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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미국이 조선(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했다. 이것은 조선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의 대 북한 인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것은 아직도 정전 상태로 머물고 있는 한국전쟁을 '종전'하고 나아가 평화협정으로 향하는 터널을 통과한 일이라 할 수 있다.

 

1987년 한국 대통령 선거 직전에 발생한 KAL 858기 폭파 사건은 남·북한 양측에 모두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남한에서는 군부 독재의 후계자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반면, 북한은 테러지원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북한은 지닌 20년 동안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국제적 압박을 받았고 이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는 불안을 면치 못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뒤늦게나마 북한에 대한 평화 노선을 선택하여, 북한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북미 관계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이어 취임한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여 이전 정부의 노력들을 삽시에 수포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일명 ABC(Anything But Clinton)하여 클린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 심리가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테러지원국 해제, 북한 경제 숨통 트이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다각적으로 집요하게 압박했다. 미국은 북한의 농축 우라늄을 문제 삼으면서 남한과 주변국더러 북한의 핵 개발 제지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미국은 북폭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고 대량살상무기 방지구상(PSI) 카드도 들이밀며 북한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북한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북한은 굴복하지 않았다. 북한은 6자회담 국 중 최소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했고 동결했던 핵 연료봉 처리에 착수하더니 급기야 핵시험을 감행해 버렸다.

 

결국 북한의 핵 보유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부시는 임기 말에 들어 결자해지에 나서고 있다. 이미 부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종전·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뚜렷하게 전달한 바 있다.

 

부시는 작년 연말에 김정일에게 '친애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친서를 보내기도 했고, 막판에 북핵 협상이 위기를 맞이하자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급거 방북케 하여 교착된 문제를 푸는 유연성을 보였다. 부시는 지난 6월 26일 "45일 이내에 북한 테러 지원국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는데, 45일 시한은 조금 넘겼지만 이번 해제로 인해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실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의 종전·평화협정 체결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다. 최근(9월 17일)에도 북한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용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통해 북한은 경제에 숨통을 트게 되었다. 교역과 금융 등의 제재가 풀리고 대외 원조를 받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 체제 유지와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국전쟁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분단의 소산이고 분단은 제국주의 체제가 빚은 냉전의 결과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의 현장이다. 우리는 다른 민족이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을 이기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만약 종전·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우리는 분단과 식민지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진일보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김정일의 말대로 한·조·미 3국이든, 노무현의 말대로 한·조· 미·중 4국이든 상관없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실용정부임을 보여줘야 할 때

 

우리는 일제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었고 타의에 의해 해방되었으며 우리 뜻에 반해 분단되었다. 비극적이게도 이 중차대한 역사적 격변들 속에서 우리의 발언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전개되는 한반도의 역사에 우리는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 기회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풀리는 것이 북한만 좋게 할 뿐이라는 근시안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남과 북이 협력하여 평화를 누리면서 경제 번영을 누리는 과업은 정말 실용정부라면 응당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이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는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새롭게 가져야 한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대북 문제만 잘 푼다면 그동안 내정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도 된다. 대북관계에서 현실적으로 한국의 입지가 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왕처럼 모든 것을 미국에 일임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상황이 변하고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입이 닳도록 말한 '비핵'이 달성되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핵 문제와 상관없이 남북 교류 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과감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북-미 관계 개선을 반기지 않는다. 그들은 벌써부터 납치 문제를 내세워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불행을 만든 역사의 주범임을 알고 자숙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보수 신문들, 정확히 말해 조·중·동의 동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논평 없이 차갑게 보도하고 있다. <조선>과 <동아> 는 이번 기회에 해방정국에서 분단을 조장한 과오를 뼈저리게 되새기고 민족 화해의 대열에 동참해 주기 바란다.

 

맥아더보다 크리스토퍼 힐을 기억하고 싶다

 

북한은 비핵화를 통해 대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따라서 비핵화는 곧 한반도의 평화 체제와 직결되는 전제가 되어 버렸다. 미국과 강대국들 역시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남게 되는 결과를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필경 그들끼리 애써 구축해 온 핵확산금지 체제를 균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29일 평양에서 발표된 남북 국방장관 회담 합의서에는 "쌍방은 종전을 선언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군사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적 협력의 목표는 물론 군축을 의미한다. 남북한이 그동안 막대한 군사비를 쓰면서도 이만큼이라도 발전해 온 것을 감안해 볼 때, 만약 군축이 이루어져 군사비 부담이 대폭 경감된다면 얼마나 그 혜택이 클 것인지는 능히 짐작이 된다.

 

북한과 미국은 불원간 수교하게 될 것이다.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오바마도 대북 수교를 공약하고 있다. 반드시 이번 만큼은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는 쪽으로 나아가 주기 바란다. 그것은 미국이 이 땅에서 범한 무리와 실수를 일거에 만회하고 불신과 의심을 사그라트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국인은 맥아더보다는 크리스토퍼 힐을 더 기억하고 싶어 한다. 북한과 미국이 수교하게 되면, 남과 북 그리고 미국 3국은 우호관계를 넘어 동맹관계에까지 다다를 수가 있다. 그 때가 되면 주한미군도 더 이상 있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 땅에서 외국군대가 다 물러나게 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반도에 '강 같은 평화'가 범람하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테러지원국해제, #부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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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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