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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여인들이 트럭을 타고 목화밭에 일하러 간다
▲ 이른 아침 거리에서 우즈벡 여인들이 트럭을 타고 목화밭에 일하러 간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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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걸어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식당 한군데에서 재워달라고 말했다가 쫓겨나고, 다른 식당에 들렀더니 흔쾌히 받아준다. 식당 주인의 아들인 듯한 통통하게 살이 찐 소년에게 여기서 자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응!' 하더니 씩씩하게 나를 데리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간다.

실내의 한쪽에 탁자가 여러 개 있고, 다른쪽에는 나무로 만든 바닥이 깔려 있다. 그 위에 넓은 카펫을 깔아서 손님들이 옆으로 반쯤 누워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둔 것이다. 그 구석에는 이불과 베개도 여러 개 쌓여 있다. 소년은 한쪽에 이불을 깔더니 나에게 그곳을 가리키며 자라고 말한다.

지금 시간은 저녁 6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잘 수는 없다. 나는 소년에게 꼬치구이와 맥주를 주문하고 한쪽 탁자에 앉았다. 잠시후에 소년은 커다란 페트병에 담긴 '뿔사르' 맥주를 가져왔다. 사마르칸드 지역에서 많이 팔리는 맥주다.

맥주를 마시면서 꼬치구이를 먹고 있는데 여러 명의 남자들이 왁자지껄하게 들어오더니 카펫이 깔린 마루를 점령했다. 그중에서 한 명이 내가 앉아 있는 탁자로 오더니 말도 없이 의자를 꺼내서 내 옆에 앉는다.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31세의 오리프존이다. 서로 기본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나서 내가 물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어찌 보면 좀 황당한 질문이다. 그는 내 공책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 여기는 나보이와 사마르칸드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이름은 '이쉬티한'이라는 곳이다. 여기서 사마르칸드까지는 60km라고 한다. 그러더니 자기 집이 이 근처인데 그곳으로 가자고 말한다.

오리프존과 같이 들어온 일행은 카펫에 앉아서 벌써 술판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나를 부르면서 같이 보드카를 마시자고 권한다. 그래서 오리프존과 나도 합세했다. 보드카 1박 2일 강행군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그중에서 바하디르라는 중년의 남성은 끊임없이 나에게 술을 권하며 무슨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는다.

현지인들과 어울려서 보드카를 마시며

이튿날 아침 그의 집 마당에서
▲ 나를 초대해준 바하디르 이튿날 아침 그의 집 마당에서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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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성답게 살이 찌고 배가 나온 바하디르는 말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애니메이션 같았다. 소고기와 감자를 볶은 안주에 보드카를 마시고나자 바하디르는 나에게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권한다. 그곳에서 2차를 하자는 것이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재워주겠다는 사람이 많을까. 오리프존도 같이 가기로 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움직였다. 나는 짐을 다시 꾸려서 바하디르를 따라 나섰다.

바하디르의 집은 크고 넓다.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자 전통빵과 포도, 사과, 소시지로 만든 안주 등이 계속 탁자에 놓인다. 아까 내가 식당에서 먹다가 남긴 맥주도 가져와서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드카가 놓였다. 올해 43세인 바하디르는 3명의 아들이 있다. 내가 물었다.

"아들만 있고 딸은 없어요?"
"딸은 없어. 대신에 코브라가 있어."
"코브라요?"

도마뱀을 기르는 사람은 보았어도 집에서 코브라를 키운다? 바하디르는 한쪽에 서있던 부인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코브라 저기 있잖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부인은 웃으면서 바하디르를 쳐다본다. 참 재미있는 아저씨다. 비록 말도 잘 안 통하지만 그 방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내가 먼저 쓰러져서 잠을 잤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침에 다시 술자리가 시작되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머리가 띵하다. 시간은 7시 30분. 오리프존과 다른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내 옆에는 바하디르의 막내 아들이 잠들어 있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서 대충 얼굴을 씻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짐을 모두 꾸리고나서 방에서 양말을 신고 있는데 바하디르가 들어왔다.

"잘 잤어?"

그러더니 먹는 시늉을 하며 마당을 가리킨다. 출발 전에 대충 배를 채우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더니 이게 웬일, 마당의 한쪽에는 어느새 술상이 차려져 있다. 시간은 오전 8시. 이 시간에 해장술을 마시자는 건가.

바하디르의 집으로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들어온고 어제 저녁에 만났던 오리프존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로 보드카를 권하기 시작한다. 아침 8시에. 오늘은 수요일인데 이 사람들은 출근도 안하나. 아니면 이 정도 마시고 일하러 가도 아무 상관이 없는 건가.

나는 걸어가야 하니까 마시면 안 된다고 거절했지만 바하디르는 막무가내다. 여기서 하루더 자고 가라면서 계속 권한다. 걷는 것도 그렇지만 어제 마신 술도 덜깬 상태다. 이 상태로 저 술을 마시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오고 간다. 바하디르 말대로 여기서 하루 더 잘까. 그건 아니다. 빨리 사마르칸드에 가고 싶다. 그냥 한두 잔 마시고 걷다가 길가의 식당에서 낮잠 한숨 자고 나면 술이 깰 것도 같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그래 나도 마시자.

한국에서 일했다는 알리를 만나고

오전에 다시 술판을 벌이다. 내 옆의 흰옷 입은 친구가 알리
▲ 바하디르의 집에서 오전에 다시 술판을 벌이다. 내 옆의 흰옷 입은 친구가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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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했다. 햇살이 점점 강해지니까 한쪽 그늘로 탁자를 옮겼다. 그곳에도 햇볕이 들어오자 또 다른 그늘로 탁자를 옮겼다. 이거야 말로 현대판 유목생활이다. 그렇게 마시는 도중에 한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내 옆에 앉더니 한국말로 말한다.

"한국에서 왔어요?"

밥켄트에서 만났던 알리처럼, 이 젊은 친구도 역시 한국에서 4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28세이고, 이름도 알리라고 한다. 궁금해져서 내가 물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알리라는 이름이 흔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알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많아요?"
"아뇨, 왜요?"
"밥켄트에서 한국에서 일했다는 사람을 만났었는데 이름이 같은 알리였거든요."
"우리 이름이 한국인한테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냥 알리라고 이름을 붙인 거예요. 부르기 쉽게."

그의 원래 이름은 아지즈란다. 아지즈라는 이름도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닌데. 아무튼 나도 그냥 알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자 알리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형님 술 마시고 우리집에 가요.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가요. 방 많으니까 괜찮아요."

어제 오늘은 계속 운이 이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도보여행의 권태를 이기기 위해서 곤죽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는 게 어떨까 하고 며칠 전에 생각했었는데, 어제 오늘 나는 임자를 만난 셈이다. 알리도 술을 잘 마신다. 하긴 우즈베키스탄의 성인 남성치고 술 못 마시는 사람을 못 보았다.

알리는 경기도 광명에 있는 공장에서 일했다. 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한 달에 100-150만원 가량 받으면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단다. 여기는 일이 너무 없어서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전내내 술을 마시다가 승용차를 타고 강가로 나갔다. 나는 알리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짐을 모두 트렁크에 실었다. 바하디르와 다른 사람들은 웃통을 벗고 강으로 들어갔고 나는 잔디밭에 앉아서 알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부터 독한 보드카를 마셨더니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진 술자리

우측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친구가 오리프존
▲ 강가에서 바람을 쐬며 우측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친구가 오리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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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앉아서 바람을 쐬며 술이 조금 깨자 이번에는 만두를 먹으러 가자고 이끈다. 또 승용차를 타고 도착한 만두집. 이곳에서 커다란 만두를 안주삼아서 또 보드카를 마셨다. 그리고 나서야 바하디르는 나와 알리를 승용차로 알리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 지금까지 얼마나 술을 마신 건지 모르겠다. 알리의 집도 크고 깨끗하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이 집을 장만했으리라. 나는 알리의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알리가 내준 방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뻗었다.

한참 자고 일어나니 시간은 저녁 7시다. 알리는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또 마시자는 이야긴가?

"오리프존한테 전화가 왔어요. 형님 일어나면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같이 나오라고요."

나는 술도 잠도 덜깨서 멍한 상태로 알리를 따라나갔다. 작은 식당의 탁자에 오리프존이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접시에는 무슨 뼈가 여러 개 놓여져 있다. 알리 말에 의하면 소다리뼈라고 한다. 거기 붙어 있는 껍질과 살점을 안주삼아서 보드카를 마시자는 것이다.

의자에 앉으니 오리프존이 술을 따라준다. 내가 이걸 마셔도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다리뼈를 하나 잡고 껍질을 먹었더니 미끌미끌하고 느끼한 것이 내 입맛에는 별로다. 갑자기 김치찌개와 순대국이 생각난다. 얼큰한 국물이 있다면 보드카를 맛있게 마셔줄 수 있는데. 나는 그냥 빵을 안주삼아서 보드카를 마셨다. 망설이던 것도 잠시,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한번 취해보자는 생각이다.

그 식당에서 11시까지 보드카를 마시고 나왔다. 다른 사람들과 헤어져서 알리와 나는 집으로 향했다. 중간의 상점에서 입가심으로 맥주를 한 병씩 마시고 나서야 1박 2일 동안의 기나긴 술자리가 끝났다. 아무래도 술이 나를 마신 것 같은 느낌이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씻는 것도 그만두고 침대에 쓰러졌다. '사마르칸드에 가야 하는데...'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이다.

밤늦게 까지 알리, 오리프존과 다시 보드카를 마신다
▲ 이쉬티한의 식당에서 밤늦게 까지 알리, 오리프존과 다시 보드카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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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넓은 이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 알리의 집 크고 넓은 이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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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보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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