교에 수용하겠다는 안중이다. 여기에 통폐합 지원금도 당초 20억 원에서 100억 원까지 늘리고 업무 평가도와 연계한다는 방침이어서 지역 교육청에 조바심을 주입한다. 개정안대로라면 전국 학교의 27.7%(3138개교)가 통폐합되고, 통폐합 대상 학교의 86.3%가 읍·면·도서·벽지 지역에 있어 농산어촌 지역 면 단위에는 학교가 하나도 없는 곳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교육이 예산절감만의 완결판이라면 그것이 그럴싸한 노작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장기 아이들로부터 '모천'을 박탈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학교뿐 아니라 나고 자라는 집과 골목과 에둘러진 산천이 조합되어 뿌리내릴 심연. 그것과의 단절에 내몰려, 인공 잔디 운동장에 현대식 건물과 기숙사로 유혹한들 어린 날에 겪을 관계폭력을 어찌할 것인가. 강인한 자생력을 심는 데는 그릇된다. 아이들 속 무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이 처방에 안도할 수 없는 노릇이다. 들풀을 매만지던 아이가, 또는 한여름밤 쏟아지는 별빛을 세던 아이가 훗날 어엿한 식물학자, 천문학자로 서지 못할 것인가! 그 미답 잠재력에 점화의 접점을 찾아내는 일은, '투입'에 상응하는 '산출'에 급급해서는 요원하다. 벽촌에서 정신적·문화적 뿌리가 되어온 학교가 사라지면서 이들 지역의 교육·문화 공동화 현상은 필연적이고, 되레 찾아들던 젊은 가정의 이농을 부채질할 것이며, 노소 조화의 공동체 기능이 붕괴될 것은 자명한데, 이도 그에 더하는 문제일 뿐이다.

'더 작아지는 학교'에 대한 그늘은 어느 누구만을 닦달해서 될 일은 아니다. 지역 주민이 젊은 가정 유치에 공을 들이는 데서부터 실마리는 풀릴 것이다. 지역 학교 살리기에 나선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주민들의 노력은 귀감이 된다. 눈높이가 높아진 자녀교육 욕구에 지역 학교가 얼마나 호응하느냐도 과제다.

지역교육이 낙후되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내 고장 학교와 채 얼마 걸리지 않는 도시 학교 사이에서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도시 속 농촌으로 정체되어 한때 폐교 위기에 몰렸다. '작지만 강한 학교'로 변신한 경기도 고양시 대곡초등학교의 예는 학교 교육의 발상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학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학력이나 경쟁이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한 생활"이라고 이 학교 이묘순 교감은 말한다. 하지만 학교행정의 방향타는 무엇보다 교육청에 있다. 교육청이 여타 지역 교육청과의 수치 경쟁에 매몰되어 평가도 높이기에 급급해서는 교육의 완만한 발전방향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폐교 위기 농어촌 지역 학교 살리기 등을 지원하는 등 지역 풀뿌리 교육에 대한 안목이 긴요하다. 그것은 효율성 너머에 있다.

적정 규모를 좇아 닫고 묶고 모으는 데 천금을 쏟을 것이 아니라 곳곳 작은 학교에 열고 풀고 흩어놓아 내 고장의 결을 느끼며 자라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때, '초라하나 소중한' 우리를 이해하고 공동체에 공헌할 원대한 아이들을 기약할 것이다. 도시 학교의 무한경쟁 흉내에서 벗어난다면, 친환경·전원·이웃·자연·체험·생태·어울림 등 작은 시골 학교여서 가능한 것들이 왜 없겠는가.

오히려 어른들의 타산으로 좌우되던 곳이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탈바꿈한다면, 쳇바퀴와 경쟁에 지친 도시 아이들을 불러들일 마당은 널려 있다. 때로 적정 규모가 필요한 수업이라면 이웃학교와 '함께하는 금요일' 시간표를 짠다면 이웃을 이해하게 되는 소득도 덤이다.

씨알은 널리 산과 들에 흩어져 눈부신 생명창조 활동을 펼치고, 흩어져서 어디나 생명을 꽃피운다고 했다. 재물과 세력을 쌓으려는 사람은 뭉쳐야 살고 뭉쳐야 힘이 난다고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펼치려는 씨알은 흩어져야 산다고 했다. 그렇게 흩어져 우주 전체의 생명과 감응하고 공명하고 있음을 왜 보질 않는가? 그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교육행정의 단견이 모천으로 회귀할 백년대계 연어의 꿈은 아닐 것이고.

덧붙이는 글 | 거창 동호마을에 살고 있는 텃밭농사꾼이자 인문학 편집인으로, 설익은 시집 <나는 이럴 때 야성이 돋는다>가 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명승고택을 돌며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를 주선하고 있다.



태그:#작은 학교 통폐합, #씨알, #웅양초등학교, #백년대계,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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