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렁이를 통째로 꿀꺽한 무당개구리의 왕성한 식욕
 지렁이를 통째로 꿀꺽한 무당개구리의 왕성한 식욕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푸른 봄비가 지나간 자리, 개구리 울음소리 요란해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모를 심으려 물고를 틀어대자 푸석하던 고래실논에 하얀 물살이 가득 차올라 찰랑거립니다. 밤만 되면 온 세상 개구리들이 논배미로 모여들어 풍선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개구리들은 꽈리풍선을 한꺼번에 터트리며 들판을 일으켜 세웁니다.

순식간에 가는 봄을 돌려 앉히고 여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 시작합니다. 수백 마리가 쏟아내는 장렬한 합창 소리는 자연을 녹여내는 관현악이요 합주곡이며 폭죽이 터지는 황홀한 울림입니다. 아니, 풍물장을 여는 시골 장터, 그대로의 한바탕 잔치 마당입니다. 한밤의 고독과 적막을 짓이겨놓고 와글와글 토해내는 소리는 한결같은 리듬과 박자로 전원 교향곡을 연주해 내고 있습니다.

무당개구리의 붉은 뱃살, 얼룩무늬에 에스라인이 잘 잡혀있다.
 무당개구리의 붉은 뱃살, 얼룩무늬에 에스라인이 잘 잡혀있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풍요로운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기쁨의 함성이요, 게으른 농부들에게 어서 궁둥일 털고 일어나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내라는 자연의 아우성입니다. 밤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작은 별들의 이슬방울을 가슴에 따 담으며 초여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일시에 왁자지껄하다 뚝 그치면 한밤의 고요와 적막이 논배미 가득 스며옵니다. 두레패가 놀다 잠시 숨을 고르듯 아우성과 정적을 반복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받아냅니다. 합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빈 마음에 옹달샘이 파이고 새로운 계절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이 절렁거립니다.

오늘밤에도 개구리 소리 듣습니다. 그때마다 하늘과 땅이 열리고 작은 생명들이 초저녁부터 기지개를 켜고 선하품을 하며 꼼지락거립니다.

'논두렁 바르고 물구멍 막아라. 모여라, 다 모여라, 와글와글. 두레패들 모여라, 개굴개굴. 모여라. 두레패 모두 모여라. 모 모종내 모내기하러가자. 와글와글 개굴개굴.'

대장 개구리가 울다 숨을 고르면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집니다. 밤참 먹는 시간입니다. 개구리들은 초여름에도 새참 대신 밤참을 먹습니다. 물도 마시고 이슬도 받아먹다 심심하면 지렁이와 굼벵이도 잡아먹습니다.

무당개구리들의 정사,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무당개구리들의 정사,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개구리들, 특히 무당개구리들은 밤새 와글대다 한낮엔 논두렁으로 나와 짝짓기를 시작합니다. 가슴이 터지고 입이 찢어지도록 사랑을 합니다. 암놈과  수놈이 마음을 열어 사랑이 시작되면 암컷은 아예 수컷을 업고 다니며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암놈이 수놈을 업고 다니며 일을 치르자니 앞가슴이 불룩거리고 귀까지 찢어진 입에 숨이 차올라 고역이 대단하련만, 수놈은 미끌미끌한 등 위에 뒷발을 바짝 조이고 눈알을 뒤룩뒤룩 욕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소쩍새는 이른 봄부터 진달래, 앵두나무, 철쭉, 산 벚꽃들의 꽃망울을 터트리느라 목이 쉬었습니다. 지금은 산 밑 조금 떨어진 관목 사이에서 개구리 소리가 멈출 때마다 '솥-적다, 솥-적다' 풍년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개구리들의 풍류 한마당, 고적한 숲 속을 토닥이며 산을 잠재우고 있는 소쩍새 소리에 잠 못 들어 뒤척이다 오막살이 앞마당을 서성거립니다. 지금 막 양지 말 앞산을 타고 올라온 음력 사월 열엿새 훗보름달이 휘영청 밝습니다. 달빛 사이를 보듬고 오월의 여왕 모란꽃 두어 송아리 피어나 가까이 오라 손짓을 합니다. 어디선가 별똥하나 툭 떨어져 산자락을 타고 쏜살같이 몸을 숨겨버립니다.

오월의 여왕 모란 피어나 초여름을 달구고 있다. 부와 귀,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상징한다는데.
 오월의 여왕 모란 피어나 초여름을 달구고 있다. 부와 귀,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상징한다는데.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윤희경 수필방'과 농어촌공사 '알콩달콩 전원생활' 북집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전원생활을 꿈꾸고 계시다면, 지난 4월에 펴낸 <그리운 것들은 산 밑에 있다>를 선물합니다. (문의 011-9158-8658)



태그:#무당개구리, #정사, #모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