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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결코 보호받지 못합니다. 주권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의 권리가 본래 그대로 유지가 되겠습니까. 스스로 찾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를 잃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투표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민주주의 꽃이자 참여정치의 축제라 불리는 총선이 끝났습니다. 유·불리의 결과만을 선사한 선거는 누군가에겐 분노로 혹은 기쁨과 안타까움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권력사회가 그러하듯 정치도 승자독식 세계만이 지배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에 패배한 정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패배한 정당에게 실패한 원인을 그들만의 패배주의로 내모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요. 이번 선거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권자의 도의적 책임은 그냥 덮어버려도 좋을는지요.

 

생각해보면 선거가 끝난 후 지금까지 각 정당이 패배의 원인을 단 한 번이라도 유권자 원망으로 돌린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 또한 정치적 불문율로 작용해 유권자를 자극하는 말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너희가 그렇지? 지면 유권자 탓, 이기면 너희 노력 덕분이라니... 유권자가 무슨 봉이냐. 너희가 하라는 대로 안 했다고 지면 원망만 하게. 투표를 왜 안 했는지, 투표율이 좀처럼 왜 안 올라갔는지 스스로 반성해라. 제발, 남 탓만 하지 말고 정신 좀 차려!"

 

선거가 끝난 후 아는 친구와 진탕 술을 먹은 후 들은 이야기입니다. 응당 맞는 이야기이고, 엄청나게 맞을 소리만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로지 유권자 원망만 하려고 그랬던 건 아닙니다. 기대했던 투표율이 오르지 않은 실망감과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기대만큼 유권자들이 선전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더 컸던 게 사실입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원하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매번 선거만 하면 내가 할 도리를 다하는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권리를 찾지 않더라도 보호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누리꾼은 블로그에 투표 당위성에 대해 감성적인 표현으로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언급합니다. "민주주의란 서로 대화와 화해 그리고 나눔을 통해 서로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민주주의가 응당 이러한 것이라면 민주주의 꽃인 선거는 바로 주권을 회복하는 결과물이겠죠.

 

기득권 정치에 줄 서는 나쁜 투표, 이젠 하지 맙시다

 

선거가 끝난 후 저마다 결과 분석으로 한동안 술자리가 계속됩니다.

 

"아니, 이렇게 낙후된 지역에서 어떻게 저런 부자 양반이 또 당선될 수가 있지?", "뭐, 다 그놈이 그놈이지. 우리가 뽑아 준다고 뭐 달라지겠어. 그냥 되는 놈 밀어주는 거지?"

 

선거철만 되면 각 후보는 유권자의 환심을 잡기 위해 별의별 수단과 홍보 전략을 총동원합니다. 평소에는 지역 근처에도 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표독에 눈이 멀어 국민 세금으로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는 셈이지요. 하지만 매번 이런 정치놀음에 한탄하는 유권자도 정치인의 행태에 똑같이 속아 놀아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지역 언론사의 칼럼니스트는 이를 빗대 유권자들에게 제발 중심을 잡으라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는 최근 모 정당의 학위논문 표절 논란과 성추행 논란 후보의 국회의원 당선과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겠지요. 정책공약은 둘째 치고 '부정부패도 나 몰라라, 도덕성도 나 몰라라'하며 오직 기득권 정당과 지역감정에 편향돼 투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의 패착에 경종을 울리고자 함이 아닐는지요.

 

"일부 속물 정치인의 부정부패 그리고 자신의 부를 위한 '나눠 먹기 식'의 서슴없는 행각을 유권자들은 종종 본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집단 기회주의적인 욕심에 이끌려 유권자들은 중심을 잃고 그들 앞에 줄을 선다. 이런 투표를 하는 모습이 그저 서글프기만 하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정치행태는 점점 다양화될 것입니다. 최근 국민생각정치, 복수정치, 종교정치, 시민정치, 환경정치니 하는 말들이 이런 흐름을 입증해주지요. 하지만 이런 신선한 정치 반향에도 정작 대한민국 정치시스템은 80년대를 벗어나지 못해 유권자들의 선택권마저 건강성을 잃게 합니다.

 

유권자 선택의 건강성은 즉, 지역감정에 안주하지 않으며 여야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후보자의 진정성, 성실성, 인간성, 도덕성 등을 유권자 스스로 충분히 검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과 상식, 원칙을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행하는 투표는 결국 유권자가 속해 있는 지역을 병들게 하고 나라를 부패하게 하는 악습입니다.

 

합리적인 투표가 비합리 정치를 낳습니다

 

"선거 때마다 합리적인 투표를 하자는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라는 말이죠. 그래서 부자들은 감세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에, 또 가난한 사람들은 복지를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인 유권자의 자세라고 권장합니다."

 

어느 평론가가 블로그에 올린 '합리적 유권자에 대한 단상' 초반 부문입니다. 이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일명 계급정치와 대변정치, 이익정치라는 합리적 투표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일갈합니다. 그러며 강남과 일부 지역에 계속 일고 있는 몰표 현상에 놀라지 말라고 충언합니다.

 

이유인즉슨 보편타당한 합리적 투표에서 보면 그들만큼 선거를 잘 애용하고 적극 표명하는 집단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예를 들어 강남에 사는 부자 계층들이 진보당에 표를 주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는 이성의 정치 논리에서 비추어보면 합리적 선택(투표)이란 만병통치약이며 마술봉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일컫습니다.

 

한편으로 평론가는 이런 합리 속에 감쳐진 '포장된 이중성'을 잘 보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이유는 본래 사람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데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집단의 군중심리가 마치 합리적 선택이 절대 진리인양 가르치고 있다는 속설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근원적 가치인 감성과 양심을 배제한 합리는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을 이끌 수밖에 없다는 추론인 것입니다.

 

"합리란 자신의 호불호나 유·불리에 따른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합리적인 선택은 내게 이익을 보장하거나 적어도 손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때로 마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이 상충할 때도 내 이익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니까요."

 

결국 평론가가 언급한 합리는 저속한 개인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설명입니다. 한때 유행어였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사고방식이 집단 에고의식을 키워 진리처럼 추앙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죠. 평론가는 그러며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합리와 달리 양심이란 그야말로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선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나의 이익보다 공의를 추구하는 양심에 따른 선택(투표)은 때로 자신에게 실질적인 피해로 돌아올지라도 마음만은 어떤 경우에도 떳떳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선택을 구태여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당성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선택이 비합리적인 사회를 양산하는 세상. 아마도 우리는 현재의 사회를 정립하기까지 이런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합리를 강요당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요된 합리가 악재를 낳고, 또 그 악재가 후대에게까지 되물림 되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왔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이제 그 악재의 폐단을 끊어야 할 때입니다.

 

스스로에게 정당하고 불편하지 않을 선택, 불쌍한 사람은 도와주고 나약한 사람은 보호해주는 선택, 이런 양심의 선택으로 탄생한 권력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많은 이익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곧 현명한 유권자의 선택이자 투표의 참된 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태그:#411총선, #유권자의 선택, #합리적 투표, #양심적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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