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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8월1일)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도봉산을 올랐다. 장마기간 동안 쏟아진 집중호우 때문에 뜸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전철 도봉산역에서 내리자 등산객들이 와글와글하다. 주말이어서 전철역에서 도봉산 입구까지는 그야말로 도심의 시장골목같이 사람들로 붐볐다.

 

등산로 입구 갈림길에서 왼편 보문능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쪽이 비교적 등산객들이 적은 곳이기 때문이다. 도봉사 앞을 지나 약수터에서 잠깐 쉬며 땀을 식히고 보문능선 줄기로 올라섰다. 그러나 산길은 기대했던 것만큼 조용하지 못했다. 다른 등산로보다는 덜 붐볐지만 그래도 등산객들이 많은 편이었다.

 

"어이쿠 더워! 좀 쉬었다 가지,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날씨구먼, 온몸이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야."

 

일행들은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구름이 낀 날씨여서 햇볕은 그리 따갑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비지땀을 흘리게 하고 있었다.

 

모처럼 무더위 속에 오른 도봉산 등산길에서 비지땀을 흘리다

 

보문능선 이곳저곳에는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걷는 사람들보다 쉬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 같았다. 모두들 바람이 불지 않는 무더운 날씨에 산길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씨가 이렇게 무더워서야 어디 더 올라가겠어? 그만 이쪽으로 내려가는 게 어때?"

 

우이암 쪽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과 오른편 골짜기길, 그리고 왼편 골짜기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일행 한 사람이 제안을 한다. 오랜만의 산행이 몹시 힘들고 부담스러운 표정이었다.

 

"여기서 그냥 내려가는 것은 좀 그렇군, 모처럼의 등산인데 정상까지는 못 올라가더라도 저 우이암 능선까지는 올라가야지, 그곳에서 오른편 능선으로 해서 내려가도록 하지?"

 

이날 산행 리더를 맡은 일행이 우이암 근처 능선까지 올랐다가 내려가자고 한다.

 

모두들 그를 앞세우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부터는 대부분 바위절벽 길이다. 암벽 입구에는 '위험한 등산로이니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래도 일행은 그 암벽을 고집하며 오른다. 모두들 그의 뒤를 따랐다.

 

길은 예상했던 것처럼 결코 만만치 않았다. 마지막 암벽은 10여 미터 높이의 70~80도 경사로 상당히 위험한 길이었다. 일행들은 그래도 바위 모서리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절벽을 기어올랐다. 그렇게 모두들 어려운 코스를 통과하여 우이암 능선에 오르니 하늘이 깜깜하다.

 

산길에서 갑자기 만난 소나기를 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

 

도봉산 정상 주변은 검은 구름에 휩싸인 모습이었고 하늘에서는 우르릉 꽝꽝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금방 소나기라도 한 바탕 퍼부으려는 듯한 심상치 않은 날씨였다. 소나기 쏟아지며 천둥 번개가 치는 상황에서 날카로운 바위 능선길을 걷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등산 자세가 아닐 것이다.

 

"자! 안되겠어. 서둘러 저 아래 능선길로 내려가야지."

 

일행 한 사람이 앞장을 선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었다. 모두들 그를 따라 나무 계단길을 부지런히 걸어 아래 능선길로 내려섰다. 그런데 그때부터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배낭에서 비옷을 꺼내 입고 곧바로 골짜기 하산길로 나섰다. 바위 능선길은 아무래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천동 번개도 위험했지만 더 위험한 것은 비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워 넘어지거나 추락할 위험이 더 컸기 때문이다.

 

골짜기 하산길로 나서자 다른 등산객들도 대부분 뒤를 따른다. 반대편 포대능선을 거쳐 선인봉과 만장봉 정상부근에서 우이암으로 향하던 등산객들도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하산길로 나선 것이다.

 

조금 내려오자 등산객 한 사람이 바위 밑에 홀로서서 비를 피하고 있다. 큰 바위 밑이 아니어서 겨우 한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그는 비가 처음 쏟아지기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 서있었는지 옷이 비에 젖지 않은 모습이었다.

 

뒤따라 내려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등산객들이 갖춰 입은 비옷들도 형형색색, 모양이며 빛깔이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비옷만 입은 것이 아니었다. 어떤 등산객은 작은 우산을 받쳐 들기도 했다. 또 다른 여성등산객은 비옷이나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던지 비닐 돗자리를 머리 위에 펼쳐들고 있기도 했다.

 

한 곳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등산객 두 사람이 평평한 바위 위에서 넓은 비닐 돗자리를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앉아 있다가 카메라를 꺼내들자 킥킥 웃으며 얼굴을 가린다. 골짜기는 우거진 숲속인데다 소나기 쏟아지는 흐린 날씨로 밤처럼 어두컴컴했다.

 

조금 더 내려오자 이번에는 길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제법 넓은 바위 밑에 5~6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은 정오가 지나 있었지만 우리 일행들도 아직 점심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이었다.

 

일행 한 사람이 그들에게 바위 밑 빈자리에 우리들도 들어가 점심 먹을 장소가 있느냐고 물으니 자신들도 비좁다며 들어오지 말란다. 우리일행들도 어디 적당히 비를 피하며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계속 내려갔다.

 

조금 더 내려가자 이번에는 젊은 남녀 등산객 두 사람의 정다운 모습이 눈에 잡힌다. 20대로 보이는 이들 남녀는 작은 우산 하나를 받쳐 손에 들고 그 안에 몸을 서로 바짝 붙이고 앉아 무엇인가를 나눠먹고 있었다.

 

"저 젊은 사람들은 오늘의 이 소나기가 결코 불편한 것이 아닌 것 같군."

"불편한 게 아니라 절호의 찬스인 것 같은데."

 

나이든 일행들이어서 젊은 커플의 다정한 우산 속 풍경이 오히려 부러운가 보았다. 조금 더 내려가자 남녀 10여명이 함께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정말 제각각이다. 우산, 비옷, 돗자리는 물론 아예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흠뻑 맞으며 걷는 모습이 시원해 보이기까지 했다.

 

"안 되겠어,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잠깐 퍼붓다가 지나가는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봐?"

 

시간은 어느새 오후 1시가 지나 있었다. 일행 한 사람이 잠깐 쉬자며 멈춰선 후 배낭에서 널따란 비닐 깔개를 꺼낸다. 그리고 그 깔개를 나무와 나무 사이에 펼쳐 비가림천을 만들었다. 그런데 처음 만들 때는 어설프고 엉성해보였지만 완성해놓고 보니 제법  쓸 만했다. 모두들 비가림천 밑으로 들어가 도시락을 꺼내 놓았다. 그 때였다.

 

불청객들과 함께한 어설픈 비가림천 밑의 멋진 점심

 

"저희들도 아직 점심을 못 먹었는데 그 안에 좀 끼워주시면 안될까요?"

 

40대 후반 즘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등산객들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은 작은 우산, 또 한 사람은 비옷을 입고 있었다. 일행들은 잠깐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거절 할 수도 없었다.

 

그녀들이 비가림천 밑으로 들어오자 상당히 비좁다. 일행들은 자리를 넓히기 위해 조금씩 물러앉았다. 그러자 등줄기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할 수 없이 벗었던 비옷을 다시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심은 풍성해졌다.

 

그녀들이 펼쳐놓은 점심 도시락이 우리들의 그것보다 훨씬 풍성하고 좋았기 때문이었다. 도시락반찬과 술안주로 돼지족발 요리와 두루치기 요리, 그리고 각종 산나물 등 그야말로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소나기 쏟아지는 도봉산 산길 옆에 작은 비닐깔개를 펼쳐 만든 비가림천 밑은 풍성한 음식이 먹음직스러운 오찬장이 되었다. 일행들이 가져온 몇 종류의 토속 가정주와 그녀들이 가져온 술까지 곁들인 점심이었다.

 

"오늘 두 분 아주머니들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빗속의 멋진 오찬이 되었네요."

 

일행 한 사람이 두 여성등산객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처음엔 불편한 불청객들이 오히려 고마운 사람들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머리 위 비가림천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정겨웠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니 비가 거의 그치고 있었다. 빗줄기가 매우 약해져 있어서 비옷이나 우산을 쓰지 않고 그냥 걸어 내려갈 수 있었다. 우리들이 점심 먹은 자리 근처에서는 나이 들어 보이는 노부부가 챙 넓은 모자 아래 비옷을 입은 채 나란히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골짜기를 조금 더 내려오자 물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많아 시끌벅적하다. 그들도 산에 올랐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쫓겨 내려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 사이 비는 완전히 그치고 비대신 햇볕이 쨍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에 발을 담그자 시원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한 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도봉산 골짜기는 짙푸른 숲과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싱그러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골짜기에 드리운 죽은 나뭇가지 하나가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잿빛으로 말랐던 나뭇가지가 장마철을 지나는 동안 높은 습도 때문이었는지 나뭇가지가 온통 푸른 이끼로 감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나뭇가지에 새로 돋아난 또 다른 생명체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봉산, #소나기, #우이암, #비옷,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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