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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서 음주단속을 하는 것을 보고 피해 도망가는 사람을 경찰이 추격 끝에 붙잡았는데 본인은 음주운전하지 않았고 다른 도망간 사람이 운전했다고 주장했다. 억울했던 이 사람은 현장에서 경찰관에게 도망간 사람과의 전화통화를 연결시켜 줬고, 도망간 사람은 자신이 운전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애초 추적해 붙잡은 사람을 무면허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했고, 사건은 1심과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이 사람은 징역 6월의 유죄가 확정돼 옥살이를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도망갔으나 경찰과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운전했다"고 인정한 승용차 소유자와 동승자가, 경찰에 붙잡혀 무면허 음주운전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사람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서도 "내가 운전했다"며 일관되게 증언했다.

그러자 검찰은 이들을 '위증'으로 기소하고 1심과 항소심은 유죄 판결을 내려 자신이 운전했다고 증언한 차량소유자는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경찰의 사실 판단을 신뢰하고 특히 앞서 무면허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게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위증' 사건을 맡은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사건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동호회에서 만나 알게 된 N(50)씨, J(50)씨, H(여,50)씨는 2008년 2월6일 J씨의 사무실에서 술을 마시고, 오후 10시경 함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전방에서 경찰의 음주단속을 보고 승용차에서 내려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도망갔다.

음주단속을 하던 경찰관들은 전방 120m가 넘는 앞에서 이들이 하는 행동이 음주단속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해 뒤쫓아 결국 주택가 골목에서 J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J씨가 운전석에서 내려 도주한 것으로 판단해 음주측정을 실시했는데, J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91%로 나왔다. 운전면허까지 없었던 J씨는 도로교통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당시 단속된 J씨는 자신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고, N씨가 운전했다고 하면서 N씨에게 통화를 시도했고, N씨는 전화가 연결된 경찰관에게 자신이 운전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단속현장에 오지는 않았다.

이후 N씨는 수사기관에 출석한 이래 그리고 J씨의 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 음주운전) 혐의 형사재판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자신이 운전했다고 증언했고, H씨 역시 증인으로 출석해 N씨가 운전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J씨는 대법원까지 간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검찰은 N씨와 H씨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고, 1심인 대전지법은 2010년 11월 유죄로 인정해 N씨에게 징역 8월을, H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이에 N씨와 H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사실대로 증언했을 뿐 허위 진술을 한 사실이 없다"며 항소했으나, 대전지법 제3형사부는 지난 8월 이들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형량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J씨가 단속된 후 자신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고 N씨가 운전했다고 하면서 N씨에게 통화를 했으나 N씨가 단속현장에 오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집으로 갔던 점, 만약 N씨가 운전을 했다면 J씨가 도망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들은 N씨가 당시 승용차를 운전한 사실이 없음에도 운전한 사실이 있다는 취지로 증언해 허위의 진술로 위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다른 형사사건 확정판결의 사실판단 그대로 채용 어려우면 배척"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무면허 음주운전 혐의로 유죄를 확정 받은 J씨의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승용차를 운전했다고 증언해 위증 혐의로 기소된 N(50)씨와 H씨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형사재판에 있어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또 형사재판에 있어서 이와 관련된 다른 형사사건 등의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는 것이나, 당해 형사재판에서 제출된 다른 증거내용에 비춰 관련 형사사건의 확정판결에서의 사실판단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이를 배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당시가 야간이고 옷차림이 두꺼운 겨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속경찰이) 아무리 시력이 좋더라도 120m가 넘는 전방에 정차한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성별이나 체격, 옷차림을 육안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관들은 2명, 운전석에서 J씨가 내리고 조수석에서 H씨가 내렸다고 주장하나, 피고인들의 변소와 기록에 나타난 사건 당일 피고인들 및 J씨의 통화내역상 기지국의 위치가 이들 모두 함께 이동한 것으로 확인된 점으로 봐 단속 장소까지 이들 3명이 승용차에 함께 타고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 사건 승용차는 N씨 소유로서 피고인들과 J씨 모두 동승해 있었다면 차주인 N씨가 자동차운전면허도 없고 음주상태인 J씨에게 운전하게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인데다가, J씨는 체포 직후 N씨가 운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주취운전자적발보고서에도 날인을 거부했고, N씨는 사건 당일 경찰관과 통화하면서 J씨가 아니라 자신이 운전했음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N씨는 수사기관에 출석한 이래로 원심에 이르기까지 일관해 자신이 운전한 것이 맞고 J씨가 운전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실제로 승용차를 운전한 사람이 N씨가 아니라 J씨라면, 위와 같은 체포 경위 등에 비춰 J씨와 N씨가 '운전자 바꿔치기'를 모의할 시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이에 불과한 N씨가 J씨를 위해 사실과 다르게 자신이 운전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N씨는 사건 당일 밤 '음주운전을 했는데 경찰이 단속하기에 도망을 갔다'며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관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이미 J씨가 체포돼 있는 것을 알고 있는 N씨의 입장에서 자신이 운전한 사실이 없다면 조언을 구할 이유가 없다"며 "이는 N씨가 승용차를 운전했다고 볼만한 사정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런 여러 가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J씨에 대한 무면허 음주운전 형사사건의 확정판결에서의 사실판단을 N씨의 위증사건에 그대로 채용하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인들의 유죄를 인정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조치는 증거의 가치판단을 그르친 나머지 논리와 경험칙에 위배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음주단속, #음주운전, #위증, #형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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