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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다 카미유 피사로 I '겨울' 아사(linen) 867×1145cm 1940. 역시 화가인 피사로의 큰아들 루시앙의 딸이 그린 그림으로 삼대가 화가인 셈이다. 아래는 전시관입구에 피사로전 홍보물
 오르비다 카미유 피사로 I '겨울' 아사(linen) 867×1145cm 1940. 역시 화가인 피사로의 큰아들 루시앙의 딸이 그린 그림으로 삼대가 화가인 셈이다. 아래는 전시관입구에 피사로전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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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는 올 첫 전시로 영국옥스퍼드대학 애슈몰린박물관 컬렉션인 '피사로와 인상파화가들(Camille Pissarro: his family and friends)'전을 3월 25일까지 연다. 

피사로(1830~1903)는 인상파화가 중 최연장자로 대부와 같은 존재다.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열린 인상파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내 생애는 인상파와 뒤얽혀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인상파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인상파란 알다시피 '외광파'로 매순간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빠른 붓질과 두껍게 덧칠하는 방식으로 주로 황·적·청 삼원색과 현란한 초록, 보라, 오렌지, 흰색 등의 색채에 담는다. 그리고 당시의 통념을 깨고 작가가 포착한 시각적 인상과 사적 감정도 그림에 반영한다.   

피사로는 인상파의 정신적 지주

카미유 피사로의 스승, 친구, 동료, 제자의 관계도
 카미유 피사로의 스승, 친구, 동료, 제자의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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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에서 보듯 피사로는 모네와 친구였고 '퐁투아즈 시기(1872~1884)'에 세잔과 고갱을 사사하기도 한다. 또한 르누아르, 마네와 가까운 사이였고 쇠라와 시냐크와 1885년 '에라니 쉬르 엡트 시기'부터 알게 된다.

인상파시대는 유럽의 근대를 낳은 변혁기다. 사진이 발명되고 산업화로 공장과 노동자가 생겨났고 사회주의도 싹튼다. 1848년에 영국에서는 '공산주의선언'이 있었고, 1871년에는 제2제정에 반기를 든 '파리코뮌'이 일어났다. 이런 시대의 진보정신을 담을 새로운 미술운동이 일어난 건 당연한 일이다.

코로, 밀레, 쿠르베에게서 전율을 맛보다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I '제방에 앉은 사람들과 풍경' 캔버스에 유채 630×770cm 1870. 밀레 I '양떼 모으기' 패널에 유채 115×155cm 1870(아래 오른쪽). 코로 I '몽페르뫼이(숲속에 시내)'1867(아래 왼쪽)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I '제방에 앉은 사람들과 풍경' 캔버스에 유채 630×770cm 1870. 밀레 I '양떼 모으기' 패널에 유채 115×155cm 1870(아래 오른쪽). 코로 I '몽페르뫼이(숲속에 시내)'1867(아래 왼쪽)
ⓒ The Ashmolea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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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로는 1855년 파리세계미술박람회에서 우아한 색감을 포착한 자연주의의 시인 카미유 코로(1796~1875)와 농민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은 밀레(1814~1875)와 고흐도 좋아했던 도비니(1817~1878) 그리고 사실주의 쿠르베(1819~1877)의 작품을 보고 전율한다.

또한 보불전쟁 땐 영국으로 피신하여 폭풍의 언덕이 연상케 하는 터너(1775~1851)와 빛의 효과를 집중 연구한 컨스터블(1776~1837)을 알게 되어 이들로부터도 영감을 받는다.

피사로는 인상파이면서도 마네의 도발주의나 르누아르의 고답주의와는 다르다. 그의 화풍은 매우 포근하고 구도는 조화로운 세상을 바라는 듯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하여간 그는 인상파의 대선배로서 최후까지 붓을 놓지 않아 후배작가들에게 귀감이 된다.

'눈 오는 풍경'은 인상파들이 선호하는 소재

카미유 피사로 I '몽푸코의 농장의 설경' 캔버스에 유채 540×650cm 1876
 카미유 피사로 I '몽푸코의 농장의 설경' 캔버스에 유채 540×650cm 1876
ⓒ The Ashmolea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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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피사로의 대표적 설경인 '루브시엔의 밤나무(1872)'가 연상된다. 여기서는 지붕과 돌담에는 쌓인 하얀 눈의 결합이 참으로 정겹다. 눈 오는 날의 풍경은 환한 빛의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있기에 인상파들이 매우 선호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는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대지의 심원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눈 덮인 대지 속에서 유유히 흐르는 자연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피사로의 그림은 이렇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화를 많이 그린다. 우리는 거기서 소박하지만 오히려 따뜻한 정을 느낀다. 생활고 속에서 힘겨운 작업을 하는 작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왠지 그림에 몰입하여 리듬감 있는 터치로 작업을 하는 모습만 연상된다.

화가의 부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

카미유 피사로 I '창가에서 바느질하는 피사로부인' 캔버스에 유채 540×450cm 1878
 카미유 피사로 I '창가에서 바느질하는 피사로부인' 캔버스에 유채 540×450cm 1878
ⓒ The Ashmolea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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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피사로의 부인을 그린 것인데 피사로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일하던 하녀인 줄리아 벨레(1839~1926)와 결혼한다. 그는 고단한 일상에 파묻혀 사는 부인을 자주 그렸는데 여기는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내를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눈길도 감지된다.  

이런 작품을 보면 피사로가 빛의 효과에 대해 얼마나 집요하고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작가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세밀한 감각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아내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인물임을 엿볼 수 있다.

'에라니 쉬르 엡트'에서 1885년부터 점묘법 실험

카미유 피사로 I '창밖의 풍경: 에라니 쉬르 엡트' 캔버스에 유채 650×810cm 1888
 카미유 피사로 I '창밖의 풍경: 에라니 쉬르 엡트' 캔버스에 유채 650×810cm 1888
ⓒ The Ashmolea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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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로는 1884년부터는 '퐁투아즈'를 떠나 '에라니 쉬르 엡트'에 정착한다. 그리고 1885년부터는 점만으로 화면을 채우는 점묘파인 쇠라와 시냐크와 알게 되고 그 영향으로 '창밖의 풍경' 같은 작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신인상파의 이런 방식이 시간이 너무 걸리고 몸에 맞지 않았는지 다시 인상주의로 돌아간다.   

그의 그림은 균형 잡힌 구도 속에 세밀한 터치가 느껴진다. 마치 눈앞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전원풍경을 직접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또한 그림이 주는 평화로움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돌이켜 삶을 다시 조망하게 한다.

피사로의 아들들도 아버지 못지않은 화가

루시앙 피사로 I '요정' 캔버스에 유채 730×600cm 1894. 펠릭스 피사로 I '숲의 풍경: 개와 걷는 여자' 캔버스에 유채 270×355cm 1897(아래)
 루시앙 피사로 I '요정' 캔버스에 유채 730×600cm 1894. 펠릭스 피사로 I '숲의 풍경: 개와 걷는 여자' 캔버스에 유채 270×355cm 1897(아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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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은 피사로의 큰아들 루시앙(1863~1944)이 그린 것으로 작품성에서 아버지 못지않다. 루시앙의 딸도 화가로 3대가 화업을 잇는다. 그는 27살부터 영국에서 살았고 거기서 영국여자와 결혼한다. 이런 연유로 피사로그림이 옥스퍼드대학 애슈몰린박물관에 기증된다.

피사로부자는 평소에도 서신을 주고받을 정도로 서로의 관계를 곤고히 한다. 아들의 아버지에 대해 존경은 "우리아버지는 굉장한 선생님이었다. 절대 학생들에게 자신의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집안은 예술적 분위기로 흠뻑 젖어있었다"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작품은 피사로의 셋째아들인 펠릭스 피사로(1874~1897)의 것으로 23살로 불행히 요절했지만 그 역시 빼어난 화가다. 엷은 초록에서 짙은 초록까지 초록빛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해석이 돋보인다. 마치 전원에서 풀빛연주회를 듣는 것 같다.

파리의 모더니티한 풍경화도 그리다

카미유 피사로 I '비오는 날의 튈르리공원' 캔버스에 유채 650×920cm 1899. 노트르담이 보이는 가운데 비오는 파리공원의 촉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카미유 피사로 I '비오는 날의 튈르리공원' 캔버스에 유채 650×920cm 1899. 노트르담이 보이는 가운데 비오는 파리공원의 촉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 The Ashmolea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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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르누아르, 마네, 모네, 세라의 작품에서 보듯 인상파작가들은 산업화된 도회풍 그림이 많이 쏟아진다. 그 소재도 공원, 카페, 연주장, 술집, 야유회, 번잡한 거리에서 교각, 기차, 선박, 경마장까지 다양하다. 위 작품도 바로 그런 그림 중 하나다.

활기찬 도시풍경은 인상파의 매력이다. 그러나 피사로는 농촌을 인간의 본향이라고 생각했는지 초반에는 시골만 그린다. 하긴 1846년 프랑스는 아직 75%가 농촌이었다. 하지만 그도 후반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설적으로 도시화를 가장 많이 그리는 화가가 된다.

말년 절정기 그림들, 현대추상에도 영감

카미유 피사로 I '가을: 에라니 쉬르 엡트의 일몰' 캔버스에 유채 730×920cm' 1902. 가을아침의 안개: 에라니 쉬르 엡트' 460×550cm 1902(아래). 두 작품은 같은 해 가을에 그린 것으로 위에는 저녁풍경이고, 아래는 아침풍경이다
 카미유 피사로 I '가을: 에라니 쉬르 엡트의 일몰' 캔버스에 유채 730×920cm' 1902. 가을아침의 안개: 에라니 쉬르 엡트' 460×550cm 1902(아래). 두 작품은 같은 해 가을에 그린 것으로 위에는 저녁풍경이고, 아래는 아침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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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면 말년의 절정기 작품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오랜 실험과 세월 끝에 한 경지에 이른 거장의 예술성이 느껴진다. 그는 기성교육을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적 자유와 자연을 보는 내밀한 감성으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만의 화풍을 낳는다.

게다가 그림에 호흡과 생기를 불어넣는 위력과 빛의 효과를 민첩하게 포착하는 감각은 변함없다. 이런 작품은 모네의 '몽토르게유 거리, 1878년 6월 30일의 축제'와 함께 대상을 다소 모호하게 하는 기법으로 20세기추상미술의 문을 여는 계시와 영감을 제공한다.

덧붙이는 글 | 고양미술관 관람료 일반 1만원, 초·중·고생 7000원. www.artgy.or.kr
오전10시~오후8시(매일 1월26일 제외) 전시문의 및 예약 031)960-0180
지하철3호선 정발산역에서 하차하면 바로 미술관과 연결됨.



태그:#카미유 피사로, #인상파의 아버지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 #점묘법, #모네,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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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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