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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은 지난 3월 6일 강원도 태백을 출발해 한 달 째 낙동강을 걷고 있다. 사진은 3일 삼랑진 부근 낙동강 둔치에서 만난 지율 스님의 모습.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은 지난 3월 6일 강원도 태백을 출발해 한 달 째 낙동강을 걷고 있다. 사진은 3일 삼랑진 부근 낙동강 둔치에서 만난 지율 스님의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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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낙동강을 걷고 있다. 지난 3월 6일 강원도 태백을 출발해 안동-풍산-예천-상주-대구-창녕-밀양-양산을 거쳐 한 달여 만에 낙동강 하구에 도착한다.

지율 스님은 혼자서 걷는다. 심심하지 않게 모래를 퍼내는 사람도 만나고, 둔치에서 농사짓는 사람들도 만난단다. 한편으로는 아직 푸른 강물이 있어 좋을 것 같다. 지율 스님은 '탁발'하듯이 한 달째 낙동강을 훑고 있었다.

지난 3일 새벽, 지율 스님한테서 이메일이 왔다. 하루 전날 창녕 남지 일대를 지났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낙동강 답사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동안 어디쯤 걷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차였다.

지율 스님은 휴대전화가 없다.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메일뿐이다. 이날 새벽 답장을 보냈지만 점심시간이 돼도 소식이 없다. 이날 오후 대충 짐작으로 창원-밀양 중간에 낙동강을 가로질러 놓인 수산대교로 향했다.

둑에 난 길을 따라 창녕 방면으로 20여 분간 올라가 보았지만, 혼자 걷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수산대교를 지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차를 돌렸다. 밀양연극촌을 지나도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내려가니 하천정비공사를 하는 포클레인이 보였다. 공사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멀리 삼랑진교가 보였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곳에 이르렀다. 밀양강을 건너기 위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지율 스님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갈 작정이었다. 농로를 겨우 빠져나와 밀양 상남초교 앞 도로를 지나니 밀양강에 놓인 삼상교가 나왔다.

삼랑진읍을 바로 앞에 두고 푸른 보리밭을 보면서 달렸다. 그런데 모자를 쓰고 승복을 입고 혼자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바로 지율 스님. 그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차들이 달리고 있어 위험해 보였다. 차를 옆에 세웠더니 놀란다.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느냐"고.

지율 스님은 누더기처럼 보이는 승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노트북이 든 배낭을 메고, 옆에는 물병이 매달려 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손에는 메모할 수 있는 작은 수첩을 들었다.

곧바로 삼랑진읍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하루 한 끼만 먹는단다. 자리에 앉더니 모자를 벗는다. 그러면서 "얼굴을 많이 탔는데…"라고 말한다. 화장도 하지 않는 얼굴인데 봄볕에 그을렸단다. 황사에다 강바람이 심해 눈까지 충혈될 때가 있단다.

홈페이지(초록의공명)에 글을 올리는 이계삼 교사(밀성고)의 집에 갔다. 거기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낙동강을 걷고 있는 지율 스님.
 낙동강을 걷고 있는 지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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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이 낙동강을 걷는 이유는?

낙동강은 이미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맨 위 사진은 작은 밀림을 보이고 있는 둔치 모습, 가운데는 둔치의 농작물 재배 모습, 아래는 하천 개보수공사 장면.
 낙동강은 이미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맨 위 사진은 작은 밀림을 보이고 있는 둔치 모습, 가운데는 둔치의 농작물 재배 모습, 아래는 하천 개보수공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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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낙동강을 걷는가?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부터 했다. 천성산과 낙동강은 같은 물 문제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계획했단다. 낙동강의 변화를 계속 살필 것이라고 한다.

"운하 문제가 아니라도 걷고 싶었다. 경부고속철도를 놓겠다고 뚫은 천성산 터널도 마찬가지다. 터널이 뚫리면서 엄청난 물이 흘러나왔다. 한반도 대운하며 4대강정비사업도 물 문제다. 천성산 지키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물 문제를 많이 들여다보았다. 낙동강 물도 지하수 문제이며, 그 물도 결국에는 산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율 스님은 경북 영덕의 어느 산골마을에 머물고 있다. 그곳에 들어간 지 3년째다. 지율 스님은 홈페이지에 "당분간,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지난 3년 동안 열어 두었던 산막의 문을 닫고 낙동강을 도보하며 낙동강 이야기를 '공명의창'을 통하여 소식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려한다"고 밝혔다.

산막을 떠날 때 마을사람들이 걱정했던 모양이다.

"산막을 떠날 때, 할매들이 마중 나와 배낭에 백설기 한 덩어리를 넣어주며 '스님 언제 오요?'라고 하셨다. '나두 몰라, 금방은 못 올 꺼구마'라고 했다. '스님 안 계시면 적적해서 우야노?' 하고 눈물을 글썽이시기에 '우야긴!' 하고 손 흔들며 떠나왔지만, 그 정든 임들을 멀어져 나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황지. 지율 스님이 낙동강 걷기에 나서면서 처음으로 들른 곳이다. 700리 낙동강의 발원지부터 찾은 것이다. 이어 스님은 석탄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기서 스님은 "줄곧 석유와 석탄의 고갈처럼, 물이 고갈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가 먹는 모든 물은 지하수'라는 한마디가 내가 천성산 일을 시작했던 이유였고, '지하수 유출 거의 제로'라는 조선일보 기사를 본 후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었다. 무엇보다 물과 관련된 환경문제는 미래 세대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답이 없는 질문들로 향한 이유였고 지금 고단하게 물길을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율 스님은 "출발 전 제 자신에게 관찰자로서 기록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본다는 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며, 기록하는 일은 재능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앞서가는 마음과는 달리 낯선 환경, 세찬 강바람과 황사, 배고픔과 다리의 경련 등 신체적 욕구와 반응 등 장애는 하나 둘이 아니고…. 게다가 '4대강 정비'라는 이름으로 첫 삽을 뜬 안동을 지나면서는 무력하고 골 깊은 시름과 갈등 속에 자주 빠지게 되어 아직도 이곳을 계속 맴돌기만 하고 있다. 걷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 할 수 없는 것이 가슴에 차오를 때 물길의 이야기를 시작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천 회룡포에서 무슨 일?

지율 스님은 지난 3월 6일부터 한 달 가량 낙동강 걷기에 나섰으며, 혼자서 낙동강을 걷고 있다.
 지율 스님은 지난 3월 6일부터 한 달 가량 낙동강 걷기에 나섰으며, 혼자서 낙동강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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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회룡마을에서 머문 이야기도 재미있다. 해가 저물어 회룡포를 지나 마을에 들러 민박집을 찾았더니 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지율 스님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나뭇가지를 자르던 한 어르신이 행상이 측은해 보였든지 잠자리가 마땅찮으면 당신 집에 묵어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날 저녁 지율 스님이 머물던 집에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낮에 강변에서 만났던 마을 이장도 부부동반으로 오셨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 스님이 그 스님 같다"고 하여 가보자고 하여 오셨다고 하셨다는 것.

"이장께서 가져오신 과일로 다과상을 벌여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그 스님이 그 스님'이다 보니 대화는 자연환경문제, 아이들 교육문제로 진전되어 갔다. 4대강 정비에 절대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보존은 해야 하지만 개발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야기의 말미에 한 주민께서 '스님, 저는 꿈이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자식 가르치느라, 돈 만드느라고 수확만 생각하고 농약도 많이 치고 비료도 많이 썼지만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밑거름도 많이 넣고 농약도 적게 치고 땅을 살리는 자연친화적인 농사를 지어보는 것이 꿈입니다'고 하시고는 할매를 향해 다짐하듯 '이제 할매도 일 욕심 돈 욕심 버리고 그렇게 살 제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할매 대신 내가 맞장구치는데 순간 쌓인 피로가 풀려나가는 듯했다.

그 한마디 말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백하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돈이 안 되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의 땅과 자연은 죽어가고 있고,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살아온 길을 돌아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왔으며, '이제는 돈이 안 되는 것'을 희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율 스님은 "만일 정부의 정책에, 우리의 선택들 속에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라는 이 한마디를 끼워 넣는다면 우리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질지,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얼마나 많은 창조적 생각들이, 그리고 따스한 인정들이 되살아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겁고도 벅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율 스님은 "지금 정부는 그와 반대로 일자리 창출 국민소득 증대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현란하게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며 "고속철도 사업과 같이 선정적인 구호로 국민들의 귀와 눈을 막으려는 것이 정부가 일을 진행하는 수순과 전략이라는 사실은 이 사업이 얼마나 부조리한 사업인지를 예견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둔치에는 고라니도 살더라... 문제 제기하면 결과까지 책임

지율 스님은 낙동강 둔치에서 고라니와 노루 등 많은 짐승들을 보았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북 칠곡의 낙동강 둔치에서 고라니가 보리밭을 뛰어가고 있는 모습.
 지율 스님은 낙동강 둔치에서 고라니와 노루 등 많은 짐승들을 보았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북 칠곡의 낙동강 둔치에서 고라니가 보리밭을 뛰어가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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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낙동강을 걸으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둔치의 중요성이다. 일부에서는 둔치에서 농사를 짓느라 농약을 뿌려 강물이 오염된다고 한다. 또 지금 정부는 둔치를 말끔히 정비해 잔디를 조성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율 스님은 "낙동강 상류부터 내려오면서 살폈는데, 둔치에서는 주로 마와 딸기, 보리 등을 재배하더라"면서 "이런 작물들은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둔치 농사 때문에 농약이 강물에 섞여 들어간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잔디밭을 조성한다면 농약을 더 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낙동강 둔치에는 작은 숲도 있다. 온갖 짐승들이 살고 있다. 지율 스님은 경북 칠곡지역 낙동강 둔치에서 고라니를 발견했다며 '증거 사진'을 공개했다. 지율 스님은 "둔치에는 온갖 새들도 살고, 노루도 목격했다"며 "그런 곳을 개발한다면 뭇짐승들의 터전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밭에 노니는 고라니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그곳뿐만 아니라 낙동강 전 구간의 둔치에 걸쳐서 고라니와 노루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강가에는 의외로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둔치는 지금 밀림이나 마찬가지다.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 터널은 밖에서 볼 수 없게 안에서 공사를 했고, 단식 뒤 몸이 좋지 않아 터널공사 이후 모니터링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면서 "문제 제기한 사람은 결과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데, 낙동강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자료를 모아 나가고 관찰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지율 스님, #낙동강, #둔치, #4대강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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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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