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층권을 지나 고도 100km를 넘는 순간 나타나는 암흑의 공간을 사람들은 '우주'라고 부른다. 지구와 우주를 경계 짓는 성층권에는 인간들이 각종 핵실험으로 만들어낸 낙진의 미세분자가 아직도 떠다니고 있다. 지구의 마지막 쓰레기장이다.

 

이 지점만 지나면 한없는 무아의 세계가 기다린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탄생한 발상지로서 온갖 서정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일찍이 갈릴레오가 "하늘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별이 많다"며 경외심을 가지고 관찰하던 그 우주다.

 

'우주 독침'의 출현

 

4월 5일, 북한은 우주에 자신의 호적을 올렸다. 오전 11시 40분경으로 추정되는 시점에 북한의 로켓 은하 2호는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부드럽게 솟아올라 우아한 포물선을 그린 다음 다시 지구로 곤두박질쳤다. 수천km 밖까지 감시가 가능한 DPS 위성과 해상에 배치된 X밴드 레이더, 이지스함의 SPY-1D 등 입체적으로 구비된 미국 중심의 감시 네트워크가 겹눈으로 이 과정을 추적했다. 그 결과 로켓에 탑재된 광명성 2호 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리는 일은 실패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우주능력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번에 발사된 로켓에다가 소형 핵탄두를 탑재하는 날이 온다면 언젠가는 세계를 향해 내리꽂을 수 있는 하나의 '우주 독침'이 출현한 셈이다. 이 사건이 한반도 안보정세에 끼칠 영향은 지대하다. 지난 50여 년 동안 지속된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대치상황을 무색케 하는 새로운 국면이 출현했다.

 

북한은 갈수록 심화되는 재래식 군사력의 불리함을 만회하는 치명적인 억제력을 보유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확보했다. 너절한 재래식 군사력이 아니더라도 치명적인 독침을 가진 한 마리의 전갈과 같은 북한이라는 존재의 새로움이 부각된다. 이를 통해 북한은 미사일과 핵을 보유한 우주 국가로서 자신의 위상을 한껏 높인 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 주권을 외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일의 대응체계 구축이 이어짐으로써 이제 한반도 상공에서 우주 군비경쟁은 서막을 올리게 되었다. 특히 한반도에서 조기경보체계와 미사일방어체계(MD)와 같은 천문학적 군비증강은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현상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독침을 발사 이전 단계에서 무력화하는 선제공격의 교리가 구체화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작년 초 김태영 합참의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 핵 미사일에 대한 '선제타격' 운운한 바도 있고, 지난 2월 이상희 국방장관은 서해 NLL 위협 시 북한 포를 무력화하기 위해 전투기를 동원한 북한 영토 공격까지 직접 언급한 터다. 이와 같은 위험한 공세 위주 군사교리가 더더욱 탄력을 받게 되면 한반도는 '상시 긴장'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일 하위 체계로

 

선제타격 교리가 구체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미국 중심의 MD가 과학에 대한 허구와 미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인간의 과학으로는 10m밖에서 날아오는 공을 받아낼 로봇 하나도 개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야구경기의 외야수는 절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다. 하물며 음속의 8배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쫓아가 요격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과학에 대한 맹신과 슈퍼파워 미국에 대한 숭배가 결합된 '과학적 미신'이었다. 이번에 미국과 일본이 애초 공언한 대로 북한 로켓을 요격하지 못한 내막은 그 허구를 한 껍질씩 벗겨내고 있다.

 

따라서 MD의 역할은 요격이 아닌 탐지가 그 최대치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발사 징후를 미리 알아차려 사전에 제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불가피하다. 한미가 보유한 F-15K 전투기와 스텔스기의 스마트 폭탄으로 미사일 발사 기지를 무력화한다든지, 크루즈 미사일로 파괴해 버린다든지, 여러 선제행동의 가용 대안을 총망라한 작전계획 수립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위협론이 정치적으로 확산될 경우 국방 당국은 이러한 방책을 수립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더불어 미국 중심의 MD 체계에 한국은 하위 종속국가로 전락될 가능성이다. 특히 이 점에서 미국의 MD에 먼저 편승한 일본이 북한의 로켓 발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일본이 MD 후발주자로서 한국을 하위국가로 서열화할 가능성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2007년 12월 일본 해상자위대가 미사일 요격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순간 이미 현실화됐다.

 

당시 한국 해군은 10월부터 일본이 미사일 요격 실험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 실험에 참관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미국은 참관을 허용했으나, 일본의 반대로 한국 해군은 참관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은 "MD에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은 한국은 근처에도 오지 말라"는 강한 어조로 이를 차단한 것이다. 그 이전인 2007년 6월, 당시 미국을 방문한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에게 당시 미국의 해군총장인 마이클 멀린이 한국 이지스함에 장착될 요격미사일로 SM2 블록4만이 아니라 개발되지도 않은 SM6와 SM7까지 권유함으로써 사실상 한국과 일본 간에 경쟁까지 조장했다.

 

최근 북한의 로켓발사가 임박한 직전까지도 미국은 여러 경로로 한국에 미국의 미사일방어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를 거론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의 이지스 체계, 패트리어트 방어체계가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어계획(TMD)에 통합되어야 무기체계의 효율성이 보장된다는 논리다. 이와 같은 주장은 지난 3월 19일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상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참가비 11조원, 그리고 중국

 

미국이 한국에 원하는 MD 참여 요점은 명확하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하층이나 중간궤도만이 아니라 고층에서도 한·미·일 합동작전으로 이를 요격하자는 것이다. 한편 국방부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작년 1월 11일,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이 이명박 당선자에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미국의 요구대로 초보적인 미사일방어 인프라를 갖추는 데 우리는 최소 11조원의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일본도 처음에는 미국과 연구개발만 같이 한다고 했다가 결국은 미사일방어 전 과정에 흡수됐다. 그렇게 되면 얼마가 들어갈지도 모르고 성공여부마저 불확실하다.

 

더 중요한 것은 여태껏 한국군은 북한을 주적으로 한 군사력 건설에 치중해 왔는데 미사일방어에 참여하면 중국까지도 적성국으로 하게 되는 새로운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는 논리였다. 이 설명으로 인해 아무리 동맹복원을 외치는 이명박 정부라도 선뜻 MD 참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지난 1년은 '김장수 구상'에 의해 MD는 유보되었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이다. 현 정부 초기에도 MD 참여는 어렵지만 PSI는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의도를 잘못 읽은 것이었다.

 

미국은 MD와 PSI를 '디지털 미국방어'의 패키지로 보았다. 공중에서 오는 것은 MD로, 해상으로 오는 것은 PSI로, 개인이 들여오는 것은 전자여권, 즉 비자면제 프로그램으로 잡겠다는 것이 '디지털 미국방호'의 큰 그림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통합된 하나의 큰 구상에 한국이 전면적으로 참여하라는 얘기다. 이로 인해 작년 6월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이전까지의 PSI 참여 방침을 접게 된다.

 

따라서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마자 우리 정부가 PSI 참여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은 부적절하다. 진보진영에서는 PSI 참여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를 반대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참여할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해군 전력으로는 전 세계에서 미국 주도로 진행되는 해상 검문검색, 차단 등 여러 훈련에 참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도 참여비용이 만만치 않다. 새로 구축함을 건조해야 하고 감시체계를 구비해야 한다. 연안방어에 치중해왔던 한국 해군이나 해경이 무슨 수로 단기에 이러한 능력을 확보할 것인가? 그리고 설령 그런 능력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북한 핵·미사일을 억제하는 데 어떤 효과가 있다는 것일까?

 

좌뇌의 안보에서 우뇌의 안보로

 

결국 이제껏 한국 군부가 지향해 온 국가안보의 큰 그림과 철학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이제까지 북한이 어떤 위협을 만들어내면 우리도 대응무기를 갖추어 이에 대비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왔다. 북한이 전차를 만들면 우리도 전차를 만들고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면 우리도 개발하는 식이다. 그리하여 모든 무기체계와 모든 전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만 달성하면 국방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핵·미사일에도 그런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도 핵과 미사일을 가져야 하고, 그 이외 차선의 방어책까지 준비하려면 정부예산을 몽땅 국방비에 쏟아 부어야 할 판이다. 어차피 지금 논의되는 정부의 대비책, 예컨대 PSI나 한·미 연합 미사일 전력 증강, 선제타격 논의가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식으로 안보가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문제는 북한이 어떤 위험성을 담지하고 있든지 간에,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데 착안하여 그 의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통 큰 정치를 지향하는 김정일에겐 한반도를 위협하는 의도만이 아니라 지도자로서 위상을 높이는 체제유지 산업으로서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럴 경우 안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위협만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특성과 지도자의 감성까지 고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의도만 잘 관리한다면 굳이 우리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안보를 달성할 수 있다.

 

감성을 관리한다는 것은 이제껏 위협 중심의 안보, 즉 좌뇌의 안보에서 우뇌의 안보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안보역량은 포용력, 이해력, 협상력, 인내심, 창의성과 같은 것이다. 이런 새로운 안보구상이 마냥 북한에 끌려가는 식으로 매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68년 아폴로 7호를 탄 우주비행사 월터 쉬라는 한국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세 번이나 지구를 떠나 우주에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이 전투를 했던 한반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지구로 귀환한 그는 "우주만은 절대 군사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평화운동가로 전향한다.

 

멀리서 한반도를 다른 맥락에서 관찰했을 때, 이제껏 지녀왔던 냉전식 군사사상이 허물어졌다. 인식의 원리가 좌뇌에서 우뇌로 이동한 것이다. 그의 체험을 교훈으로 이제 우주까지 확장된 한반도 군비경쟁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우리는 더 과감히 해방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종대 기자는 월간 D&D Focus 편집장입니다.


태그:#광명성2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