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다리 헌책방 골목과 수십년을 함께한 터줏대감 책방입니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과 수십년을 함께한 터줏대감 책방입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인천시 동구에 있는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배다리라는 명칭만으로도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거기에다 헌책방과 골목이라는 오래되고 정겨운 이름들까지 합세를 하니 안가보고는 못배기게 하는 동네네요.

배다리란 말은 우리나라 근대 시기인 19세기말 만조 때면 이 동네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는데 물이 찼을 때 건너 가거나 배를 댈 수 있도록 여러 배들을 맞대어 띄운 다리가 있었다 하여 배다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배다리의 시작은 1904년 러.일 전쟁 이후 인천 항에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쫓겨난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마을을 만들면서부터라고 하네요. 일제 억압으로 더 이상 밀려날 곳조차 없이 맨손으로 터전을 일구었던 식민지 주민들의 삶이 어린 곳으로 인천시 동구 창영동 인근 동네가 그곳입니다.

인천의 다른 동네처럼 이 곳에도 우리 근대사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처럼 도시 개발 및 넓은 차길과 산업도로를 만들기 위해 동네 존재가 위협받고 있지요.  이에 뜻있는 지역 주민들은 근대 역사를 품은 이 동네를 박물관화하자는 <에코 뮤지엄 (Eco Museum)> 운동을 펼쳐 배다리 동네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그런 뜻으로 기획하여 올해 2회째 열린 '배다리 문화축전'은 배다리를 인천의 문화적 모태라고 칭하며 매년 5월초에 열립니다. 서울의 낙산, 통영의 동피랑 마을처럼 골목 담장에 벽화를 그리기도 하고 배다리 동네에 있는 문화,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작은 공연과 영화상영, 전시회 등 문화 축제를 벌이기도 하면서 배다리를 지키고 문화 특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헌책방이지만 책방의 이름도 낭만적이고 좋은 책들도 많네요.
 헌책방이지만 책방의 이름도 낭만적이고 좋은 책들도 많네요.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시 낭송회를 하는 예쁜 책방도 있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시 낭송회를 하는 예쁜 책방도 있답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인천의 문화적인 모태 배다리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가려면 1호선 전철을 타고 거의 종점인 동인천역(4번 출구)에서 내리면 됩니다. 도시 전철역은 큰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와 연결되는게 보통인데 동인천역은 재래시장인 중앙시장과 이어지네요. 한복, 이불, 그릇가게들이 양편으로 즐비한 시장통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그 이름처럼 규모도 크고 위치도 좋은 걸 보니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을 시장이었겠습니다. 요즘은 유동인구가 줄다보니 시장이 썰렁하다는데 경기도 안양역 중앙시장처럼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시장골목을 걷다가 가게 아무 상인분에게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물어보면 바로 알려 주시네요. 중앙시장에서 길 하나 건너면 헌책방 골목이 조용하게 나타납니다. 여기도 예전에는 서울 동대문처럼 헌책방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는데 지금은 몇 군데 없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남아 있어 명맥을 유지하는 책방들이 무슨 독립운동가인양 당당합니다.

강산이 두세번 변하도록 헌책방을 이어온 배다리 골목 터줏대감 아벨 서점부터 옛 인천양조장이었다고 써있는 스페이스 빔이라는 수수한 문화예술공간까지... 어릴 적 인천에서 학교를 다닌 분이라면 여러가지 추억과 감흥이 생길 것 같은 동네 풍경입니다.
 
헌책방 골목이라고 하면 뭔가 허름하고 칙칙할 것 같지만 배다리 골목을 살리려는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 노력으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아벨서점만 해도 그렇습니다. 겉은 헌책방이라고 써있지만 안에 들어가보니 짐자전거에 책을 한가득 싣고 다니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여주인이 꼼꼼하고 깔끔하게 책들을 분야별로 잘 정리했꼬 내부도 새책방처럼 깨끗하네요.

배다리 동네를 살리려는 노력은 가게 이름들에도 나와 있습니다. '마을로 가는 책집' '시 낭송회를 하는 2층 다락방' '마을 카페' '개코 막걸리' 등. 시 낭송회를 한다는 2층 다락방에 올라가 보니 클래식 음악이 흐릅니다. 정말 아담하고 조용해서 나무 의자에 앉아 전시된 시집을 읽으며 한참 있다가 내려 왔네요. 이곳에서는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낮 2시에 시 낭송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오래된 책집'이라는 가게는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보니 입구에 '주인장은 잠시 외출중이니 쉬다 가세요'라고 메모가 붙어 있더라구요. 파는 책중에 최종규 시민기자의 책과 사진집도 보여 반가운 마음에 조그만 걸상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재활용과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은 젋은 주인장은 가진 책들과 함께 지난 8월에 이 책 가게를 열었다고 합니다.   

배다리에는 요즘 유행하는 북카페도 있는데 책보라고 만들어 놓은 독서대가 재미있고 기발하네요.
 배다리에는 요즘 유행하는 북카페도 있는데 책보라고 만들어 놓은 독서대가 재미있고 기발하네요.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배다리를 지키려는 문화공간과 벽화가 맘에 다가옵니다.
 배다리를 지키려는 문화공간과 벽화가 맘에 다가옵니다.
ⓒ NHN

관련사진보기


정성껏 만든 사람냄새 나는 표지판 하나가 평범한 동네를 다시 둘러보게 합니다.
 정성껏 만든 사람냄새 나는 표지판 하나가 평범한 동네를 다시 둘러보게 합니다.
ⓒ NHN

관련사진보기



근대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동네

배다리 골목 이웃동네인 창영동에는 골목골목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재미있고 뜻있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고, 인천 최초 보통학교였으며 1919년 인천지역 3.1운동 진원지였다는 창영초등학교(1907년에 설립)가 있습니다. 학교 건물 앞 한 쪽에 어떤 남자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바로 이 학교 출신인 강재구 소령이라고 합니다. 교과서에도 나왔던 분으로 수류탄 투척 훈련 중 부하의 실수로 수류탄이 소대원들 한가운데 떨어지자 온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부하들 생명을 구하고 돌아가신 훌륭한 군인입니다. 

건물 벽에 "우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라고 교회 취지가 새겨져 있는, 1937년에 세워진 창영교회도 있고 유서깊은 곳이 많네요. 배다리는 기독교 감리교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동네라고 합니다. 교회 뒤쪽엔 여자 선교사들이 살았던 이국적이고 예쁜집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창영동은 다음에 또 오려고 일부러 다 안돌아 본 동네이기도 하지요.

자전거를 타고 하루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인천시 동구에는 배다리 이외에도 6, 70년대 서민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도 있고, 중앙시장을 지나면 커다란 그릇에 냉면을 퍼주는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동네도 있더군요. 

배다리를 도시의 문화특구로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이루어지고 지역 명소로도 거듭 태어나서 동네도 번창하고 옛 추억도 살아나는 배다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배다리를 가꾸는 모임 카페에 가보니 인천과 배다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vaedari



태그:#인천시 동구 , #배다리 , #헌책방 골목, #중앙시장 , #창영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