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준별 수업은 과연 학생과 학생 사이, 나아가 학교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영화 <울학교 이티>의 한 장면.
 수준별 수업은 과연 학생과 학생 사이, 나아가 학교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영화 <울학교 이티>의 한 장면.
ⓒ ㈜커리지필름

관련사진보기


복도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선생님! 저 보충수업시간 좀 바꾸어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지금 고급반에서 공부하려고 하니 정말 쪽팔려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학생을 데려와 교무실에서 상담을 했다.

"도대체 왜 고급반이 싫냐? 네가 원해서 신청한 것이 아니냐?"
"선생님! 그것은 맞아요. 하지만 이번 고급반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고급반이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왜?"
"저는 본 수업에서는 제일 공부를 못하는 하급반 C반에서 공부를 하잖아요."
"그래 맞아."
"지금 보충수업시간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랑 수업을 하려고 하니 솔직히 쪽팔려요."
"네가 열심히 하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데. 왜 그러니? 호경아! 참고 해보자."
"그래도 바꾸어주시면 안돼요……."
"이미 교재도 준비하고 벌써 3시간이나 했잖아. 이제 17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냥 참고 열심히 해보자. 호경아!"
"예! 알겠어요. 선생님!"

수준별 이동수업을 한 학기 하고 난 후 학생과 상담한 내용이다. 상담한 학생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결코 아니다. 그 학생이 그런 생각을 가질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수업이 부담이 된 것이다.

내 수업시간에는 매시간 돌아가면서 학생이 준비하여 먼저 발표해야 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수업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호라는 학생은 수업에 대한 부담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발표하는 것도 걱정이고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고 느낀 것이다. 게다가 다른 학생의 질문을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위반인 C반에서는 이런 수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업을 교사 의도대로 이끌어가는 것도 솔직히 어려운 지경이다. 학습의욕이 거의 없는 학생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것만도 고마울 때가 많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옆 학생과 이야기하다가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경우가 거의 일상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별지도도 어렵고 상담지도도 어려운 상태에서 이런 학생의 수업 참여도와 의욕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학생에게 학교는 별로 재미없는 곳이다.

수준별 이동수업 이전에는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같은 반이라는 생각이 수업에 반영이 되어 조금 부족해도 자신있게 발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같은 반도 아닌 학생에게 쪽(?)팔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수반과 하위반 수업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A반은 학생 위주 수업, C반은 교사 위주 수업

이런 수준별 이동수업은 바로 수업 방식과 내용에서도 차이를 가져온다. 나의 수업을 보더라도 우수반인 A반 수업은 학생위주 수업이 이루어진다. 학생이 발표하고 교사는 중요한 요점 위주로 코멘트를 한다. 그리고 기초 사항은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교수학습이 이루어진다. 학생들도 그에 따른 선행학습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하위반에서는 교사위주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의욕과 참여도가 부족한 학생에게 학습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결국 교사가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고 학생은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수업이 이루어진다.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다보니 잠을 자거나 산만한 학생이 많다.

게다가 한반에 대 여섯 명은 아예 수업에 달관한 학생들이다. 공부를 하든 그렇지 않든 대학 문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체념형이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고 또한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배짱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수면이다. 수면만 취할 수 있다면 교실바닥도 좋고 복도바닥도 좋다. 교사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우수반 안에서 수준별 차이를 고려하는 수업이 필요하지만 현실에서 쉽지 않다. 그래서 A반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은 다음 단계인 B반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본 수업은 자주 반 편성이 어려우니까 학기별로 이루어진다. 이런 수업에서 학생들의 이해도와 참여도에 따라 수준별 격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수준별 수업은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 공부 잘하는 A반 학생과 공부 못하는 C반 학생은 함께 어울리지 못할 정도가 된다. 겉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우호적인 감정과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 간의 인간관계마저도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우수반과 비우수반 수업의 질과 분위기 차이가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학교공부에 이어진다. 결국 공교육에 대한 학생들 생각이 거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전일제 수준별 이동수업의 경우 우열반에 가깝다. 아니 우열반이다. 모든 과목이 수준별로 이루어진다. 대개 수준별 수업은 수능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반이 나누어지는데 과목별 개인차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수준별 이동수업에 따른 위화감이나 열등감이 생기게 된다. 학급활동이나 학급운영의 중요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급활동이 형식적이거나 상투적이다. 결과적으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통해 상위학생의 학습능력은 향상될지는 몰라도 학급활동이 갖는 많은 장점과 학생들 간의 인간관계마저도 비정상적인 상태로 만든다.


태그:#수준별 이동수업, #학급활동, #인간관계의 왜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 그리고 감정의 다양한 느낌들 생각과 사고를 공유하는 공간! https://blog.naver.com/nty1218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