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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20대들에게 미안하다. 홍대 총학생회장도 그렇고 태어나서부터 오로지 경쟁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다. 저는 어릴 때 뛰어놀았다. 고무줄뛰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하고. 지금 아이들에게는 그런 게 없다. 노는 것도 학원 가서 논다. 어려서부터 가치체계 자체가 경쟁 이외에 없다. 그런 틀 만든 게 기성세대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살아야 할 세상이다. 여러분들이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주체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한다."

'홍익대 사태' 당시 홍익대 총학생회장에게 "네가 받고 있는 지금의 비난과 책임은 너의 몫이 아니다"라며 "밥 한 번 먹자"고 장문의 편지를 썼던 '날라리 외부세력' 김여진씨가 지난 9일 '청년유니온' 1주년 기념 특강의 강사로 나섰다. 홍대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이날 특강의 제목은 당시 썼던 편지 제목과 동일한 '너에게'. 청년유니온은 청년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3월 결성된 노동조합이다.  

"부당함에 저항하되 구조적 문제가 스스로에게 변명 되면 안 돼"

지난 2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서 열린 '홍대 분회 집단 해고 철회와 1만인 선언 결의 대회'에 참석한 배우 김여진이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
 지난 2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서 열린 '홍대 분회 집단 해고 철회와 1만인 선언 결의 대회'에 참석한 배우 김여진이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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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집회에 나갔다가 '맞아 죽은' 동갑내기 남학생(강경대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이후 '운동'만 했던 대학 시절. "너무 힘들어" 운동을 그만두고 우연히 한 연극을 보게 된 후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빠져" '연극'만 했던 20대 중반.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데뷔해 칭찬도 많이 받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안 떠서" 괴로워했던 20대 후반~30대 중반. 그리고 인도적 구호활동과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에 그야말로 "꽂혀 있는" 지금까지.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이날 강연에서는 김여진씨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고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는 한 청년의 질문에 배우 김여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연봉 100만 원이면 착취 아니냐. 맞다. 말도 안 된다."

앞서 김씨는 연극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연봉 100만 원을 받으며 지하철 탈 돈이 없어서 대학로에서 신촌까지 걸어 다니고, 밥도 못 먹을 때도 있었지만 행복했다. 힘들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이걸(연극을) 못하는 게 괴롭지"라고 말한 바 있다.

김씨는 "많은 청년들이 '꿈을 위해서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 가난이라는 것도 수준이 있는 건데'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먼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갈 수밖에 없고 안전망도 없다. 단호하게 저항해야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을, 그리고 후손을 위해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저는 그 운동이 발랄하고 창의적인 방법이었으면 좋겠다."

김씨는 이어 "부당함에 저항하되 그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스스로에게 변명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난 너무 불행해', '내 불행은 세상의 탓이야'라고 했을 때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고민을 한다. 글을 쓸 것인가. 사회가 말하는 안정된 직업을 살 것인가. 그런데 우리나라에 안정된 직업? 8%밖에 안 된단다. 요즘에는 그 어떤 직업을 택하더라도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내가 고흐처럼 천재라고 하자. 천재가 다른 게 아니라 그 일 아니면 안 되는 거. 죽는 거. 여기에는 선택이고 뭐고가 없다.

문제는 어중간할 때. 그럴 땐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선택했을 때는 다른 건 깨끗하게 포기해야 한다. 저 역시 그랬다. 연극을 하겠다고 선택했을 때 가난하기로 한 거다. 그거 나쁘지 않다. 죽기밖에 더하겠나. 어차피 죽는데,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는 게 낫지 않나."

김씨는 다른 방법도 제시했다.

"또 하나는 안정된 직장을 갖는 거다. 먹고사는 거 하면서 하루에 한 시간만 하고 싶은 걸 해라. 이건 두 가지 중에 하나 선택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다. 대신 하루도 안 빠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될 수 있다. 매일매일 해라. 그러면 도가 튼다. 자기만의 뭔가가 생긴다. 대가는 못될지 몰라도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김씨는 "가장 나쁜 건 세상 탓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고민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이라며 "만약에 재능이 없다고 해도 좋아하는 것 이상의 재능은 없기 때문에 일단 해 보라"고 조언했다. 

"마구잡이로 의견 내고 마구잡이로 막 하는 날라리들이 좋다"

해고된 홍익대 청소·경비 비정규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영화배우 김여진씨와 '날라리 외부세력'이 주최한 '우당탕탕 바자회'가 1월 22일 오후 홍익대앞 놀이터에서 열렸다.
 해고된 홍익대 청소·경비 비정규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영화배우 김여진씨와 '날라리 외부세력'이 주최한 '우당탕탕 바자회'가 1월 22일 오후 홍익대앞 놀이터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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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시간에는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장자연 사건'을 묻는 질문도 나왔다. 김여진씨는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같은 연예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로 충격 받았다"고 운을 뗐다.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 문제가 뭔가를 덮기 위해서다, 편지가 조작된 거다, 이걸 왜 지금 SBS가 밝히나 등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수사가 끝까지 가야 하고, 이런 것들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 사건의 전말이 다 드러나야 한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에 이런 종류의 사건, 부당함을 거부하고 용인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저는 이 사건이 말초적인 관심사로 부각됐다가 금세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청소노동자'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처음 (강경대 열사) 추모 집회를 찾아가고, 처음 연극 공연장을 혼자 찾아갔던 것처럼 홍대도 혼자 아무 생각 없이 털래털래 찾아갔다"는 김씨는 이후 자신의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특히 트위터를 통해 만난 '날라리 외부세력'을 이야기할 때 김씨의 목소리는 한 톤 높아졌다.

"저도 깜짝 놀랐다. 온갖 사람들이 '나도요, 나도요'. 정말 자발적으로 모금이 되고 <조선일보>에 광고도 내고 바자회도 했다. 내일모레면 다른 청소노동자들 지지하는 광고도 한 번 더 나간다. 계속 돈을 보내 주셔서 돈이 남더라. 밴드도 만들고, 사진전도 한다. 저는 이렇게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의견을 내고 마구잡이로 막 하는 게 좋다."

"노는 거 좋아하고 연애하는 거 좋아하는 날라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씨는 이른바 '운동권'이었던 대학 시절 내내 "알게 모르게 놀면서도 '때가 어느 때인데', '세상을 바꿔야 하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날라리 외부세력'은 달랐다. "다양한 방법들로, 즐거운 방법들로, 각자가 잘하는 방법들로 응원을 했을 때" 에너지는 훨씬 더 커졌다.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를 외쳤다. '무조건 행복'이 좌우명이라는 김씨가 이렇게 말했다.

"각자 꽂히는 문제가 있다. 그걸 물고 늘어지면 되는 거다. 저는 청소노동자, 비정규직 문제에 꽂혔다."

김씨는 이어 "어제 하루 동안 연대·고대·이대에서 파업을 했는데 학교 꼴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며 "하루쯤 이 세상 모든 청소하시는 분들이 파업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태그:#김여진 , #날라리 외부세력, #홍대 청소노동자 ,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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