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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생일날에 아빠가 되다

6주 정도 된 사진입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난황이 보입니다. 2mm 정도밖에 안 돼서 맥박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선명히 보입니다.
 6주 정도 된 사진입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난황이 보입니다. 2mm 정도밖에 안 돼서 맥박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선명히 보입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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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소리는 왜 이렇게 작은 거예요. ㅠㅠ 불안해요'라고 하니까 '아기가 2mm밖에 안될 정도로 작은데 어떻게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요. 정상이에요'라고 하더라구."

아내가 흥분된 어조로 전화를 해왔습니다. 11월 28일은 만으로 '서른'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제 생일은 11월 29일이고, 제 아내는 저보다 이틀이 빠른데(11월 27일) 우리는 공평하게 11월 28일에 서로 생일을 챙겨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11월 28일, 우리 부부의 생일을 축하해준 것은 '아기'였습니다.

결혼 3년 차인 우리 부부는 그 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던 아기가 드디어 우리의 품에 사뿐히 내린 것이죠. 쬐끄만하지만 이목구비가 다 보입니다. 인석이 그래도 저처럼 머리가 좀 크네요. 심장도 보이고 심장박동도 명쾌하게 들립니다.

심장박동 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저는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픈 과거가 있어서 그런지 아기집도 오롯하게 만들어지고 맥박소리도 들린다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난황(아기 왼쪽에 달려 있는 조그만 것)이라는 것은 저도 난생 처음 알았는데 10달 동안 아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조금 더 컸겠지만, 2mm인 아기의 씨앗 역시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우주가 찾아왔습니다. 2mm짜리 하늘이 열렸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그날 저는 한 시민단체 긴급회의라는 명분으로 아내와 약속한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지 못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저를 붙잡는 회원님들의 만류를 정중히 거절하고 자정이 조금 넘어서 케익 하나를 사들고 아내를 찾았는데, "빌어먹을 녀석아!"라면서 욕을 하면 시원하겠는데 아무 말없이 있는 겁니다. 남편놈이 생일도 알까말까 하고 지 새끼가 내려앉았는데 밖으로만 나돌아다녀서 미울 만도 한데 한없는 순둥이 기질의 아내는 말 한마디 안 하더란 말이죠.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은 '부모'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자식사랑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자식사랑 때문에 아이 앞길을 망치는 경우도 무수히 생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386 형님누나들에 대한 원망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들의 '자식사랑'이 겉으로만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근본적이고 진정한 의미의 자식사랑이 아니라 '내 자식 챙기기'의 모양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기 자식이 사랑스럽다면 제 자식만 챙길 것이 아니라 '자식 세대의 미래'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소식을 하나만 더 하자면 얼마 전 조양진 선생님을 만나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차피 우리 세대에 조선일보를 절멸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다음 세대에 기필코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터를 닦아놓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었지만 조양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당신 세대에서 끝내지 못하면 안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조선일보를 보게 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이 조선일보를 끝내 절멸시키지 못했던 우리 세대의 숙원이다. 당신은 그것을 반복하려고 하는가?"

다음 세대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미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셈이죠. 저는 제 아이 앞에서 떳떳한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자식 기저귀 값이나 분유값 벌려고 '부당함'에게 슬쩍 슬쩍 말을 트고 어물쩍 손목을 잡고 하는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 배불리 먹인다면 아이는 겉으로는 뭐라 안 하겠지만,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경멸할 것입니다.

저는 최소한 아이들이 '언어폭력'을 '상식'처럼 생각하는 사회의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우리의 부끄러운 유산입니다. 그것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최소한 아이들이 '언어폭력'을 '상식'처럼 생각하는 사회의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우리의 부끄러운 유산입니다. 그것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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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장관이 그린벨트를 완전히 해제하고 거기에 개발을 하겠다고 나서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국회에 선 강만수 장관은 "후손들의 문제는 후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우리가 지금 그것까지 챙길 상황인가?"라고 하면서 그린벨트 해제를 기정사실화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미래세대에게 참 부끄럽습니다.

저도 일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제 자식만이 아니라 미래의 자식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되도록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며, 민주주의나 여러 가지 가치들 역시 안전하게 계승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즉 '언로'를 말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은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언어폭력'이라고 할 정도로 혼탁해진 상황입니다. 저는 최소한 아이들이 '언어폭력'을 '상식'처럼 생각하는 사회의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우리의 부끄러운 유산입니다. 그것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시민운동에 뛰어든 것입니다. 집안일을 세심하게 돌보지 못해서 아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언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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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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