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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을 맞아 백화점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
 설 대목을 맞아 백화점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
ⓒ 김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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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파동은 멀리 있지 않았다. 설 먹을거리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가격은 이미 다락같이 치솟아 구매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한우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구제역 파동의 영향이 가장 큰 정육점에서 10일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설 풍경을 담았다.

다시 한 번 준비물을 점검했다. "이력서, 협력직원 계약서, 그리고 취재수첩 …."

지난 24일부터 10일 동안 체험(?)할 정육점은 경남 진주 시내에 위치한 갤러리아백화점 내 정육코너. 아르바이트 경험이 처음은 아닌데도 구제역 파동 속의 정육점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긴장됐다.

정육코너에 들어가니 담당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잠시 뒤 일을 하다 직원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고 그 긴장감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경남도 뚫렸다고 하더라."

"정말이가? 그러면 우짜노?"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한 말투는 바로 구제역의 경남지역 '침투'를 지칭한 것이었다.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제역은 그렇게 낙동강 전선을 단숨에 넘어왔고 경남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호주산 LA돼지갈비 포장을 뜯는 일을 마치고 담당자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담당자는 수입산 돼지갈비 주문이 늘어 무척 바쁘다며 그간의 상황을 전했다. 밥도 먹는둥 마는둥.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설 선물용으로 기획된 호주산 LA갈비는 첫 날 300상자 가량의 주문이 쏟아졌고 사흘이 지났을 때에는 1500상자로 늘어났다. 구제역으로 한우 대신 수입산을 찾는 고객이 그만큼 많이 늘었다는 얘기였다. 심지어 호주산 양념불고기를 40% 할인 판매하자 단 3분만에 현장에서 동이 났다. 대박!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육코너는 경남에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 24일 이후의 한우고기에 대해 발주를 전면 중단했다. 대신 또 다른 거래처인 전남 강진의 공급 물량을 늘렸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직원은 "정육점에서 일하지만 우리도 올해 제사상에는 한우를 올리기가 부담스럽다"고 푸념했다. 설 제수음식과 선물을 구매하러 온 손님들도 치솟은 가격과 구제역의 불안 심리 때문인지 한우고기 구입을 망설였다. 한 주부는 "지난해 28만 원을 주고 산 한우등심이 올해는 40만 원이 됐다"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주부는 설 선물용으로 한우고기를 사려다가 "굴비세트나 사야겠다"며 생선 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이래 저래 사람들의 발걸음도, 마음도 다 무겁다. 올해처럼 설 풍경이 축 늘어진 경우도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내일도 LA갈비 포장하러 가야 한다. 음메∼.


태그:#구제역, #갤러리아, #정육점, #한우, #경남 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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