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수면 위로 급부상한 천안, 아산 통합 움직임과 관련해 지역대학 학술연구소들이 공동 논의의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 22일 오후 호서대학교 천안캠퍼스 종합정보관에서는 '시.군 통합과 지역발전'을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자치단체 자율통합 지원계획' 발표 이후 천안, 아산 두 지역간 통합 주장과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표면화된 가운데 처음 마련된 토론의 장으로 관심을 끌었다.

호서대사회과학연구소와 선문대정부간관계연구소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회의에는 지역대학과 두 도시 시의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해 자치단체 통합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의견을 밝혔다. 토론자에 따라 찬반 양론은 물론 신중론도 제기됐다.

특히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정부의 자치단체 자율통합 정책이 무늬만 자율일 뿐 지역 정서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촉박한 일정으로 강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술회의는 박종관 백석대 교수의 주제발표 뒤 토론자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토론자로는 권경득 선문대 교수, 윤주명 순천향대 교수, 김지훈 아산시민모임 사무국장, 이기원 아산시의회 의원, 나종성 호서대 교수, 이명근 천안시의회 의원, 서선하 천안YWCA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천안·아산 통합 '불가'"

'시.군 통합과 지역발전'을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 모습.
 '시.군 통합과 지역발전'을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 모습.
ⓒ 윤평호

관련사진보기


천안, 아산 통합 주장에 이기원 아산시의회 의원은 가장 강경한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이 의원은 "양 도시 통합문제를 두고 학술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건 아산 시민의 반대의사를 무시한 채 자존심을 짓밟고 양 도시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처사"라며 이날 학술회의 개최 자체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기원 의원은 "아산은 천안과 통합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며 아산시 발전상을 거론했다.

이 의원은 "아산은 인구가 매년 2만명 이상 늘고 삼성, 현대가 이미 입주해 있으며 아산신도시와 황해경제자유구역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활발히 추진중"이라며 "천안은 부채가 2700억원으로 아산시의 5배나 많은 빚을 가져 아산시와 천안시가 통합해 아산시민들이 천안의 빚잔치를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과거 두 도시간 갈등 사례도 언급했다. 이기원 의원은 2003년 정치적 힘의 논리에 의해 (고속철) 역사명칭이 강탈된 기억을 떠 올리며 "아산 시민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천안과 통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몽"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천안과 아산은 동일한 생활권도 아니고 역사 전통, 문화 습성, 주민 풍습 등도 달라 통합 이후 주민 갈등만 증폭될 것이 불보듯 훤하다"고 덧붙였다.

김지훈 아산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천안, 아산 통합 반대는 물론 현 정부의 자치단체 자율통합 추진 정책에도 강한 문제제기를 했다.

김 국장은 "자치단체 통합을 중앙정부가 밀어붙이기로 추진, 지난 10년간 지방자치의 성과를 무산시키고 있다"며 "자치단체 통합은 중앙관료와 중앙정치, 중앙언론이 집장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국장은 "지역발전의 원동력은 지역공동체"라며 "지역공동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자치단체) 통합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자치단체 통합이라는) 이 드라마의 결론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갈등만 심화되고 소모적 논쟁만 남길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 찬성 소수... 신중론 많아

토론자 가운데 천안, 아산 통합을 찬성하는 입장은 많지 않았다. 천안시의회 이명근 의원이 천안, 아산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뿐 다른 토론자들은 반대이거나 신중론을 피력했다.

이명근 천안시의회 의원은 행안부가 자치단체 통합 정책을 성급히 추진하는 점은 있지만 통합 효과를 선점하기 위해 천안, 아산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치적, 감정적 접근은 안된다. 주민 실익으로 냉철히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며 "(향후) 자치단체 통합이 이루어진 곳과 아닌 곳의 경쟁력 차이가 커 시기를 놓치면 일본의 파산 자치단체처럼 도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근 의원은 천안과 아산의 통합시 긍정적 효과가 우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천안과 아산 모두 성장 잠재력이 전국적으로 큰 도시"라며 "합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더욱 발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나종성 호서대 교수는 "자치단체 통합시 사회적 통합성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며 "현재의 자치단체 통합 정책은 중앙정부가 뒷짐진 채 애들끼리 싸움시켜 이기면 인센티브 주는 방식으로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의 입장을 '신중론'이라고 밝힌 윤주명 순천향대 교수는 "천안, 아산 통합 문제는 그동안 일종의 금기어로 편견을 갖지 않고 얘기하기는 힘든 주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기초자치단체 통합에서는 양자의 대등성이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불균형 문제가 야기돼 통합의 효과를 누림에도 대등하지 못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했다. 또한 "인접 지역까지 협력해 유리한 점이 있다면 광역행정부터 먼저 시행한 뒤 공감대가 형성되면 통합으로 가는 것이 수순"이라고 밝혔다.

서선하 천안YWCA 사무총장은 "통합 논의는 일단 가질 필요가 있다"며 "이런 논의를 통해 천안, 아산 시민들의 의식을 상승시키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득 선문대 교수는 "만약 통합해야 한다면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하고 통합이 필요 없다면 왜 필요없는지 자기 논리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천안, 아산 통합 논의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천안시의회(의장 류평위)는 과속에 가까운 속도를 내고 있다.

아산과 통합, 과속하는 천안시의회
여론조사 결과 근거로 천안, 아산 통합 건의서 접수

류평위 천안시의회 의장이 천안, 아산 통합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류평위 천안시의회 의장이 천안, 아산 통합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윤평호

관련사진보기


천안, 아산 통합 논의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천안시의회(의장 류평위)는 과속에 가까운 속도를 내고 있다.

시의회는 지난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천안시민의 77.2%가 "아산과 통합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의회는 18일부터 20일까지 충청사회조사연구소에 의뢰해 만19세 이상 천안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시민 77.2%는 아산시와 행정구역 통합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통합 반대는 13.3%로 조사됐다.

기자회견에서 류평위 의장은 "천안과 아산의 바람직한 미래 발전상을 위해 시민 여러분의 의견을 바탕으로 (중앙 정부에) 천안.아산 통합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튿날 류평위 의장은 천안, 아산 자율통합 건의서를 접수했다. 건의서는 충청남도를 경유해 행안부에 제출된다.

주민이나 의회, 단체장을 통해 9월말까지 자치단체 통합 건의가 접수되면 행안부는 10월에 통합건의지역 여론조사, 의회 의견청취 절차를 밟아 의회 차원의 통합 의결 또는 12월 초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통합여부가 행안부에서 결정되면 2010년 7월 1일 통합자치단체를 출범시킨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시의회가 통합 관련 여론조사 실시를 결정한 뒤 통합 건의서 제출까지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의회가 신중치 못한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행정 체계는 물론 지역사회 각계에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자치단체 통합과 관련해 경제적 비용의 추산, 긍.부정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없이 단순히 여론조사 결과만을 근거로 덥석 통합 건의서를 제출했다는 것.

류평위 의장은 "필요하다면 의회 차원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며 시민단체와도 연계해 지속적으로 (천안.아산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가 10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위가 구성되더라도 얼마나 성과있는 운영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천안, 아산 통합 추진이 두 도시의 갈등만 심화시키고 완결되지 못할 때 통합 건의서를 제출한 천안시의회는 '정치적 책임'이라는 역풍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44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아산통합, #천안시의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