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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초·중·고등학교의 주5일 수업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면 시행'에서 '자율 시행'으로 지침을 바꿔 학교 현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주5일 수업제가 여건이 준비된 학교부터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교육감이 승인하는 '전면적 자율도입 체제'로 결론이 난 탓이다.

지난 10월 25일, 정부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주5일 수업제의 시행에 따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5조를 아래와 같이 일부 개정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5조(수업일수)
①법 제24조 제3항에 따른 학교의 수업일수는 다음 각 호의 기준에 따라 학교의 장이 정한다. (중략)
1.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고등기술학교 및 특수학교(유치부를 제외한다)
가.주5일 수업을 실시하지 아니하는 경우: 매 학년 220일 이상
나.주5일 수업을 월 2회 실시하는 경우: 매 학년 205일 이상
다.주5일 수업을 전면 실시하는 경우: 매 학년 190일 이상
②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및 특수학교의 장은 제1항 제1호 나목 또는 다목의 기준에 따라 주 5일 수업을 실시하는 경우에 수업일수를 정하려면 법 제31조제1항에 따른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 또는 자문을 거쳐야 한다.(중략)

문제는 상당수 학교들이 주5일 수업제 전면 실시를 없던 일로 하고, 현행처럼 토요 격주 수업(위 시행령 '나'안)을 고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율형 사립고와 사립 고등학교들 대부분이 '학력 저하 우려'와 '사교육 수요 차단' 등의 명분을 내세워 현행 시스템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지역지부의 조사 결과, 광주·대전 등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각 시도교육청은 11월 말까지 학교별로 주5일 수업제 계획안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위 시행령상의 '가' '나' '다' 3개의 안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고, 만약 '다'안(전면 실시)을 선택할 경우 <2012학년도 주5일 수업제 운영 계획서>를 내도록 했다. 이 계획서에는 ▲교육과정 운영계획 ▲저소득층 및 맞벌이 자녀 지원 프로그램 ▲학교 특색 프로그램 ▲토요일 시설 개방 계획 등을 작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5일 수업제가 학교별로 다르다고요?

이처럼 주5일 수업제가 시도교육감 승인사항이 되다 보니, 시도교육청별로 큰 혼란에 빠졌다. 교육청 입장에서는 학교 구성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학교장 자율'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학교별로 주5일 수업제를 자율 선택하도록 할 경우, 자립형 사립고, 사립고등학교, 그리고 공립 학교간의 차이가 생겨 정책적 혼선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러한 혼선이 제대로 교통정리가 안 될 때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셋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주5일 수업제를 전면 실시하고, 중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는 현행처럼 격주로 토요일에 등교하며,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아이는 노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 따로국밥이 따로 없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소릴 들을 수 있는지….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최악의 사태는 피한다 할지라도 주5일 수업제 전면 도입 여부를 둘러싼 학교 내 갈등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학생 및 학부모가 겪게 될 혼란과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 모든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교육 당국에 있다. 교육 당국은 "삶의 질 향상에 따른 국가·사회적 변화 요구에 부응하고, 미래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력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때문에 주5일 수업제를 전면 도입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막상 시행을 앞두고 맞벌이 부부 자녀 토요일 보육문제 등 예상되는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이제는 시도교육감이나 학교장의 자율 판단으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심한 작태가 또 어디에 있는가. 주5일 수업제가 학교별로 취사선택할 사안인가?

주5일 수업제는 더 이상 미루거나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수업시수 감축이 없는 주5일 수업제는 허상이다. 연간 총 수업시수는 그대로 둔 채 수업일수만 줄여 놓을 경우,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토요휴업일 수업을 평일에 당겨서 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보면 모든 평일에 7교시가 생겨난다. 방학도 10여 일 줄어든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주5일 수업제 전면 실시 이전과 이후 수업 부담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히려 아이들 삶의 질은 더욱 악화한다. 학력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교육기관이 아이들을 그냥 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는 토요일에도 아이들은 강제로 등교해 자습하거나 보충 수업을 받아야 할 것이다.

주5일 수업제, 졸속이 아닌 큰틀에서 다시 고민해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실시한 주5일 수업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주5일 수업제 시행시 고려할 사항으로 학부모 42.7%, 교사 70.1%가 '교육과정 기준의 학습량 조정'을 꼽았다. 또한 지난 7월 실시한 대전광역시교육청의 학부모 모니터링단 대상 설문조사에서 주5일 수업제의 시행에 대해 80.8%의 응답자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토요휴업일에 운영을 희망하는 프로그램으로 가족단위 여가 활동(31.2%)과 개인별 자유활동(24.1%)을 가장 선호했다. 자녀를 등교시켜 억지로라도 공부를 시켜달라고 원하는 학부모는 생각처럼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학부모들의 인식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제발 '토요휴업은 무슨? 공부하기에도 모자란 판에'라는 생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부모는 단지 '아이를 낳은 죄'로 자식이 서른이 돼도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가? 학교는 단지 '아이들 때문에 먹고 산다는 죄'로 아이들 급식이며 토요일 여가 생활이며,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무한으로 책임져야 하는가?

교과부와 정부는 주5일 수업제 '전면적 자율체제 도입'이라는 해괴망측한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땜질 처방식 임기응변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 실현 차원에서 주5일 수업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신정섭 기자는 현재 전교조대전지부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주5일수업제, #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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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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