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카이스갤러리 1층에 전시된 청바지류. 관객들은 뭐가 그리도 알고 싶은 것이 많은지 수시로 작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소영작가다
 카이스갤러리 1층에 전시된 청바지류. 관객들은 뭐가 그리도 알고 싶은 것이 많은지 수시로 작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소영작가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근작을 선보이는 최소영(1980~) 개인전이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10월 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 1층에는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도 마련했다. 그리고 영화스크린처럼 넓게 펼쳐진 2층 전시실에서 그의 최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작가는 이 갤러리 전속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청바지 작품은 작가가 부산 동의대 2학년시절인 2000년, 지도교수의 색다른 숙제주문에 응답하는 엉뚱한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시작한다. 3학년 땐 서울 인사동 블루갤러리를 둘렀다가 '블루'기획전에 참가하게 된다. 2004년과 2005년 크리스티홍콩경매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더니 2006년에는 작품이 1억9천만 원에 낙찰되어 대박을 터뜨렸다.

청바지가 예술이 될 줄이야
 
작가가 수집하고 분류한 여러 형태의 청바지와 그 부속물들
 작가가 수집하고 분류한 여러 형태의 청바지와 그 부속물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1층 전시장은 정말 의류가공 가내공장 같다. 하지만 관객들은 작가의 작업과정을 확연히 볼 수 있기에 정말 좋아한다. 정말 드물게 친밀감을 주는 친절한 전시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렇게 낡아빠진 청바지가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될지 누가 알았으랴.

그는 청바지 천 조각 하나 버리는 것이 없이 알뜰살뜰 쓴다. 소가 어느 부위도 버릴 것이 없듯이 그의 손에 들어간 청바지는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천은 물론 라벨에서부터 단추와 그 윗단과 아랫단, 옆선 고리, 지퍼 등도 각각 다 용도가 있다.

마음 편하고 자유로워야 작품 나와

'우포늪에서-달그림자' 청바지 천(denim) 91×65×6cm 2010
 '우포늪에서-달그림자' 청바지 천(denim) 91×65×6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작가마다 아이디어나 창조력이 나올 때가 다르다. 어떤 작가는 가장 즐거울 때, 어떤 작가는 가장 슬프거나 분노를 느낄 때 나온다. 그런데 최소영 작가는 마음이 편할 때 집중이 잘 된단다. 그지없이 자유롭고 편하게 느껴지는 청바지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나 보다.

청바지 조각을 영어로 '데님(denim)'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보면 이미 길들인 옷이라 몸 자국이 선명하다. 또한 유행이 뒤섞인 것들이라 그 색과 모양이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란 건 청바지의 그 다양한 색감이다. 그래서 못 그릴 게 없다. 처음엔 '우포늪' 같은 자연을 그리다 고향바다, 동네풍경, 최근엔 유럽 명소도 그린다. 

사진보고 하는 작업에도 솜씨 번뜩여

사진을 보고 그리는 과정을 작가가 그대로 보여준 작품
 사진을 보고 그리는 과정을 작가가 그대로 보여준 작품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사진을 보고 스케치한 뒤 천을 색과 모양에 따라 꼼꼼하게 붙인다. 흔히 한국인의 손재주가 세계 최고라는데 여기서도 그런 '끼'가 보인다. 사람 손이 마치 최고의 하이테크인 것 같다. 하긴 우리 조상들은 그런 솜씨로 세계 최고 수준의 청자와 백자도 만들지 않았던가.

이런 작품이 대중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것은 현대 패션의 가장 대중적 문화코드인 청바지를 쓴 데다가 젊음과 자유와 반항 정신을 상징하는 시대 정신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청바지는 그 유래가 어디든 지구촌 남녀노소 모두의 것이다. 이런 친밀감이 미술시장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더 받는 이유일 것이다.

재료의 참신성은 새로운 미의 발판
 
'런던의 벽돌집' 청바지 천(denim) 72×100×6cm 2010. '런던 밤거리' 130×130×6cm 2010(아래). 여기 두 작품은 영국에 초대받아 가 본 그곳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런던의 벽돌집' 청바지 천(denim) 72×100×6cm 2010. '런던 밤거리' 130×130×6cm 2010(아래). 여기 두 작품은 영국에 초대받아 가 본 그곳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미술에서는 발상의 독창성과 함께 재료의 참신성이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 그런 것들이 널려있는데 이를 발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미국 뉴욕에는 미술재료학교도 있다는데 이는 작가에게 미술재료가 얼마나 중요하고 창조적 작업의 관건인지를 보여준다. 

거의 폐품에 가까운 청바지로 만든 작품이 예술이 된 것은 청바지가 노동자의 작업복에서 부와 패션의 상징이 되고 권력이 된 원리와 흡사하다. 이런 현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물질에 작가의 에너지와 상상력을 불어넣어 생명으로 바꾸는 예술의 본질과도 통한다.

부산 앞바다 연상되는 청바지 그림
 
'관광도시' 청바지 천(denim) 483×185cm 2010
 '관광도시' 청바지 천(denim) 483×185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최소영 작가는 고향이 부산이다. 어려서부터 부산 앞바다의 찬연한 빛과 냄새를 맡고 살았다. 그의 청바지 작업이 부산 앞바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작가에게 직접 물었더니 수긍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무슨 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물 빠진 청바지색이란다. 그렇다면 역시 무의식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상념에 빠져 넋 놓고 그리다 삶의 거룩함 자각

'용호동에서 연작' 청바지 천(denim) 55×55×10cm 2010
 '용호동에서 연작' 청바지 천(denim) 55×55×10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용호동에서 연작' 청바지 천(denim) 55×55×10cm 2010
 '용호동에서 연작' 청바지 천(denim) 55×55×10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용호동 연작은 주로 가파른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동네를 정겹게 그렸다. 창문 여는 소리, 불 켜지는 소리, 사람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비록 청바지 작업이지만 창문마다 재밌는 표정이 있고 전체적 비례와 구도, 색상배열이 빼어나다.

이런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시간이 얼마 필요하느냐고 했더니 2개월 정도란다. 그렇게 긴 기간을 지루함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작업 중에 일어나는 상념과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로 얽힌 전선처럼 연결된 애틋한 '정'을 느꼈기 때문인가.

여기 작가가 작업 중 솔직히 털어 논 심경을 잠깐 들어보자.

"저기 저 집에 누가 살고 있을까? 혹은 저 산을 뒤덮은 집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해요. 어쩌면 세상이나 사람살이의 거룩함과 경이로움, 혹은 팍팍함과 서러움에 대한 무의식적 자각이 일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노을이 들 때까지 오래도록 풍경에 눈을 빼앗겼는데, 그러다보면 마음 속 상념에도 그 물이 함께 배곤 해요."

무한한 변주 가능성 많은 회화세계
 
'첫눈' 청바지 천(denim) 404×460cm 2008
 '첫눈' 청바지 천(denim) 404×460cm 2008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2층 전시장을 다 보고 오른쪽 코너로 들어서면 '첫눈'이 보인다. 여기서 만난 관객 중 강인규씨는 작품을 다 둘러보고 "그의 회화의 변주가능성은 확 열려있다"라는 소회를 밝힌다. 다시 말해 구상에서 추상으로 청색도 채색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인데 그러면서 구상과 추상을 결합시킨 김흥수의 '하모니즘'도 연상된단다.

그런데 2000년에 '자동차가 떠 있는 하늘'에서 그런 징조는 이미 있었다. 근작에서는 재봉틀도 쓰고 물감도 첨부한다. 어디서 소문을 듣었는지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참가한 독일 주퍼(Supper) 갤러리 클린크하르트(S. Klinkhardt) 관장도 이 작품에 '원더풀'을 연발한다.

끝으로 한마디 더하면 위 작품 '첫눈'의 근저에는 한국 전통 산수화의 냄새도 난다. 더 나아가 우리시대의 신 버전 진경산수화로 보인다. 장르와 형식을 넘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유전인자에 흐르는 사무치는 그리움의 미학도 포함되어 반갑다. 

이벤트행사 "당신의 헌 청바지가 최소영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Revive your old denim into a work of art!)"

최소영 작가의 '항구'가 그려진 데님 숄더백
 최소영 작가의 '항구'가 그려진 데님 숄더백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 프로젝트는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객에게 헌 청바지를 기부 받고, 그 보답으로 최소영 작가의 작품 '항구(PORT)'가 새겨진 데님 숄더백을 1000명에게 선착순으로 증정한다

덧붙이는 글 | 카이스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9-5 T)02-511-0668 www.caisgallery.com



태그:#최소영, #청바지그림, #데님(DENIM), #카이스갤러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