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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고향에 가지만 갈 때마다 사라지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갯벌도 사라지고, 뗏목과 통통배도 생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등에 졌던 분무기도 먼지만 자욱합니다. 하지만 장독대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썰물과 밀물의 차이가 큽니다. 남강댐에서 여름에는 한 번씩 민물이 내려옵니다. 많이 내려오면 문제이지만 적당하게 내려오는 남강물이 바닷물과 적당하게 섞이면 굴이 잘 자라게 합니다. 옛날부터 굴이 많았습니다. 돌에 붙어 자란 굴을 따러가는 어머니를 따라 자주 갔습니다.

이제는 돌에 붙은 굴이 거의 없습니다. 양식을 합니다. 굴양식을 하기 위해서는 굴껍데기가 필요합니다. 해마다 5-6월이면 굴껍데기가 산을 이룹니다. 굴껍데기를 싣는데 가장 좋은 도구는 뗏목입니다. 8월인데도 굴껍데기를 실은 뗏목이 보입니다. 그런데 둑을 쌓는 바람에 어릴 적 추억이 사라졌습니다. 어릴 적 이곳은 하연 조개껍데기와 까만 조약돌이 함께 뒹굴었던 곳입니다. 그 때는 삼천포까지 배를 타고 시장에 갔는데 어머니가 배타고 돌아올 때까지 조개껍데기와 조약돌이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렸는데 이제 뗏목만 덩그러니 남은 곳이 되었습니다.

굴껍데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뗏목이 여기저기 떠 있습니다.
 굴껍데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뗏목이 여기저기 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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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뗏목을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부서진 뗏목을 주인이 다시 찾아줄지 모릅니다. 이곳이 옛날에는 조개껍데기와 조약돌 세상이었는데 이제는 조약돌도 없습니다. 조약돌 대신 자리한 뗏목도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다 부서진 뗏목은 주인에게도 버림을 받습니다
 다 부서진 뗏목은 주인에게도 버림을 받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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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잃어가는 것은 뗏목 뿐만 아니었습니다. 통통배도 부서지고, 부서져 더 이상 고기잡이는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한 주인이 따뜻한 손길로 보살피면 다시 살아나겠지만 이제 주인도 늙어가니 배를 돌볼 힘이 없습니다. 통통배는 지난 수십년 동안 숭어와 도다리, 전어와 새우, 장어 잡이를 나선 주인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주인이 바라는 고기잡이를 위해 나서기 힘듭니다. 자신도 주인도 이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쇠락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통배도 생명을 다 되었습니다.
 통통배도 생명을 다 되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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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데기와 조약돌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뗏목과 통통배가 쇠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집에도 더 이상 주인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할 수 없게 된 분무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 녀석을 등에 지고 고추와 참깨밭에 농약을 쳤습니다.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보기보다 무겁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가득 채우고 지기에는 벅찼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이 녀석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막내 동생이 한 번씩 등에 졌지만 농약을 치기 싫어하는 동생은 이 녀석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등에 지는 분무기도 이제는 주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등에 지는 분무기도 이제는 주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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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만 보다가 장독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장독대는 어머니 집에 갈 때마다 보는 것이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아직 사라지지 않고, 주인의 사랑을 뜸뿍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옹기들 중엔 마흔 넷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녀석들도 있습니다. 우리집에서 40년 이상 살면서 된장, 간장, 고추장을 자기 몸 속에 고이 품어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40년 이상을 희생한 것입니다. 장독대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아마 살아왔던 40년보다 더 오래 우리집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몸에 담아 고이 품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장독대는 아직도 자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장독대는 아직도 자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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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볼 수 없는 하얀 조개껍데기와 까만 조약돌, 이들이 없어진 자리를 차지했던 뗏목과 통통배도 생명을 다해가고, 아버지가 등에 졌던 분무기도 제 할일을 잃어버렸습니다. 장독대가 40년 이상 살아 숨쉬는 가운데 고향은 나를 끊임없이 부르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 동네에서 풍력발전기 한 대가 힘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동네 들머리에서 본 풍력발전기
 동네 들머리에서 본 풍력발전기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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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저곳은 몇 년 전 갯벌을 매립해 조선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갯벌이 사라진 곳에 풍력발전기 한 대가 소리 내면서 돌아가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고향에는 아직 장독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숨쉬는 장독대가 말입니다.


태그:#뗏목, #통통배, #장독대, #분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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